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비판 광고로 제재…“여권 돌려달라” 청와대 청원…장 목사 “타협하지 않을 것”
유신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가 고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가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주변인에 따르면 6월 27일 큰 고비를 넘긴 김 여사는 현재까지 의식이 회복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원래 부정맥과 협심증으로 고생했던 김희숙 여사는 4년 전 췌장암까지 발견되며 건강상태가 나빠졌다. 시간이 지나며 회복돼 최근까지 큰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했지만 지난 5월 초 증세가 급격히 악화하며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현재 장남과 차남이 김희숙 여사의 곁에서 간호 중이며 타지에 거주하는 나머지 자제들도 병원을 오가고 있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는 “어머니 연세가 90세가 넘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2~3일 정도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 장호준 목사가 귀국한다 하더라도 어머니를 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김희숙 여사가 막내아들 장호준 목사를 많이 그리워했다고 털어놨다. 차남 장호성 씨는 “어머니께서 막내아들을 많이 찾으셨는데 이제 말을 못하시니 그럴 수도 없다”며 “물론 장 목사가 당장 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머니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셔서 일단 어제(27일) 두 사람이 전화통화를 했다. 어머니는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장 목사가 목소리를 크게 높여 수화기 너머로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어머니께서 조금 반응을 하시는 듯했다”고 전했다.
2016년 3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장준하 선생의 삼남 장호준 씨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장 목사는 2015년 말부터 해외 일간지 2개와 인터넷에 ‘불의한 정권을 투표로 심판합시다’라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했다. 중앙선관위는 장 목사가 선거를 앞두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도록 특정 정당을 비판했고 이것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고발 취지를 밝혔다. 중앙선관위의 요청을 받은 외교부 역시 2021년 4월 13일까지 장 목사의 여권 효력을 무효로 하는 조처를 했다. 해외에서 선거법을 위반하여 여권 무효화된 사례는 2012년 재외선거가 도입된 이후 장 목사가 처음이다.
올해 초 재판부가 선고한 1심 판결을 두고서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4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조의연)는 장 목사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장남 장호권 씨는 “검사가 벌금 70만 원을 구형했는데 판사가 벌금 200만 원을 내라고 판결한 것”이라며 “정치적인 사건에서 판사가 검사의 구형보다 더 높은 징계를 내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장 목사는 재판부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장 목사가 국내로 입국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여권제재가 해제돼 항소심을 포기하고 벌금을 내면 정상적으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2016년 중앙선관위에서 장 목사의 여권을 제재해달라는 요청이 왔지만 이후 다시 중앙선관위에서 여권제재를 해제해달라는 요청이 와 2017년 12월부터 외교부가 장 씨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제재는 없다”며 “다만 항소심이 진행되는 경우 여권 발급 시 필요한 신원 조사에 걸려서 여권 발급이 되지 않는다. 입국을 위해서는 장 목사가 항소심을 포기하거나 영사관에 여행증명서를 신청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호준 목사는 당장 입국하지 못하더라도 항소심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다. 6월 28일 장 목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는 말씀조차 못 하실 만큼 위독하시지만, 저는 제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자식이 옳고 그른 것을 가리기 위해, 정의로운 일을 위해, 항소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모습 보시기를 더 원하시리라 믿는다”며 “동지 여러분들의 염려와 걱정 진심으로 고맙습니다만 저는 아버지의 삶과 제가 믿는 어머님의 뜻을 따라 항소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 목사는 자신의 투쟁이 지금의 정권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장 목사는 “제 여권 발급 제한 조치는 사법부의 결정입니다. 그러므로 제 문제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민주정부 즉 행정부가 사법부를 관리 통제하지 않는 정부를 세우기 위해 촛불을 들었던 우리의 의지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 점 동지 여러분들께서도 명확히 인지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라고 밝혔다.
주변인에 따르면 장호준 목사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진다. 사법부의 결정에 대해 행정부가 간섭하게 할 수 없으며, 자신으로 인해 예외조항이 생긴다면 이 역시 특혜라는 것이다. 인권운동가이자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의 저자 고상만 씨는 “장호준 목사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장 목사는) 어머니를 뵙고 싶지만, 항소를 포기하는 것은 불의에 대한 타협이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이를 원하지 않으실 것이란 입장”이라며 “장 목사는 최근의 청와대 청원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주변인인 우리가 나서고 있다. 장 목사는 장준하 선생님의 기를 많이 닮으신 분”이라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