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 막히자 김경수 지사 수사에 ‘집중’
노회찬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준필 기자
겉으로는 안타까움을 드러냈지만, 속으로는 ‘계획이 어그러졌다’는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팽배했다. 특검팀은 곧바로 새로운 수사 성과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26일을 기점으로 공식 수사 개시 30일, 1차 수사기한 60일 중 반환점에 다다른 특검팀이 이제 와서 새로운 수사 타깃을 설정해 수사를 확대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전망이 힘을 받는다. 노회찬 대표의 사망이 이번 특검에 가장 큰 변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당초 드루킹 특검팀은 경찰 수사에서 드러난 김경수 경남도지사 외에 노회찬 대표에 대한 경공모 핵심 회원인 도 아무개 변호사의 5000만 원 불법 정치자금 제공을 특검팀만의 출구전략으로 선택했다. 이미 경찰이 드루킹 김동원 씨와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관계를 일부 밝혀낸 만큼, 특검팀만의 수사 성과 차별화 지점을 노회찬 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잡은 것이다. 경찰이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영역이기 때문에 관련 수사를 우선 시작했다. 특검팀이 청구한 첫 구속영장 대상자가 도 아무개 변호사였던 점도 이를 방증하는 사례다.
하지만 도 변호사의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압수수색조차 하지 않았던 노회찬 대표가 극단스러운 선택을 하면서, 특검팀의 계획은 모두 틀어졌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찰 관계자는 “원래 특검팀은 앞선 수사기관의 1차 수사와 다른, 차별화된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실패한 게 된다”며 “지금 정권을 흔들지 않아야 하므로, 여당 정치인을 겨냥하지 않으면서도 진보 세력과 연결 접점이 많았던 드루킹을 수사하기에 있어 최고의 성과는 노회찬 정의당 대표 구속 및 기소였다. 가장 핵심이 될 수 있는 수사 영역을 잃은 셈”이라고 진단했다.
노회찬 대표 사망과 함께 쏟아져 나온 정치권 비판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정의당을 비롯, 여당을 중심으로 ‘표적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노회찬 대표 사망 당일, “본질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특검의 노회찬 표적 수사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입장을 내놨는데, 이에 특검팀은 “표적 수사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허익범 특검팀 검사는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의정활동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분의 비보를 접하고,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고인이 된 노회찬 대표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그나마 노회찬 대표가 유서에 불법 정치자금 수수를 인정한 것은 특검팀 입장에서는 다행”이라며 “그 부분마저 없었으면, 만일 그에 대해 노 대표가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면 특검팀은 더 큰 비난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드루킹 협박죄까지? 정의당 반발에 ‘움찔’
드루킹 김 씨가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 행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박은숙 기자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을 통해 “(정의당 관계자를 조사하겠다는 것이) 어떤 의도인지 이해 못하겠다”며 “특검의 무도한 행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수사를 노회찬 대표가 아닌, 심상정 의원 등으로 확대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인데, 이에 특검 관계자는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 필요 시 수사협조를 구하고 협조 방식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해야 했다.
# 수사 기한 연장 검토 없이 ‘새 출구전략’ 찾아라
노회찬 대표 사망으로 인해, 정의당으로의 수사 확대가 불가능해진 특검팀. 문재인 정부를 정통으로 겨누기에는 한계가 분명한 특검팀은 현재 수사기한 연장에 대한 필요성은 따로 검토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남은 30일 동안 전력을 집중해서 드루킹 관련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겠다는 게 특검팀 방침이다.
특검팀은 사건의 시작점인 드루킹과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관계 입증에 다시 집중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특검팀은 경공모의 사무실이자 일명 ‘산채’라 불리며 사실상 아지트로 사용된 경기 파주 소재 느릅나무 출판사, 인근 컨테이너 창고 1동, 네이버·다음·네이트 등 주요 포털 사이트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해 방대한 분량의 물적 증거를 확보했다. 앞선 경찰·검찰 수사팀(25.5 테라바이트)보다 많은 분량(28테라바이트)의 자료를 찾아냈다.
이를 토대로 드루킹 일당이 새로운 추가 댓글 조작 범행도 밝혀냈다.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인터넷 기사 5533개의 각 댓글 22만 1729개에 대해 1131만 116회에 달하는 공감·비공감 조작 혐의를 포착해, 추가 기소도 이뤄냈다.
결국 본질에 대한 집중 수사가 새로운 출구전략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검팀은 김경수 지사가 댓글 작업을 지시했고, 사실상 승인했다는 의혹을 확인 중이다. 이미 알려진 수사밖에 기대할 수 없는 특검팀에게 ‘귀인’은 드루킹 김 씨다. 드루킹 김 씨는 지난 18일 특검 조사에서 60기가바이트(GB) 분량의 문서 파일 등이 담긴 USB(이동식 저장장치)를 제출했다. 이는 지난 3월 21일 경찰에 체포되기 전, 드루킹 김 씨가 직접 숨겨둔 것으로, 김 지사와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대화 내용 등이 상세히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 관계자는 “USB 등 물적 증거 분석과 드루킹 등 경공모 회원 추가 소환조사 등을 통해 김 지사 관련 수사를 전개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특검팀은 지금 정권이 아닌, 다음 정권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신경써야 한다”며 “김경수 지사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사실 관계가 알려진 만큼 최선을 다해 범죄 혐의를 입증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