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조차 않고 ‘무혐의’ 자성 목소리…검경 수사권 조정 앞두고 재수사로 이어질지 미지수
김학의 전법무부 차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이름이 다시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리고 있다. 법조인들과 하는 술자리에서도 한동안 잊혔던 김 전 차관 사건 이름이 드문드문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을 수사기관(검찰)의 검찰권 남용 의혹이 있다며, 재조사 대상 사건(16건) 중 하나로 선정하고 나서부터 생긴 일이다.
검찰 과거사위는 김 전 차관 사건 외에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약촌오거리 사건 ▲PD수첩 사건 등을 재조사 사건으로 선정했지만, 유독 김 전 차관 사건이 오르내리는 것은 ‘고위 법조인의 성접대’라는 자극성 때문일 수도 있다. 고위 법조인에 대한 별장 성접대와 동영상이라니.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자극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마약도 등장한다. 하지만 검찰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은 우리가 봐도 조금 이상했다”는 평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실제 재수사로 확대돼, 김 전 차관이 조사를 받을지는 미지수다. 과거사위원회는 수사에 대한 강제권이 없고,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둔 상황에서 검찰이 스스로 ‘팔이 안으로 굽는 검찰’이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수사를 강도 높게 진행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재조사 대상 사건에 연루된 검찰 고위 간부 등에 대해서도 성역 없이 조사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과거사위 위원인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은 ‘수사 강제성이 없다’는 우려에 대해 ”당시 수사를 했던 분들 중 적극적으로 진술할 분들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사건 대부분은 어느 정도 조사 가능성이 있고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돼 선정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 고위 간부 성접대 논란이 벌어진 별장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동영상이 촬영된 곳은 건설업자 윤중천 씨 소유의 강원도 별장.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건설업자 윤 씨가 별장에서 김 전 차관 등 사회 고위층들에게 성접대를 했다고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은 동영상 속 남성을 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자 피해 여성 A 씨가 나섰다. “내가 동영상 속 여성”이라며 직접 김학의 전 차관을 다시 고소한 것.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검찰은 “별장에서 성접대에 동원됐다고 하는 여성들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합의 하에 이뤄진 측면이 있다”며 또 다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차관은 한 차례도 소환 조사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김 전 차관 사건은 그렇게 수면 속으로 숨어들었다.
당시 검찰 내에서는 ‘봐주기’라는 평이 횡행했지만, 대놓고 이를 언급하는 이는 없었다. ”김 전 차관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엄청 아낀다”는 소문이 지배적이었기 때문. 익명을 요구한 당시 법무부 관계자는 “김 전 차관이랑 같이 근무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실력에서나 인품에서나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인물은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차관이 될 때 ‘박 전 대통령이 콕 집어 차관으로 앉혀서 다음 ’장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털어놨다.
실제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법조인 역시 “김 전 차관은 수사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람 관리에만 신경썼던 선배”라며 “밑에서 사건을 보고하면 잘못된 점을 지적해줘야 하는데 그런 적이 한 번도 없고, 위에서 불편해 할 사건은 하지 않고 뭉갰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그런 김 전 차관이 수사로 면죄부를 받은 과정은 누가 봐도 ‘이례적’이라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사건 흐름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동영상 화질 등의 문제로 당사자인지 확인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불러서 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등은 확인하는 게 사건의 기본 구조”라며 “동영상 확인 불가 등을 이유로 기소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김 전 차관을 최소한 불러서 조사라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당시 언론들이 떠들썩했을 만큼 큰 이슈라면, 더욱 소환이 필요했다는 비판이다.
자연스레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강력부장, 3차장검사, 지검장)과 대검찰청(총장) 등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진다. 사건을 덮기 위해 급급했다는 주장이다. 사건을 담당했던 강해운 당시 강력부 부장검사(현 서부지검 형사1부장) 등 몇몇 법조인들은 실명이 언론을 타고 포털 사이트에서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당시 박근혜 정권 차원의 지시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수사팀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기 때문에 담당 검사만 문제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앞선 법무부 관계자는 ”법무부 차관에 대한 수사이자, 당시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박근혜 정권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이지 않냐“며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넘긴 사건의 피의자를 소환조차 하지 않는 결정들은 절대 수사팀 라인에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최소 서울중앙지검장, 최대 검찰총장 정도가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전달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청와대에서 ‘수사를 확대하지 말라, 처벌하지 말라’는 사인이 왔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두 차례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해 의문은 상당하지만, 과거사위가 실제 수사로 확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공소시효가 문제다. 당시 수사팀 흐름에 밝은 법조계 관계자는 ”피해자 A 씨가 두 차례 검찰 조사에서 2007년, 2008년으로 동영상 촬영 시점을 언급했는데 둘 다 공소시효가 완료된 사건에 해당한다“며 ”지금 재수사의 목적이 김 전 차관 망신주기라면 할 수 있지만, 공소시효 때문에 김 전 차관 처벌은 불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사위의 목적인 ‘검찰권 남용’을 지적하기 위함이라면, 수사 강제권이 없다. 게다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검찰이 나서기는 힘들다. 앞선 법무부 관계자는 ”김 전 차관 수사가 이상한 점은 많지만 지금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검찰이 스스로 ‘수사 봐주기가 있었다, 잘못했다’라고 인정하는 멍청한 짓을 하겠냐“며 ”설사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재수사를 하더라도, 이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끝난 뒤에나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