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원·이용규 퇴장에 양의지 ‘볼패싱’ 논란…볼 조금 벗어나도 일관성 있어야
세이프와 아웃, 페어와 파울 상황에서 나오는 오심 문제는 비디오 판독 도입으로 어느 정도 해결됐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이 얽힌 대립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스트라이크-볼 판정은 모두가 인정하는 심판의 고유 권한이자 심판들이 지켜야 할 최후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야구규칙 9.02에는 ‘투구가 스트라이크냐 볼이냐 하는 심판원의 판단에 따른 재정은 최종의 것이다. 선수, 감독, 코치 또는 교체 선수는 그 재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한 베테랑 심판은 “다른 판정에 대해 감독이나 선수가 항의할 때는 우리도 최대한 잘 설득하고 좋게 대화로 풀어 보려 한다. 하지만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하게 경고를 준다”고 했다.
하지만 이 규칙은 포수 뒤에 선 구심의 정확한 판정과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조항이기도 하다. 야구는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냐 볼이냐에 따라, 그리고 그 결과로 볼카운트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공수 전반이 요동치는 게임이다. 그 권한을 온전히 갖고 있는 심판의 책임은 그만큼 무겁다.
# 양의지 ‘볼패싱’ 해프닝이 낳은 파장
지난 4월 10일 대구 삼성-두산전에서 벌어진 이른바 ‘볼패싱’ 해프닝은 그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곱씹어볼 만한 장면이다. 두산 포수 양의지가 7회말 수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후배 투수 곽빈의 연습 투구 가운데 하나를 뒤로 빠트렸다. 그 공은 양의지의 곁을 스치고 지나 바로 뒤에 서 있던 주심의 다리를 직격할 뻔했다. 양의지 스스로는 “고의로 공을 잡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일부러 놓쳤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필이면 바로 직전 공격이던 7회초 타석에서 양의지가 주심의 바깥쪽 공 스트라이크 판정에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양의지는 결국 헛스윙 삼진을 당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면서 신경질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앞선 타석의 판정에 대해 일종의 ‘항의’ 표시를 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두산 양의지의 볼패싱 장면. KBS 뉴스 화면 캡처.
이 장면이 중계방송 화면을 통해 상세하게 리플레이되면서 문제가 확대됐다. 양의지는 결국 KBO 상벌위원회에 회부됐고, ‘비신사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벌금 300만 원과 유소년 야구 봉사활동 80시간의 징계를 받았다. 그 후 많은 야구팬은 “양의지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맞지만, 애초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심판들의 들쑥날쑥한 스트라이크-볼 판정이 선수들의 반감으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정작 양의지에게 가장 매서운 회초리를 든 사람은 김태형 두산 감독이다. 양의지가 공을 뒤로 흘린 직후 더그아웃에서 쓴소리를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양의지는 ‘열중 쉬어’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감독의 야단을 맞았다.
김 감독은 다음 날 취재진을 향해서도 “이런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들이 워낙 타석 하나하나에 민감해 하는데, 스트라이크나 볼 문제로 너무 그러면 안 된다”며 “유독 본인 타석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반대로 수비 입장에서는 상대 타자가 화를 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또 “선수들한테도 스트라이크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의지 역시 징계 후 구단을 통해 “의도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며 “야구장 안팎에서 처신에 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볼 판정 항의, 금지했는데 더 많아졌다
양의지의 ‘볼패싱’ 해프닝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하지만 올 시즌 유독 주심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선수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롯데 채태인은 3월 28일 잠실 두산전에서 4-3으로 팀이 앞선 5회 무사 1루서 타석에 들어섰다가 루킹 삼진을 당했다. 볼카운트 2-2에서 바깥쪽 슬라이더를 지켜봤지만,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왔다. 그러자 채태인은 주심을 향해 한 차례 항의를 했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의 배트를 집어 던졌다. 화가 난 주심이 채태인 쪽으로 향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지만, 조원우 롯데 감독이 나와 심판을 진정시킨 뒤에야 겨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두산 오재원도 4월 3일 잠실 LG전에서 4-4로 팽팽히 맞선 9회 선두 타자로 나왔다가 삼진을 당했다. 그 후 주심에게 “볼이 좀 높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다 곧바로 퇴장을 당했다. 시즌 개막 전인 지난 2월 말 각 구단에 경기 중 심판위원에게 질의하는 걸 금지한다(볼 판정 여부, 판정에 대한 어필 등은 감독만 가능하고 선수가 어필하면 퇴장시킨다)는 지침이 전달됐는데, 오재원이 이 조항을 명백히 위반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오재원의 퇴장을 넘어 ‘질의 금지’ 조항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선수협은 “심판위원의 판정과 권위를 존중한다. 그러나 이번 사례의 퇴장 근거가 되는 KBO와 심판위원회의 결정사항에는 문제가 있다”며 “행동지침은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의견을 취합해 결정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 없이 고지됐다”고 지적했다. 또 “야구 규칙에 나와 있는 ‘이의 제기 금지’ 조항이 볼의 높낮이에 대한 단순 질의까지 금지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며 “관중의 소란을 부추기거나 폭언 또는 신체적 접촉이 없는 단순 질의를 금지 행위로 결정한 것은 야구 규칙의 과도한 확대 해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KBO에서 두산과 삼성전에서 발생한 두산 포수 양의지의 비신사적 행위 여부 심의 관련 상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메이저리그는 항의에 더 엄격하다
어느 쪽의 손도 들어 주기 어려운 문제다. 심판의 납득할 수 없는 판정으로 벌어진 일에 삼진을 당한 선수나 불만을 표현한 선수에게만 불이익이 돌아간다면, 선수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항의가 계속되고 이에 대한 제재가 느슨해진다면, 경기를 조율해야 하는 심판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
사실 메이저리그에선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대한 항의에 더 엄격한 철퇴를 내린다. 선수가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면서 한두 마디 불만만 내뱉어도 심판이 주저 없이 퇴장을 선언한다. 기본적으로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은 심판의 최종 권한’이라는 절대적 전제가 있어야 게임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어서다. 한 경기에서만 100개가 훨씬 넘는 공을 봐야 하는 심판들이 모든 공에 자로 잰 것 같은 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 심판마다 조금씩 다른 자신만의 ‘존’을 갖고 있기도 하다. A 심판이 바깥쪽 코스에 후하다면, B 심판은 높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더 잘 잡아주는 식이다. 경기 내내 어느 정도 일관성이 유지된다면 선수들도 매번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한 야구 관계자는 “선수들 사이에 ‘심판이 판정을 제대로 못 한다’는 불신이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더 과감한 항의가 가능해진 부분도 있다”고 했다. 나 혼자 의구심을 갖는 게 아니라 동료들도 다 같이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여길 때, 선수들은 더 거세게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얘기다. 라커룸이나 벤치에서 “오늘 심판의 존이 들쑥날쑥하다”는 얘기가 오가면, 아무래도 그런 대화를 염두에 두고 타석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그러다 석연치 않은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오기라도 하면 “잘못됐다”는 확신이 생겨 더 제스처가 커진다.
최근 TV 중계화면에서 설정해놓는 가상의 스트라이크존도 심판들을 향한 비난에 불을 붙인다. 한 투수의 투구 패턴을 파악하기에는 좋은 장치일지 몰라도, 심판 방향에서 판단하는 존과는 확실히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존을 벗어난 공에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오면 선수나 팬들은 괜한 오해를 하기 십상이다. 동시에 현장에서는 조금씩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경험이 적은 심판들은 그런 평가에 휘둘려 갈팡질팡한다. 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스트라이크존 확대’라는 지침이 나오지만, 개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스트라이크존으로 회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퇴장 당하는 한화 이용규. spotv 중계 화면 캡쳐
# 선수들도 이유는 있다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둘러싼 심판과 선수의 대립은 그동안 숱한 에피소드를 낳았던 해묵은 역사다. 영원히 접점을 찾을 수 없는 ‘평행선’ 같다. 하지만 올 시즌 초반처럼 여러 선수가 한꺼번에 불만을 갖는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미 자신만의 존을 확실하게 굳힌 베테랑 심판들도 많지만, KBO리그 1군에 적응해가는 저 연차 심판들 가운데는 아직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인물들도 있다. 심판들은 “앞으로 더 심판진 역량을 강화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하지만, 당장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선수들은 잘못된 판정 하나가 답답하기 그지없다.
지난 4월 13일에는 한화 이용규가 대전 삼성전에서 7회 심판의 볼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하는 일이 또 한 번 벌어졌다. 이용규 역시 삼진을 당한 뒤 타석에서 펄쩍펄쩍 뛰다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같은 경기에서 삼성 이원석도 볼 판정에 불만을 표현했지만, 퇴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KBO 상벌위원회는 사흘 뒤 이용규에게 리그 규정 벌칙내규 3항에 의거해 엄중 경고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BO도 모두가 납득할 만한 접점을 찾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정금조 KBO 사무차장과 김선웅 선수협 사무총장, 김풍기 심판위원장이 지난 4월 13일 한 자리에 모여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정 차장은 “경기장에서는 선수와 심판이 주역이니, 동업자 의식을 갖고 서로 존중하자는 얘기를 나눴다”며 “양측이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재발 방지책을 논의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각 구단도 선수들에게 “심판 판정에 대한 예민한 반응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나섰다. 아직 불씨는 남아 있지만, 타올랐던 불꽃은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심판을 저격한 악동들…갈베스 ‘주심 맞아라’ 강속구 슝 일본 프로야구에는 여전히 ‘전설’로 회자되는 ‘심판 저격’ 사건이 있다. 2001년 삼성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 발비노 갈베스가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소속이던 1998년에 벌인 사건이다. 갈베스는 그해 7월 31일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한신과 원정경기에서 심판에게 공을 집어 던지고 선수들에게도 주먹을 휘두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날 경기 초반부터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했던 갈베스가 0-5로 뒤진 6회말 한신 선두타자에게 홈런을 맞고 강판 지시를 받은 직후였다. 갈베스는 투수판을 내려오다 말고 갑자기 주심을 바라보며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선언해야 할 것 아니냐”고 소리쳤다. 그리고 공을 다시 집어 들더니 주심을 향해 있는 힘껏 살인적인 강속구를 뿌렸다. 심판이 이상한 낌새를 채고 재빨리 몸을 피하지 않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라운드에서 야구공을 ‘흉기’로 사용한, 사상 최악의 난동이었다. 이뿐 아니다. 깜짝 놀란 요미우리 선수들이 달려 나와 갈베스를 말리자 이번엔 동료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라운드는 아수라장이 됐고, 갈베스는 곧바로 퇴장 명령을 받았다. 일본 야구계는 당연히 발칵 뒤집혔다. 센트럴리그는 다음 날 갈베스에게 잔여 경기 출장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요미우리 구단도 “갈베스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11월까지 연봉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갈베스의 그 해 연봉은 1억 엔(약 9억 8000만 원). 20년 전인 1998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는 금액이었다. 4개월치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된 갈베스는 4000만 엔가량 금전적인 손실을 입었고, 곧바로 “미국으로 귀국하라”는 명령도 받았다. 사건의 파장이 잠잠해진 이듬해 재계약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코치들과 불화를 빚다 퇴출당했다. 메이저리그에서 9개 구단을 오가다 2006년 은퇴한 칼 에버렛도 ‘악동’으로 유명했다. 보스턴 소속이던 2001년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품고 대들다 ‘박치기’까지 해버린 사건은 여전히 유명하다. 10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가 떨어졌다. 에버렛은 텍사스 시절이던 2003년 마이너리그에서도 볼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판을 폭행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결국 얼마 뒤 경기 도중 안타를 치고 나갔다가 1루에서 홈팬이 던진 휴대폰에 머리를 얻어맞는 ‘굴욕’을 당했다. 악동 선수의 만행을 보다 못한 홈팬이 같은 방식으로 내린 ‘경고’였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