“당 후광 없이 실력으로 깃발 꽂을 것”
그런데 경선을 뚫어도 꽃길이 깔린 선거구는 많지 않다. 공천받기도 어렵지만 경선을 뚫고 후보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아도 본선이라는 더 큰 무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험지’로 분류되는 몇몇 지역구에서는 특정 당이 후보를 구하기도 힘들 정도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곳으로 분류된다. 비교적 중도가 많다는 서울에서도 험지는 존재한다.
‘일요신문’에서는 험지에 출마하는 정치인의 ‘변’을 들어봤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전석 석권한 양천구에 자유한국당으로 출마한 강명구 양천구 시의원 예비후보, 자유한국당 텃밭으로 유명한 강남구에서 민주당 깃발로 도전하는 여선웅 강남구청장 예비후보를 만나봤다. 우리 나이로 강 예비후보는 41세, 여 예비후보는 36세로 모두 젊은 편이다. 이들은 왜 험지로 갔을까.
# 강명구 자유한국당 양천구 시의원 예비후보
―양천구는 김용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을 배출해 ‘험지’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본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4개 지역구 모두 민주당이 가져갔다. 내가 출마한 지역구는 역대 딱 1번 이외에는 모두 민주당 차지였다. 김용태 의원이 당선될 때도 1000표 차이 신승이고, 정당 투표율과 비교해보면 15% 이상 차이가 났다. 당은 민주당을 찍지만 김 의원이 일 열심히 했다고 한 번 기회를 준 셈이다.”
강명구 자유한국당 양천구 시의원 예비후보가 선거 운동에 나선 모습.
―그런 험지에 어떻게 출마하게 됐나.
“정당 투표율 15%를 극복하고 당은 민주당이지만 ‘김용태 일 잘한다’고 표를 줬던 그 시민들, 학부모들이 정치인 김용태를 만들어줬다. 그 김용태의 보좌관으로 30대 10년 전부 이 동네를 위해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해왔다. 험지를 고른 게 아니라 이 동네에서 10년 동안 살았다. 시민들에게 열심히 한 부분에 대해 평가 받고 시의원으로 당선돼 동네 일을 맡아 해보고 싶었다.”
―그래도 험지를 택할 때 부담감은 없었나.
“정치를 하면서 단 한 번도 동네에서 당으로 승부 본 적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라고 잘나갈 때도 유세 오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 동네에서 김 의원이 살아 남았던 첫 번째 이유는 내가 기획한 ‘민원의 날’, ‘찾아가는 민원 서비스’를 만들어서 바닥에서 주민들과 소통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10년 동안 해왔더니 사무국장,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강명구’를 생각보다 많이 알아보더라. 주위에서 다 반대하고 걱정할 때 했던 일로만 평가 받는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양천구 4개 지역 중에서도 가장 험지다. 좀 더 좋은 지역으로 옮길 생각은 안했나.
“내가 가장 잘 아는 동네이고, 주민들과 호흡해왔다. 이 동네에서 일했던 사람이 자리 좋다고 좀 더 좋은 동네로 가서야 되겠나. 어디를 출마하더라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질문이 잘못됐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
“걱정은 하는데 반대는 없었다. 아내와 김용태 의원실에서 보좌관, 비서 사이로 만나 결혼했다. 이 지역의 비서였기 때문에 동네를 잘 안다. ‘당선되면 잘할 수 있을 거다’라고 응원한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낮다. 돌아다녀보면 어떤가.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12%다. 명함 돌리면 어떨 것 같나. 그래도 우리 이름 걸고 나가면 동네에서 ‘일 잘했다’고 칭찬한다. 시민들과 만나면 ‘시의원, 구의원 뽑는데 이데올로기가 중요하겠느냐. 동네 일 가지고는 자신 있다. 일꾼을 뽑아달라’고 말한다”
―시의원으로서 하고 싶은 일은 뭔가.
“박원순 시장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신월동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어 토목공사를 해야 한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 신월동에는 극장이나 대형마트, 백화점이 없다. 모두 목동에 있다. 청소년수련관, 노인복지회관 다 목동에 있다. 관공서, 세무서, 경찰서도 신월동에는 없고 목동에 있다. 신월동은 인구 22만이 사는데 지하철 역 하나 없다. 두 개 지역은 엄연히 다르다. 목동은 양천갑이고 신월동은 양천을로 구분돼 있다. 대신 목동엔 없지만 신월동에만 있는 것들도 많다. ‘김포공항’은 이름과 달리 강서구에 있고 항공기 소음 피해는 신월동에 가장 크다. 경인고속도로가 동서를 남부순환도로가 남북으로 동네를 갈라놨다. 옆 동으로 넘어가는데 보도 육교를 이용해야 한다. 12차선을 오가는 차량에서 분진이 나온다. 이 외딴 섬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밑그림을 그릴 줄 알고 일 한 번 해보겠다는 열정 있는 시의원, 구청장만 있었어도 이렇게까진 안됐을 것 같다.”
―김용태 의원이 할 수는 없었나.
“서울시장, 구청장, 시의원 4명 모두 민주당이었다. 사실상 포위된 격이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따오려고 해도 연결될 시의원이 없었다. 한 명만 있었어도 국비와 시비를 매칭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
―현수막에 ‘김용태를 만든 사람’이라고 걸어 놓았다. 김용태 의원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욕하는 사람도 있다. 탈당, 다시 입당했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거조차도 의리로 가고 싶다. 김 의원이 아니라 3선을 만들어준 사람들을 향한 의리를 지키고 싶다.”
#여선웅 민주당 강남구청장 예비후보
―신연희 강남구청장의 비리를 파헤치면서 유명세를 탔다.
“구의원 당선되고 2014년 압구정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 비리를 파헤쳐 이슈가 됐다. 그때 강남구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국회의원이 기관 잘못을 지적했더니 해당 기관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비리가 있다는 게 1년 뒤에 밝혀졌다. 다음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나를 비판하는 강남구청장 댓글부대를 밝혀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 번에 갖고 있는 걸 다 드러내지 않고 하나 던지고 저 쪽의 반박자료를 재반박할 증거를 들이미는 방식을 썼다. 계속 문제제기를 하니까 ‘여선웅은 끝까지 한다’며 시민들의 제보가 몰려 들었다. 당시 활동으로 강남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분들도 ‘구의원이 이런 일을 하는구나’라고 알게 되신 분들이 많다.”
여선웅 민주당 강남구청장 예비후보의 선거운동 모습.
―현직 구청장, 그것도 강남구청장이 구속까지 된 배경이 뭐라고 보나.
“강남구는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이 뺏긴 적이 없는 곳이다. 항상 서울에서 가장 큰 격차로 이겼다. 그래서 강남 정치권이 고여있는 썩은 물이 됐다고 봐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아무런 대비를 안했다는 말처럼 신 구청장도 똑같다. 모두가 신 구청장이 잘못했고 법의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주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구청장이 구속되고 나서도 영장실질심사에서 빠져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구속됐는데도 ‘구청장 참석’으로 된 일정이 그대로 있다.”
―처음 강남 구의원 출마는 어떻게 하게 됐나.
“정치에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고 민주당 당직자로 활동했다.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아쉽게 졌는데 강남에서 특히 표가 안 나왔다. 강남 누군가가 가서 차근차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이로 보면 구의원 재선이나 시의원 추천도 많았을 것 같다. 젊은 나이에 구청장에 출마하게 된 배경은 뭔가.
“정치를 개인 커리어 경로로 생각하지 않는다. 뚜렷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행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직 구청장인 신 구청장이 구속될 정도로 강남구의 공공성은 많이 무너져 있다. 지금 나에게 맞는 건 강남구청장이 돼서 무너진 강남구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게 정치적 목표다. 잘못된 점을 가장 잘 알고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가 나라고 생각해 작년부터 결심했고 준비를 했다.”
―저격수 이미지가 강하다. 구체적인 비전이 있다면 뭔가.
“저격수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없애고 싶다. 내가 만약 신 구청장을 만나지 않았다면 정책이나 비전 쪽 역량을 발휘하고 저격수 이미지도 없었을 거다. 각 분야 공약도 있다. 10년 이상 노후 경유차는 저감 장치를 달아주고 강남에서는 과태료를 부과해 사실상 퇴출시키겠다. 지금 6개월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육아, 교육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펼칠 수 있다. 강남구 보건소에 미흡한 점을 개선하고 어린이집은 전폭적으로 확대하고 싶다. 예전에 벤처의 상징이었던 테헤란로를 스타트업이 모두 떠났다. 4차 산업혁명 스타트 기업에 입주 혜택을 주고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
―당 지지율이 워낙 높고, 지난 선거 등을 봤을 때 이제는 더 이상 강남도 ‘험지’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도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어렵다. 강남구가 굉장히 넓다. 수서, 세곡 등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간 곳은 민주당 지지가 있지만 전통적인 강남 부촌 지역인 청담, 압구정 등은 격차가 많이 난다. 대선에서 압구정은 3등을 했다. 자유한국당과 1 대 1 구도로 간다고 하면 더욱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 험지에 출마한다고 하니 주변 반응은 어떤가.
“주변에서도 이번만큼은 찾아와야 한다면서 ‘이번에는 될 것 같다’고 한다. 나부터 이번에는 반드시 된다는 확신이 있다. 현직 구청장을 구속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고 이 분위기를 이어갈 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강남구 분위기는 어떤가.
“예전에 비해서는 굉장히 좋아졌다. 강남 정치권에서는 강남구청장 구속이 매우 큰 이슈다. 구청장의 비리를 파헤친 공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고 많이 알아봐주시기도 한다.”
―경선이 있는 건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경선할지 전략 공천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경선을 하면 여선웅 이기기 쉽지 않다’는 분위기다. 인지도도 꽤 높은 데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라 청년 가점 20%도 받기 때문이다.”
―강남의 이미지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교육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투기 수요는 잡아야 한다. 투기 수요가 강남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실제로 정부의 부동산 가격 개입은 여러 번 실패했다. 다주택자를 규제하면 지방, 수도권 여러 채를 팔고 강남으로 들어왔다. 실제 수요로 인해 강남 부동산 값이 올라가는 건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경제 수준으로 봤을 때 압구정, 청담 아파트가 뉴욕, 홍콩 부동산 값과 비교하면 비싸다고 볼 수 없다. 교육은 복잡한 문제이지만 강남만 보면 자사고 폐지 등 평준화 정책은 교육 인프라 수요가 몰리며 강남 집값에 도움이 된다. 특별히 문제될 게 아니다.”
―출마하면 당선 가능성은 얼마나 보나.
“2014년 구의원 당선될 때 서울지역 최연소 당선자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전국 최연소인 20대 당선자가 강남에서 나왔다. 서울, 전국 최연소 당선자가 강남에서 나올 정도로 강남은 젊은 리더십 거부감이 전혀 없다. 3자 구도로 굳어져 가고 있는데 3자 구도가 되면 당선 가능성을 굉장히 높게 보고 있다.”
―강남에 민주당 구청장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됐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노력을 하거나 개혁적인 정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예산을 못 따도 당선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국고보조금을 한 푼도 못 받은 때도 있었다. 신 구청장이 자유한국당이어서 강남구민에게 도움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정부와 서울시에 반대되는 일만 했다. 이번에야말로 문재인 정부, 민주당 서울시장과 한 목소리가 되어 도움될 만한 예산도 많이 받아와야 한다. 이제는 젊고 참신한 개혁적 정책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보기엔 자유한국당 후보로 신월동 시의원 출마와 민주당 후보로 강남구청장 중에서 어디가 더 험지인가.
“강남구는 내가 나가면 험지가 아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