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출신’ 김선수 입성하면 대법원장-대법관들 경색 관계 더 심화될 것” 우려
김선수 신임 대법관 후보자(사법연수원 17기)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열린 지난 23일. 여야는 김선수 후보자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 논쟁을 놓고 입장 차를 보였다. 자유한국당은 통합진보당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사건에서 통진당 측 변호인 단장을 했던 것을 놓고 공세를 펼쳤지만, 김 후보자는 “헌재 판단을 존중한다”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앞선 자유한국당 관계자의 푸념처럼, 별 문제 없이 무난한 청문회 통과가 예상되는 가운데 대법원은 이제 새로운 대법관 3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려도 상당하다. 현재 대법관들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판사 경력이 없는, 진보 재야 법조계를 대표하는 김선수 변호사가 대법관으로 대법원에 입성하기 때문이다.
# 민변과 관계 단절 선언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함께 신임 대법관 후보로 제청된 노정희 법원도서관장(연수원 19기), 이동원 제주지법원장(연수원 17기) 중 가장 먼저 청문회에 출석한 김선수 후보자.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 김 후보자의 ‘성향 공세’에 나섰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2011년 12월 문 대통령의 저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발간 기념 북콘서트에 김 후보자가 참여했던 일에 대해 “당시 북콘서트에는 김 후보자를 비롯해 문 대통령, 김인회 인하대 교수, 조국 서울대 교수 4명이 주인공처럼 나란히 참여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후보자는 “법관은 판결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공정성을 유지하고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통합진보당 측 변호인 단장을 맡았던 점을 두고 비판이 쏟아졌다.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은 “김 후보자는 사회의 국론분열이 있는 사건마다 재판에 관여하거나 성명을 내면서 정치적 편향성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통진당 해산에 헌법재판소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재조사해야 한다는 등의 성명을 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통진당을 해산한) 최종 결론에 승복한다”고 강조하면서도 “국민은 헌재 결정이나 법원 판결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오히려 김 후보자의 정면 돌파가 눈에 띄는 청문회이기도 했다. 과거 언행에 대한 공격을 선제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김 후보자는 모두발언에서 “대법관으로서의 삶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데서 출발할 것”이라며 “(나는) 민변이 아닌 대한변호사협회 추천을 통해 제청됐다”고 확실히 밝혔다.
여당(더불어민주당)은 김 후보자 방어에 나섰다. 위기를 겪고 있는 사법부를 위한 최적의 인사이자, 사법부 신뢰를 회복할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성향이 보수냐 진보냐가 문제가 아니라, 현행 법질서를 지키고 산다면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당적을 가진 적이 없는 김 후보자가 대법관 중립성 측면에서 적임”이라고 밝혔다.
야당은 정치 성향 문제에 이어 김 후보자의 서울 서초구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및 자녀 교육 목적 이사를 문제 삼았다. 김 후보자가 인사청문특위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2000년 11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양아파트를 매수하면서 실제 거래 가격의 절반 이상 깎아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 또 김 후보자가 2000년대 초반 서울 서초동에서 대치동으로 전세 이사한 문제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다운계약서 작성 여부는 관행에 따라서 일을 처리했다. 장남이 남녀공학 학교에 가면 내신에서 남학생들이 못 따라가기 때문에 (남자고교 입학을 위해) 대치동 쪽으로 옮겼다“며 잘못을 선선히 인정했다. 다운계약서 정도의 문제로는 청문회 통과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중론.
사실 김선수 변호사의 대법관 입성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99% 확실한 시나리오기도 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판사 경력이 없는 점 등이 걸려서 문재인 정부에서 원래 자유롭게 사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수 있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제안했지만, 김선수 후보자가 대법관을 원해서 이번에 제청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대법관이 되기 위한 태도나 자세 등 만반의 준비를 해온 것 같다”고 평가했다.
# 대법원 입성 후가 더 문제?
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이 취임식을 마치고 대법관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정훈 기자
오히려 법조계는 김선수 후보자가 대법관이 된 후를 더 우려하고 있다. 현재 대법원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뒤숭숭하기 때문. 특히 김선수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오게 되면 현재 교류가 사라진 대법관들 사이가 더 눈에 띄게 나빠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대법관들은 김명수 대법원장과 개인적인 의견을 주고 받는 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기류는 재판거래 의혹 관련,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로 더 극명해졌다.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원 내부통신망을 통해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며 협조를 약속했다.
김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들은 반발했다. 김 대법원장의 발표 몇 시간 후, 고영한 대법관 등 대법관 13명은 곧바로 ‘사법행정권 남용사태에 관한 입장’이라는 문서를 통해 “재판의 본질을 훼손하는 재판거래 의혹은 근거가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완곡하지만 확실한 메시지로 김명수 대법원장의 결정에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는 게 대법관들의 입장. 대법관들은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재판부와 엄격히 분리돼 사법행정 담당자들은 재판사무에 원천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며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대법원장 역시 재판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들이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를 놓고 대법원장의 결정에 공감하지 못해 대법원장은 물론, 대법관들 사이 의견 교류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대법관들이 의견을 내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고 현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판사 출신이 아니어서 법원에 대한 여정이 없는 김선수 후보자가 그것도 민변에서 사법부 개혁을 부르짖었던 김선수 후보자가 들어올 경우 김명수 대법원장 편에 서는 일이 많지 않겠느냐. 그로 인해 대법관들 사이에 경색된 분위기가 한층 더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