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그동안 노조 추진 직원들 미행·감시·협박 불법 저질러, 결국 터질게 터진 것”
-“공권력도 공범, 이번 수사 시민단체 등과 함께 대책위 만들어 투명하게 진행해야”
검찰이 최근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의혹이 담긴 문건 6000여 건을 확보해 수사에 착수했다. 삼성그룹은 고 이병철 창업주 때부터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하며 직원들의 노조 설립을 방해해 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탄압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노조를 만들고, 회사와 맞섰던 이들이 있었다. 삼성 일반노조 김성환 노조위원장도 20년 넘게 삼성 노조 설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일요신문’에서 김성환 위원장을 만나 이번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사진=고성준 기자
-삼성그룹 노조파괴 의혹 문건 6000건이 발견돼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그동안 삼성은 자신들이 공권력인 것처럼 노동자들을 미행, 감시, 도·감청하는 등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노조 설립을 방해해 왔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썩어 곯을 대로 곯은 게 결국 터진 거라고 본다.”
-김 위원장도 사측의 감시로 고생을 많이 한 걸로 안다.
“나도 감시, 위치추적, 도청 등을 많이 당했다. 지금도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생활하고 있다. 과거 내가 삼성 계열사 노동자들을 만나러 지방을 돌아다니면, 말도 안했는데 노동자들에게 먼저 연락이 온다. ‘위원장님 지금 OO터미널에 계시죠?’라고 묻기에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인사과 직원이 위원장님 고속버스 지금 내렸다고 알려줬습니다’라고 말했다. 날 감시하고 있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인사과 직원은 노동자들에게 왜 알렸는지 모르겠다. 자기들 손바닥 위에 있다고 겁을 주려고 한 건지.”
-그러다 회사를 상대로 고소를 했는데.
“2004년 3월 고 유병섭 씨가 삼성SDI 울산공장에서 장기간 근무하다 사망했다. 삼성SDI는 노조가 없다. 이에 유 씨의 부인이 남편 죽음의 원인을 밝혀 달라고 나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그런데 나를 만난 유 씨 부인이 친구찾기에 가입한 적 없는데 ‘XX가 친구찾기로 당신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는데 허락하시겠습니까’라는 문자가 뜬다고 했다. 당시에는 제3자가 위치추적을 하려면 친구찾기에 가입해야만 했다. 삼성 측에서 불법 위치추적을 하고 있다 확신하고 조사에 나섰다. 위치추적을 시도한 이를 찾으니 전남 담양에 있었다. 그런데 이미 죽은 사람 명의였다. 유령이 친구찾기에 나선 것이다. 이러한 증거들을 모아 2004년 7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당시 구조조정본부 경영진을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 수사는 어떻게 됐나.
“몇 달이 지나도 검찰이 고소인을 부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 검찰에 불려 갔는데, 우리가 제출한 증거 이상의 수사 진전이 전혀 없었다. 그러더니 이듬해 2월 검찰은 ‘고소인들이 위치추적 당한 것은 사실이나 피의자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증거부족으로 기소 중지해 사건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더니 종결 6일 만에 나는 법정구속됐다.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등 혐의로.”
-3년 전에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150쪽 분량의 ‘2012년 S 그룹 노사 전략’ 문건으로 검찰수사가 이어졌으나, 대부분 무혐의 처분됐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고성준 기자
“심상정 의원이 폭로한 문건은 2011년 삼성에버랜드에 복수노조가 설립된 것에 대한 삼성그룹의 반성문이다. 앞으로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안이 담겨 있었다. 문건에는 나에 대한 내용도 사진과 함께 적혀 있었다. 당시 삼성 일반노조도 에버랜드 노조 만드는 데 힘을 모았다. 하지만 결국 검찰은 이건희 회장, 최지성 사장 등에게 무혐의 처분 내리고, 삼성에버랜드 부사장 등 4명은 각각 벌금 500만~1000만 원의 약식기소로 마무리했다. 앞서 사례에서 보듯이 삼성과 관련해서는 어떤 혐의로 고소해도 다 ‘무혐의’ ‘증거불충분’ 처분을 받는다. 경찰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삼성 사측 직원들에게 납치돼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은 ‘납치가 아니라 이동 중 상담하는 중이었다고 한다’라고 합리화시켰다. 결국 검찰과 판사, 경찰도 삼성과 공범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은 정치권 사법권의 비호 아래 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 검찰 수사는 어떻게 진행돼야 한다고 보나.
“지금까지의 행태를 감안하면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검찰은 믿을 수 없다. 따라서 검찰은 확보한 6000건의 문서를 전부 공개해야 한다. 이어 시민사회단체 및 삼성 피해자들과 대책위를 구성해서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수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벌일 수 없도록 엄벌에 처해야 한다.”
-이번 노조와해 문건 검찰 수사에서 특별히 눈여겨보고 있는 부분이 있나.
“아직까지는 주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에 대한 와해공작 등과 관련된 내용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언론보도 등을 보면 그룹의 부당노동행위 의혹 관련 문건은 지난해까지 작성됐다고 한다. 따라서 이 문건 안에 삼성SDI 노조 설립 방해 관련 내용도 있는지 관심이 간다. 삼성 일반노조는 지난해 2~3월 삼성SDI 천안·울산공장 노동자들과 노조 건설을 위한 추진위원회(노건추)를 결성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이어 지난해 9월 11일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SDI 노조 창립총회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창립총회를 2~3일 앞두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설립이 무산됐다. 창립총회 직전 사측의 설립 방해 개입 정황은 보였다. 노건추 활동을 한 노조 집행부 후보들에게 인사과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했고, 총회에 맞춰 해외 출장을 지시하기도 했다. 나중에 집행부 후보들에 건설을 취소한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했는데 확실한 답변을 못하더라. 이들은 아직 회사에 근무하며 관리를 받고 있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에 삼성 일반노조는 지난 9월 고용노동부에 삼성SDI를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하지만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은 최근 고소건에 대해 ‘혐의 없음’ 기각 결론을 내렸다. 삼성SDI 노조 설립 추진은 계열사 정규직 노동자들의 행동이었다. 삼성 입장에서는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삼성SDI 사건도 문서에 있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