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특정 사조직과 친박 비선 합작품 가능성 높아
국방부 기무사 특별수사단장에 임명된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대령).
박근혜 정부 시절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내에선 정권 실세들 대리인 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장경욱 전 사령관(육사 36기)은 친박 실세가 졸업한 특정 고등학교 인맥의 군 인사 전횡을 문제 삼았다가 취임 7개월 만에 그만뒀다. 그 뒤를 이은 이재수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생 박지만 씨의 육사 동기(37기)다. 그러나 이 전 사령관 역시 일 년 만에 사실상 좌천 인사를 당했는데, 당시 박 전 대통령 비선그룹으로부터 괘씸죄를 샀다는 말이 돌았었다.
이 전 사령관이 나간 자리엔 육사 38기인 조현천 전 사령관이 올랐다. 조 전 사령관은 촛불집회 계엄령 검토 문건이 만들어졌을 당시 기무사 수장이다. 이번 사태의 열쇠를 풀 핵심 인물인 셈이다. 군과 정치권에선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 참모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이 조 전 사령관을 지원사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조 전 사령관은 군 내 사조직으로 알려진 ‘알자회’ 멤버이기도 하다.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 포진돼 있던 일부 군 인사들이 조 전 사령관을 후원했다는 게 정설이다.
정권 실세들 파워게임 무대였던 기무사는 본연의 업무 외에 정치적 용도로도 활용됐다. 기무사 보고서엔 군과 무관한 정치 동향까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TF를 꾸려 민간인까지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담화를 할 때 감성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문건도 추가로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기무사 고위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무사가 정권에 이용된다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땐 최소한의 보고 체계가 무너졌다. 기무사령관을 마음대로 갈아치우지 않았느냐. 직속상관인 국방부 장관도 받아 보지 못한 보고서가 아무 권한 없는 민간인이나 청와대 참모에게로 건네진 적이 있다고 해 충격을 받았었다. 또 일부는 사령관을 건너뛰고 아예 외부 인사 지시를 받는다고도 했다. 그들이 만든 보고서는 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정권 유지가 아니라 특정 세력 기득권을 위해 기무사 직원들이 움직인 것이다.”
기무사는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린 직후부터 계엄 관련 문건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기무사는 2016년 11월 초 ‘국방장관은 질서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께 계엄 선포를 건의한다’ ‘기무사령관은 계엄이 선포되면 기무사 헌병 경찰 등으로 구성된 수사국을 꾸린다’ 등의 내용이 담긴 문건을 작성했다. 촛불집회 초기부터 계엄이라는 극단의 상황을 논의한 배경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기무사는 2017년 3월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일주일가량 앞두고는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탄핵 심판 결과에 불복한 대규모 시위대가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등을 점거할 경우 계엄을 포함한 군 차원 대비가 필요하다는 게 골자다. 조현천 전 사령관은 이 보고서를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도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 관계자는 “이 문건은 기무사 것이 맞다. 이 양식은 국방부 장관 또는 청와대로 보낼 때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앞으로 진행될 특별수사단과 검찰의 수사 초점은 누가, 왜 이러한 문건을 만들었는지에 맞춰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앞서 언급한 전직 기무사 고위인사는 “이 계엄 문건은 친박 비선 실세들과 가까운 군대 내 특정 사조직이 기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계엄 타령이냐. 정상적인 군인들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다. 박근혜 정권 때 권력에 결탁했던 일부 군인들이 만들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 역시 “한민구 장관에게 보고된 것은 형식적 절차였던 것으로 안다. 아마 정권 실세들에게 주기 위한 문건이었을 것”이라면서 “군대와 청와대, 국정원 등에 근무하고 있던 육군사관학교 출신 사조직 소속 군인들이 주도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즉, 기무사가 만들었다는 계엄 문건은 애초부터 군 내부 검토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친박 비선 실세 그룹과의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기무사 문건이 작성됐을 무렵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관계자들은 보고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통상 기무사가 만든 보고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거쳐 대통령에게로 올라가는데, 이러한 내용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 관계자는 “기무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군에서 계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오갔다는 얘기가 돌긴 했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군에서 만든 민감한 보고서의 경우 국가안보실이 맡기도 한다. 계엄과 관련된 내용이 보고됐다면 민정보다는 그쪽일 것”이라고 했다.
친박 핵심 인사들은 말을 아꼈다. 다만, 대통령 비선 그룹이 기무사와 국정원 인사에 개입하고 민감한 정보들을 보고받았었다는 것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공개된 문건들 말고도 추가로 더 나오는 것 아니냐며 전전긍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친박 의원은 “정보는 곧 힘이다. 기무사령관 자리를 놓고 왜 싸웠겠느냐. 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보 생산을 요구하곤 했다”면서 “계엄 검토 역시 정치권 쪽에서 ‘오더’를 내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군에서 먼저 계엄이라는 안건을 꺼낼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 참모 3인방과 가까웠던 한 정치권 인사는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탄핵 심판을 앞두고 직무정지 상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1월경 계엄을 언급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직무가 정지됐다. 이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이 한 참모에게 ‘어떻게 됐느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기무사가 2016년 촛불집회 때 만든 계엄 문건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는 기무사 문건이 박 전 대통령에까지 보고됐음을 추론케 한다. 2017년 3월 기무사가 계엄 문건을 또 만든 것도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보였던 것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