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텃밭이 어딨능교!” 민주당 10곳 이상 자신…한국당 정권 심판론 기대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당시 선조에게 올린 장계 내용이다. 그 후 이순신은 조선 수군보다 10배 이상 숫자의 전함을 동원한 왜군을 섬멸하고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칠천량 해전의 참패로 괴멸 위기이던 조선 수군을 재건, 정유재란의 전세를 전격적으로 바꾼 순간이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기적의 12척’이 아니라 ‘기적의 12석’을 둘러싼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다. 6월 13일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전국 12곳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서울 송파을에 출마한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후보. 박은숙 기자
이번 재보궐선거는 12명의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만큼 미니 총선 급이다. 국회의원 정원 300명(현재 288명) 중 비어있는 4%를 채우게 된다. 앞서 가장 많은 의원(15명)을 뽑은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 근접하는 규모다. 12곳 전체 판세를 가늠해볼 때 일단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텃밭인 호남을 비롯해 상당수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거물급 후보가 거의 없어 주목을 확 끄는 선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최재성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간판을 달고 나온 서울 송파을이 가장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지역구로 꼽힌다. 더욱이 이곳에서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심혈을 기울여 영입한 배현진 전 아나운서가 최 전 의원에게 맞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대표 간의 여야 영수 대리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송파는 서울 강남3구 중 한 곳으로 과거엔 보수 우세 지역이었만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했던 최명길 전 의원이 당선되는 등 변화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송파에 이어 2번째 전국적 관심지역을 꼽는다면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국회의원직 사퇴로 보궐지역이 된 서울 노원병이다. 8년 동안 노원구청장을 지내 지역 기반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 김성환 후보가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과거 이 지역에서 안철수 후보와 대결을 펼쳤던 ‘박근혜 키즈’ 이준석 위원장은 바른미래당 후보로 공천됐다. ‘안철수 키즈’로 국민의당 부대변인을 지낸 뒤 한국당으로 당적을 변경한 강연재 변호사가 선전할 경우 보수표가 분열돼 민주당 후보가 유리해질 수 있다.
인천 남동갑의 경우 민주당에서 맹성규 전 국토교통부 2차관, 한국당 윤형모 변호사, 바른미래당 김명수 남동갑 지역위원장, 정의당 이혁재 전 사무총장이 출마 의사를 밝혔는데 이곳 역시 보수표가 나뉘면 여당으로 판세가 기울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영남은 전통적으로 한국당 강세지역이지만 이번 재보궐선거는 안갯속이다. 송언석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내세워 한국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경북 김천을 제외하고는 한국당이 자신 있게 승리를 점치지 못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을은 민주당 윤준호 후보와 여의도연구원장 출신의 한국당 김대식 후보,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바른미래당 이해성 후보의 3파전이 펼쳐진다. 이곳은 그동안 보수의 텃밭이었지만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홍준표 대표보다 표를 더 많이 획득(4.9%p 차), 이번만큼은 승부를 알 수가 없다.
울산 북구 역시 복잡한 혼전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무소속 윤종호 후보에게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양보했던 민주당의 이상헌 후보가 높은 당 지지율을 바탕으로 다시 출마했다. 진보진영에서는 민중당 권오길 후보가 전 국회의원인 정의당 조승수 후보를 누르고 단일후보로 나섰다. 북구청장을 지낸 바른미래당 강석구 후보도 나왔고 한국당은 이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박대동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이곳은 매번 총선에서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가며 당선돼 이번 선거도 오리무중이다.
경남 김해을에서는 민주당이 김정호 영농법인 봉하마을 대표, 자유한국당은 서종길 전 도의원을 공천했고, 이영철 전 김해시의원이 무소속으로 뛴다. 16대까지 보수의 아성이었지만 17대부터 18대까지 열린우리당 최철국 전 의원, 19대는 새누리당 김태호 전 의원, 20대는 민주당 김경수 전 의원이 당선되는 등 승부를 쉽게 점칠 수 없는 곳이다.
충남 천안갑 선거구에는 지역위원장인 민주당 이규희 후보와 KBS사장 출신인 한국당 길환영 후보, 천안시의회 의장을 역임한 바른미래당 이정원 후보 간 3파전이다. 천안갑은 지난 총선에서 한국당 박찬우 전 의원이 당선된 만큼 보수정당이 해볼 만한 지역 중 하나다. 하지만 여당인 민주당이 높은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어 여야 모두 최종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다.
충남 천안병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주치의 출신인 윤일규 후보가 민주당 간판으로, 한국당에서는 충남지사 비서실장을 역임한 이창수 후보가 나온다. 바른미래당은 의사 출신 박중현 후보다. 충북 제천·단양에는 민주당 이후삼 지역위원장과 한국당 엄태영 전 제천시장, 바른미래당 이찬구 지역위원장이 후보로 최종 확정됐다.
각 정당이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는 영호남과 달리 충청권의 경우 그동안 전국 표심을 나타냈다. 여야 모두 재보선 전체 승패를 결정짓기 위해 충청권 승리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중앙당 차원의 지원사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이번 충청권 재보선 결과에 따라 충청권 1당 지위가 바뀔 수 있다. 충청권 국회의원 의석수는 모두 27석인데 민주당과 한국당 양당이 동수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민주당 12석, 한국당 12석, 공석 3석이다. 이번 선거 결과가 단순히 국회의석수 계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중원의 주도권을 민주당과 한국당 중 누가 잡느냐를 결정하는 셈이다.
호남에서 치러지는 2곳의 선거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서로 호남의 적자라고 주장하는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후보 간의 다툼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주당의 초강세라는 게 지역 정가의 일관된 관측이다. 광주 서구갑은 민주당 송갑석 후보와 평화당 김명진 후보가 맞붙는다. 지지율 조사에서는 송 후보가 김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김 후보는 맹추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전남 영암·무안·신안에서는 과거 19대·20대 총선에서 2차례 당내 경선에서 경쟁했던 민주당 서삼석 후보와 평화당 이윤석 후보가 3번째 대결을 펼친다. 서 후보가 호남에서 인기 절정인 민주당 지지율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유리한 형국. 이 후보는 권노갑·박지원 등 동교동계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의 현재 의석수는 118석으로 113석인 한국당과의 차이가 5석이다. 남북회담 성사 이후 80%에 육박하는 대통령 지지율과 50%에 달하는 당 지지율에 힘입어 12곳 중 최대 10곳 이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민주당은 한국당과의 격차를 최소 10석 이상으로 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당은 일단 경제와 민생 문제를 파고들면서 정권 심판론으로 승부할 방침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소홀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당이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과거 전례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재·보궐선거는 정권 심판론을 앞세운 야당에 유리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의석수 2~6개짜리 6번의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모두 졌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4차례의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세 번이나 졌다.
자유한국당 한 현역 의원은 “야당에 어려운 선거임이 틀림없다. 한국당도 그러하지만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도 이번 선거에서 성적이 나쁘면 간판을 내려야 한다. 2020년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기에 6·13 선거 성적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발을 알리는 기적 소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