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적 조현민 등기이사 재직은 면허취소 사유지만 1700명 일자리 걸려…국토부 결정 주목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소환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5일 수백억 원대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구속을 면했다. 이날 법원은 “피의 사실들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그러나 상속세 포탈 등 조 회장에 대한 보강 수사가 이어지고 있어 조만간 영장이 재청구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 회장 일가가 모두 구속을 면한 것이 오히려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한진 한 간부는 “단순히 영장이 기각됐다고 이번 사태가 끝날 것 같진 않다”며 “정부 모든 부처가 한진을 주시하는 상황에서 우리끼리 해법을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미국 국적자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국내 항공법을 어기고 6년간 진에어 등기이사로 재직한 사실을 근거로 항공 면허 취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현행법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은 국내 항공사업자가 될 수 없으며, 이 경우 국토부는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
국토부는 지난달 29일 진에어 면허 취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진에어 측 의견 청취를 위한 청문회를 진행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진에어에 대한 면허가 취소될 경우 지난 3월 기준 1700여 명의 직원은 일자리를 잃는다. 국토부 안팎에선 당초 국토부가 면허 취소를 준비하다가 여권 핵심부의 만류로 결정을 미룬 것이란 말이 나온다. 재계 한 인사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직접 취소 결정을 내리려다가 재고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진에어는 지난 2일 100명 규모의 신입사원 공채 계획을 언론에 밝혔다. 국토부 판단과 별개로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항공업계에선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현 정부가 대량 실업을 감수하면서까지 면허를 취소할 가능성은 낮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최근 국토부가 진에어의 항공법 위반 사실을 눈감아준 공무원 3명을 직접 검찰 고발하고, 지난해 9월 승진한 항공정책실장(1급)을 경질한 것을 볼 때 진에어 역시 최종 책임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란 반론도 제기된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진에어 주가는 지난해 12월 상장 이후 최저인 2만 4000원(7월 6일 종가 기준)대까지 추락했다. 한진 사태 전까지 3만 2000원대로 순항하던 주가가 떨어진 것은 향후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특히 재계에선 진에어에 대한 사업 허가가 당장은 유지되더라도 한진 오너 일가가 지금처럼 경영권을 행사하긴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진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에 대해서도 경영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비난 여론이 팽배한 마당에 진에어 역시 같은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재계에선 진에어가 국토부의 압박으로 결국은 다른 기업에 경영권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하다. 한진 내부에서조차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지난 1일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를 받아 피의자 신분으로 강서경찰서에 출석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최준필 기자
지난 6일 종가 기준 진에어의 시가총액은 7200억 원 규모다. 경쟁회사인 제주항공의 시가총액보다 약 3000억 원이 적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1조 원에 육박한 매출을 올렸고, 진에어는 그보다 작은 9000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다. 자산 역시 지난 1분기 기준 제주항공(8800억 원)이 진에어(5500억 원)보다 많다. 그러나 숫자로 드러나지 않은 진에어의 국제노선 가치를 더하면 진에어의 시가총액은 저평가돼 있다는 분석이 있다. 앞의 한진 내부 인사는 “대한항공으로부터 받은 중장거리 노선을 돈으로 환산하면 진에어의 가치는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만약 면허가 취소된다면 이후 SK와 한화가 진에어 인수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고 있다. 그러나 두 회사 모두 인수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SK는 최근 항공회사 출신 임원을 영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수설에 휩싸였다. ‘스마트 공항’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인수설의 ‘재료’가 됐다. 하지만 관련 인수설이 현 정부를 흠집 내려는 의도로 확산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SK 측은 “전혀 100%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화는 이번 정부 초기 신규 저비용항공사(LCC) 설립에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한 전력이 있다. 당시 국토부는 한화가 밀었던 LCC인 에어로K의 사업 승인을 불허했다. 또 한화는 국내 방산업계에서 민간기업 기준 LIG넥스원과 양강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때문에 한화가 언젠가 항공사업에 진출할 것이란 전망은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한화 측은 “(에어로K는) 단순 FI로 참여한 것이라 이번 건과 전혀 상관이 없다”며 “(인수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선 CJ대한통운을 앞세워 물류사업을 확장 중인 CJ도 인수 후보라는 말이 나온다. CJ 측은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일반 물류회사가 LCC를 인수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시너지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차라리 전세기를 가진 업체 간 경쟁을 유도하고 비용을 낮추는 게 물류회사로선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LCC의 항공업계 시장 점유율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국토부 항공시장 동향에 따르면 국내선 기준 2016년 44.1%였던 LCC 시장 점유율은 2018년 1분기 49.2%까지 상승했다. 국제선 역시 2016년 14.5%에서 2017년 20.1%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진에어의 국제선 시장 점유율은 5.1%에서 6.3%로 높아졌다. 아직 가능성이지만 진에어가 매물로 나올 시 인수 유인은 충분한 셈이다.
진에어 인수설에 관련된 기업 한 관계자는 “인수설이 전혀 허무맹랑한 얘기만은 아니다”라며 “정부 입장에서 보면 한진 오너 일가에 벌을 내림과 동시에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카드다. 국토부가 최종 결정을 내릴 때까지 인수설은 계속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진에어 관계자는 “인수설은 처음 듣는다”라며 “아직 국토부로부터 청문회 관련 구체적 일정을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