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낭창낭창 걸으며 나를 찾아가는 여행
삔우린 파욱 또야 명상센터 앞에서.
숲속으로 난 작은 길을 일행들과 걷습니다. 길은 고요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뿐. 길가에 핀 어여쁜 꽃들. 이름 모를 초록나무들. 하늘에는 선명한 뭉게구름이 떠있습니다. 이 길 위에서 인생의 길을 물어봅니다. 아프라니히타(Apranihita). 산스크리트어로 ‘정처 없이 걷기’. 어떤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게 아닌, 온전히 걷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걷기입니다. 고요와 평안을 통해 삶과 마음의 균형, 삶의 의지를 얻는 걷기입니다.
최근 세계의 트렌드는 건강이 곧 행복입니다. 그래서 매일 최소 30분을 걸어라. 너무 빨리 걸을 필요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발걸음에 집중하라. 현자들은 이런 충고를 많이 합니다. 오늘 나의 발걸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발걸음은 이 길 위에 있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후회스럽고, 앞날을 생각하면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마음속에 정체모를 불안을 안고 삽니다. 불안한 이유를 찾지 않고 내버려둡니다. 자연과 함께 느리게 걷는 일은 그것을 발견하고 치유하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용서하고, 탐욕과 교만의 덩어리를 깨부수는 일이 누구에게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전 10시 30분 하루의 마지막 식사시간. 외국인과 여행객도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공양 행렬 속의 어린 동자승.
이곳에 잠시 머물며 맨발로 걷는 이들을 많이 봅니다. 이 나라는 ‘맨발의 나라’입니다. 여기서 맨발은 평등을 상징합니다. 어느 유적지든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미얀마에 처음 와서 신기한 것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걸음걸이입니다. 모두 낭창낭창 느린 걸음입니다. 뛰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남자도 치마를 입으니 보폭이 짧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한국 사람은 멀리서도 금방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면, 걷는 모습이 다르답니다. 몸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빠르게 걷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목적지로 빨리 가야 합니다.
또 하나는 무더위를 어떻게 이기며 사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부자들은 에어컨을 달고 삽니다. 여름은 40도가 넘고 우기도 비가 안 오면 무덥습니다. 거리를 잠시만 걸어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립니다. 한국 사람들은 에어컨 없이는 살기 힘듭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적응한 탓도 있지만 생활습관이 좀 다릅니다. 저도 아주 더우면 선풍기를 쓰지만 이곳 주민들처럼 살게 되기까지는 정말 힘들었지요. 사람들은 느리게 움직이고, 그늘을 잘 이용하고, 조금씩 먹기 때문에 살이 찐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생활습관이 좀 다릅니다. 게다가 쪼리에 맨발로 다니니 발에 땀이 안 납니다.
많은 이들의 식사를 위해 밥을 짓는 찜솥(왼쪽). 오솔길 사이로 명상을 위한 작은 집들이 보인다.
마지막 궁금했던 것은 아동이나 청년들이 어른들이나 노인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모습입니다. 은퇴 후 한국 사람들이 노후에 여기 와 살면 괜찮겠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시골은 물론 도회지에도 3대가 같이 사는 문화 탓인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겐 관대하고, 밝게 키웁니다. 버릇이 없게 보이긴 합니다. 아이들도 할아버지 일을 돕기 위해 학교를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립니다. 좀 크면 어른들을 멀리 하는 한국의 아이들과는 다른 풍경입니다. 그래서인지 제 주변에도 가까이 지내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삔우린 숲속을 걸으니 이 땅에서 보낸 지난날들이 떠오릅니다. 지금 서 있는 이 길. 마음도 고요해지고 숲속에 난 작은 길이 다만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문득 제가 아는 이웃 분의 카톡창에 써진 글귀가 생각납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주라. 과거나 미래에 마음을 두지 않고, 지금 이 걸음에 집중하는 행복함을 느끼라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