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급+최소 5명 목하 고민중…여권발 정계개편? 문만 열어놔도 제발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선거 다음 날 만난 청와대와 국회의 여권 인사들은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은 승리를 점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스코어가 벌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서울 인천 경기 석권은 확신을 했지만 솔직히 부(부산)울(울산)경(경남)은 자신하지 못했다. 여론조사로는 앞서 있어도 막상 투표가 끝나면 결과가 달라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조차 전승을 거둬 처음엔 믿기 어려웠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 친문 의원도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폐족이라 불리며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당이다. TK를 제외하고 전국 지도가 파란색으로 칠해진 것을 보니 감격스러웠다. 기초의회에선 TK에서조차 우리 후보들이 선전하거나 승리해 이젠 명실상부 전국정당이 됐다”고 했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보수 야당이 살아날 가망이 있겠느냐”라고 되물으면서 “큰 변수가 없는 한 민주당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여권 내엔 ‘부자 몸조심’ 기류가 확산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국정 전반을 다 잘했다고 평가하고 보내준 성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면서 “선거 결과에 자만하거나 안일해지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는 선거 대승으로 들뜬 정부·여당을 향한 메시지로도 읽힌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도 “자만하지 않고 자세를 낮출 것”이라고 했다.
이는 2년 후 총선을 의식한 행보라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승리에 취해 자만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자칫 다음 선거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정권 재창출을 넘어 장기 집권을 위해선 다음 총선이 분수령이다. 이번 선거가 예선이었다면 총선이 본선인 셈”이라면서 “선거 압승으로 그만큼 책임감도 커졌다. 이젠 핑계거리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문 대통령 어깨가 무거워졌을 것”이라고 했다.
어찌됐건 집권 2년차를 넘긴 문재인 정부는 각종 개혁 입법을 위한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또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남북·북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에 한층 힘을 쏟을 수 있게 됐다. 이동윤 정치평론가는 “선거 과정에서 소득주도성장을 바탕으로 하는 J노믹스가 도마에 올랐었다. 최저임금을 둘러싸곤 내부 갈등도 벌어졌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통해 문 대통령 경제정책은 재신임을 받았다. 가장 큰 소득일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선 의석수 과반을 확보해 문 대통령 국정 운영을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재보궐 11석을 보태 130석이 된 민주당이 과반을 위해 필요한 의석수는 21석.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민중당, 무소속 의석수까지 합치면 총 156석으로 과반을 넘긴 셈이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수치다. 더군다나 자유한국당(113석)과 바른미래당(30석)이 합칠 경우 원내 1당 자리도 넘겨주게 된다.
여권 일각에서 인위적 정계개편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무소속 의원 영입 및 민주평화당과의 통합 등을 추진해 최소한 원내 1당 안정 의석수인 144석, 최대한 과반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는 압도적 선거 승리에 따른 자신감의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간 합당이 이뤄질 경우 이 시나리오는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춘석 민주당 사무총장도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합당해 (민주당의) 제1당 지위가 어려워지면, 우리도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 가능성은 낮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우선 민주당은 선거가 끝난 후 차기 당권 경쟁에 돌입했다. 적어도 전당대회가 열리는 8월까진 정계개편 여력이 없다는 얘기다.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민주평화당이 민주당과의 통합 논의 등에 응할지도 불투명하다. 민주당 내에서도 “규모 차이가 이렇게 큰데 무슨 당 대 당 통합이냐. 흡수통합이면 몰라도”라는 기류가 팽배하다. 과거 정치권에서 빈번했던 ‘의원 빼가기’ 등을 통해 정치적 세를 불리는 것에 대해 문 대통령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선 인위적 정계개편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민주당이 과반에 가까운 의석수를 확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선거를 통해 민심을 지켜본 의원들이 다음 총선을 위해 ‘결단’을 내릴 수 있어서다. 민주당의 몇몇 중진 의원들은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야당 의원들을 은밀히 접촉해, 입당 여부를 타진했다고 한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선거 과정에서 흔들린 의원들이 제법 있다. 아마 결과를 보고 마음을 굳혔을 것이다. 우리가 굳이 무리하게 정계개편이나 영입제안에 나설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면서 “문호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말했다.
취재 결과, 보수 야당의 한 중진급 의원은 최소 5명과 함께 민주당으로의 입당 여부를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선거 전 민주당 핵심 인사와 두 차례 만났고, 조만간 다시 만나 구체적인 움직임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와 뜻을 함께하고 있는 의원실 관계자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합친들 무슨 시너지가 나겠느냐. 다음 총선이 두렵다”면서 “보수 진영에서 그 나물의 그 밥으로 정계개편이 이뤄진다면 아마 민주당으로 이탈할 의원들이 꽤 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