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정보유출 우려 대형 로펌 선임 꺼려…최근엔 검찰·법원 대응 전문 ‘부티크 로펌’ 대세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국정농단 수사 초반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삼성 내 법무팀 차원에서 대응했다. 웬만한 로펌보다 크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그룹 법무팀. 규모도 규모지만 적지 않은 수의 판검사 출신 법조인 진용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일부 업무를 로펌에 외주를 주고 법무팀이 주도적으로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법원의 구조를 잘 아는 법무법인을 수배했고, 이 과정에서 태평양이 낙점됐다.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을 향한 첫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태평양이 파트너로 낙점됐다.
그 후 삼성 미래전략실이 전격 해체되면서 법무팀이 공중분해되자, 1심과 2심을 거치면서 태평양이 사건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을 때만 하더라도 ‘로펌을 바꾸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지만, 이재용 부회장 측은 태평양을 신임했고 결국 2심에서 핵심 혐의를 무죄로 뒤집으며 집행유예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삼성이 그간 보여준 태도와는 다른 흐름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원래 이건희 회장의 원칙이 대형 로펌에 중요한 사건을 맡기지 말라는 것이라고 들었다”며 “돈을 많이 주면 뭐든 하는 대형 로펌에 기업 오너 일가의 예민한 정보들이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 삼성이 태평양에 사건을 맡기는 것에 대해서 자연스레 “삼성이 변했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럼에도 김앤장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조심스런 태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평이 나왔다. 김앤장은 국내 기업들과 다투는 해외 기업들의 사건 변호를 주로 맡기 때문이다.
결국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들이 잇따라 수사를 받으면서 대형 로펌들 사이에서 대기업 사건을 맡기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면서도 “겉으로 보기에는 김앤장과 광장(부영그룹 사건 변호), 태평양과 같은 대형 로펌의 이름만 등장하지만 실질적으로 사건을 하는 곳은 따로 있다, 절대 대형 로펌 혼자서만 사건을 맡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바로 부티크 로펌(특정 법률 분야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작은 규모의 로펌으로 로펌 형태가 아닌 개인 법률사무소 형태인 경우도 있다)이다.
이 중 서초동(법조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단연 LKB앤파트너스다. 지난 2011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대법원장 비서실장, 인사실장, 사법정책실장를 두루 거친 이광범 대표 변호사(사법연수원 13기)가 설립한 LKB앤파트너스는 검찰이 사건을 재판에 넘기고 나면, 자주 등장하는 로펌이다. 대형 로펌들만큼 일반인들에게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부장판사급 전관 변호사를 대거 영입해 가장 단단한 ‘재판 대응 변호인’을 확보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초동 김앤장으로 불릴 정도다.
성과도 쏠쏠하다. 지난 2015년엔 ‘삼성 세탁기 고의 파손’ 혐의로 기소된 조성진 LG전자 사장의 변호를 맡아 무죄를 이끌어냈고, 최근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항소심에 김앤장 외에 추가로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성을 앞세워 개별 사건에 적지 않은 금액의 선임료를 제시하는데, 그러다보니 이런 부티크 로펌이 돈을 더 알차게 벌어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LKB앤파트너스 홈페이지 캡처
부티크 로펌도 검찰과 법원으로 큰 틀에서는 나뉜 분위기다. LKB앤파트너스가 법원을 중심으로 4~5년 전부터 이름을 날렸다면, 검찰을 상대로는 특수통 검사장 출신 강찬우 변호사(사법연수원 18기) 등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이름을 날리고 있다. 전관예우 논란이 있긴 하지만, 검찰의 사건 접근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게 장점이라는 평. 구속영장 기각을 받아냈을 경우 성공 보수가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달한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다.
앞선 대형 로펌 관계자는 “결국 대기업 사건은 김앤장, 세종, 광장, 태평양과 같은 4대로펌들이 사건만 수임할 뿐 구체적인 대응은 검찰이나 법원 전문 부티크 로펌과 함께한다”며 “차관급인 고등부장판사나 검사장들이 그만둘 경우 일반 로펌 취업이 불가능해지면서 이런 부티크 로펌으로의 이직이 대부분인 점, 고위 전관 변호사를 찾는 대기업 오너 일가들의 수요가 여전히 남아 있는 점 등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