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당 원내대표 부인에 핸드백 선물까지”…‘협치’란 명목으로 쌈짓돈처럼 ‘펑펑’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국회 특수활동비가 ‘지나친 특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같은 국회 안에서도 원내대표들은 다른 의원들보다 훨씬 더 많은 특활비를 수령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일 MBC 보도에 따르면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18일 여야 5당 원내대표 미국 워싱턴 방문 일정으로 3박5일 동안 출국한 동안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에게 미화 1000달러를 전달했다. 이 현금이 든 봉투는 ‘국회의장 격려금’이라는 이름으로 건네졌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는 “의장에게 직접 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과거에도 해외 출장 때 500에서 1000달러 정도 주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회의장실은 “문희상 국회의장은 취임 후 특활비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특활비의 출처는 홍 원내대표였다. 홍 원내대표는 “특활비는 절대 아니다”라며 “개인 간에 돈을 주고 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발을 뺐다. 이에 기자가 ‘왜 국회의장 격려금이라고 했느냐’라고 묻자 홍 원내대표는 “사적인 문제에 대해선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는 “당초에 의례적인 전달을 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런 차원은 아니었다”면서 “의장께서 전달하는 특활비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홍 원내대표가) 특별히 말을 안 했다”며 “저는 과거에 그런 경험들이 좀 있었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답했다.
특이한 점은 원내대표 다섯 명이 미국을 함께 갔지만, 그 중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에게만 돈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 원내대표는 당시 국회의 특활비 폐지를 주장하며 특활비 폐지 법안을 발의했었다.
이렇게 홍‧김 원내대표 두 사람 사이에 1000달러가 오갔다. 한 사람은 특활비가 “아니다”라며 부인했고, 한 사람은 “관행이라 받았다”고 말했다. 물론 홍 원내대표의 말대로 개인적인 금전거래일 수도 있고, 그렇다 할지라도 누군가에는 1000달러가 적은 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정황에서 의구심이 드는 건 그동안 원내대표들 간에 ‘특활비 나눠먹기’가 일상화돼왔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8일 ‘2011~2013 국회 특활비 지급내역 분석보고서2’를 통해 해당 기간 동안 특활비를 가장 많이 수령한 국회의원들을 공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공개된 의원 명단에 원내대표를 지낸 의원들이 대거 포진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특활비를 챙긴 인물은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서 원내대표를 지낸 황우여 전 의원이다. 그는 2011년 5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원내대표와 도시에 운영위원장‧법제사법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총 6억 2341만 원의 특활비를 받아갔다.
그 다음으로는 많은 금액을 수령한 인물은 박지원 의원이다. 2012년 5월부터 12월까지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원내대표였던 박 의원도 남북관계발전특위원장‧법사위원장으로 활동하며 5억 9110만 원을 수령했다. 다음으로는 김진표 민주당 전 원내대표(2011년 5월~2012년 5월)가 5억 5853만 원을, 이한구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2012년 5월~2013년 5월)가 5억 1632만 원을 받아갔다.
그 뒤를 전병헌 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와 최경환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기춘 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김무성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이었다(새누리당 교섭단체 활동비는 형식상 원내행정국 당직자가 수령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민주당처럼 원내대표가 이 돈을 가져간 것으로 참여연대는 판단).
이처럼 국회 내에서 특활비를 제일 많이 받아간 순서대로 이름을 나열하면 원내대표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이 같은 특활비는 국회의원 20명 이상으로 교섭단체가 꾸려진 정당에만 ‘정책지원비’, ‘단체활동비’, ‘회기별 단체활동비’로 지급되기 때문에 20명을 채우지 못한 정당은 이마저도 받을 수 없었다. 의석수 6석이던 정의당이 특활비를 사용할 수 없었던 이유다.
특활비는 상임위원장을 대상으로도 지급이 되지만, 원내대표들이 이를 더욱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국회 관계자는 A 의원과 B 의원이 원내대표를 동시에 지내던 시절을 회상했다. 이 관계자는 “두 사람이 양당 원내대표로 있던 시절 국회가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원래 원내대표들은 싸우는 게 일인데 A 원내대표와 B 원내대표 사이는 정말 좋았다”며 “둘 사이에 특활비로 기름칠을 했으니 싸울 일이 있나”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몇 년 전 B 원내대표가 당시에 A 원내대표의 아내에게 1000만 원짜리 핸드백을 선물했다”며 “특활비로 가방을 사줬으니 A, B 원내대표 두 사람 사이가 정말 좋을 수밖에 없었다. 특활비를 빼서 저런 식으로 유용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특활비 폐지를 주장하는 야권의 한 의원은 원내대표들의 지나친 특활비 수령에 대해 “특활비 폐지하자는 말은 다 귀 닫고 있지 않느냐. 민주‧한국당 하는 짓을 보면 원내대표들 다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소속 의원실의 한 관계자도 “우리는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특활비를 다 반납했다. 우리는 특활비가 아니어도 업무추진비로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내대표들 사이에서 유독 특활비 수령이 두드러지는 현상에 대해 “원내대표가 당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쓸 돈이 많다고들 하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며 “밀실정치를 하는 건가? 원내대표가 개인정치를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원내대표들은 관행적으로 격려금을 전달해 왔는데, 그러다보니 이번 시민단체가 공개한 리스트에 원내대표들의 이름이 몰린 것 같다”라며 “지금 국회가 그럴 때인가. 국회는 지금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개혁은 특활비와 특권 내려놓기인데, 이걸 유지하겠다고 한다. 개혁이 말로만 그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