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증거는 없지만 정황 증거는 수두룩”…여권 “언론 플레이로 타격 주려는 것”
김경수 경남지사가 지난 8월 6일 특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최준필 기자.
지난 8월 9일에는 드루킹 김동원 씨와 김 지사의 대질조사도 진행됐다. 김 지사는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며 특검 조사를 평가절하했지만, 특검 관계자는 “두고 보면 알 일”이라며 여전히 자신감을 보였다.
이 사건의 핵심 포인트는 김 지사가 일명 킹크랩으로 불리는 매크로 프로그램 시연회에 참석했느냐다. 드루킹 측은 김 지사가 지난 2016년 11월경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에 방문해 킹크랩의 시연을 지켜봤고 사용을 승인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지사 측은 당시 출판사에 방문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킹크랩 시연을 본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특검 측은 수사과정에서 킹크랩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20161109온라인정보보고.docx’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루킹은 2016년 11월 9일 느릅나무 출판사에서 이 파일 내용을 대형 화면에 띄워놓고 킹크랩과 관련한 내용을 김 지사에게 설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 측은 드루킹 일당이 사용하지도 않을 파일을 만들 필요가 있었겠느냐면서 해당 파일의 존재는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킹크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는 중요한 정황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시연회에는 경공모 회원인 ‘서유기’ 박 아무개 씨, ‘둘리’ 우 아무개 씨, ‘솔본아르타’ 양 아무개 씨 등이 참석했는데 이들의 진술도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당시 김 지사가 앉아있던 위치나 몸짓 등 현장에 함께 있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CCTV 등 직접적인 증거가 없을 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정황 증거가 확실하고, 주변 진술이 일치해야 한다”면서도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도 이런 부분이 충족된다면 충분히 유죄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김 지사에게 유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지난 2015년 민주당 의원 입법로비 사건 때 핵심증거는 뇌물 공여자의 진술뿐이었지만 진술과 일치하는 국회 출입 기록, 현금 인출 기록 등이 확인돼 유죄가 인정되기도 했다. 당시 재판에 넘겨진 의원들도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항변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또 드루킹과 김 지사가 주고받은 메시지들도 유력한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드루킹은 지난 2018년 2월 9일 시그널이란 보안 메신저로 ‘의원님 1년 4개월간 저희를 부려먹고 보상 없이 버리면 뒷감당 안 될 겁니다. 저와의 만남 약속을 21일에 원래대로 진행해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실제로 드루킹은 ‘성원’ 김 아무개 씨와 2월 20일 김 지사 국회의원 사무실을 방문했다.
드루킹은 같은 날 김 지사 보좌관에게 “김 의원님(김 지사)이 저와 연결되었던 텔레그램 비밀 대화를 삭제하셨더군요. 김 의원님과 제 관계는 1년 4개월 이상 이어져 왔고 꼬리 자를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참고로 제가 지난 1년 5개월간 의원님께 일일보고 해드렸던 기사 작업 내용은 모두 8만 건입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런 메시지들이 모두 정황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 지사가 드루킹과 대화할 때 사용한 메신저 ‘시그널’은 모든 메시지에 종단 암호화 프로토콜을 사용하고 데이터를 서버에 저장하지 않는다. 텔레그램보다 보안성이 더 뛰어난 비밀 메신저로 알려져 있다. 미국 국가 안보국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스노든이 사용했던 메신저로 유명하다.
김 지사는 ‘드루킹은 지난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돕겠다고 연락을 보내온 수많은 지지자들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수많은 지지자들 중 한 명과 왜 굳이 비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는지 의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김 지사가 이미 시그널이라는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드루킹이 말을 걸어온 것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해당 메신저를 설치하고 이용했다면 의심스러운 정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직접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양측 주장의 신빙성을 다투는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지사와 드루킹의 대질조사도 특검이 김 지사의 진술 중 허점을 찾아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일각에선 수차례 바뀐 김 지사의 해명도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김 지사는 당초 드루킹에게 인사 청탁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주장했으나, 드루킹이 추천한 인물이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실제 면접성 면담을 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인사 청탁을 거절했다고 주장했던 김 지사는 “문재인 정부는 열린 인사, 열린 추천 시스템이 있기에 좋은 분이 있으면 전달하겠다했더니 오사카 총영사로 한 분을 추천했다”며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전달할 수는 있겠다 싶어서 인사수석실로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의 경우 법정이나 조사과정에서 진술이 번복된 것만 인정한다. 언론 인터뷰 등에서 해명이 달라진 것은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선 드루킹 특검이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에 대해 언론 플레이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특검은) 야당이 추천한 사람들 아닌가. 별다른 결과물이 없으니까 언론 플레이로 타격을 주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원 댓글공작 진상조사단장’을 맡고 있는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번 사건은 댓글 조작을 통해서 대선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느냐가 핵심”이라면서 “청와대 인사들이나 대통령 후보에게까지도 보고가 됐는지 윗선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