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참모들이 김경수 ‘팽’하려 해” 신친문과 주도권 싸움…공직사회, 청와대에 ‘항명’ 논란도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얼마 전 여의도엔 임종석 비서실장과 관련된 정보지가 큰 화제를 모았다. 임 실장이 사기업 인사에 개입하고 특정 사안에 대해 월권을 행사해 문 대통령 눈 밖에 났다는 게 골자였다. 조만간 임 실장이 경질되고 그 자리엔 문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정치인이 임명될 것이란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정치권 일각에선 차기 비서실장 후보로 실명이 거론된 정치인 측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루머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것은 등장인물이 바로 임종석 실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임 실장은 여권에서 신친문으로 통하는 청와대 참모들의 좌장 격 인사로, 실세 중 실세로 꼽힌다. 그동안 물밑에서 감지됐던 임 실장 견제 움직임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던 것이다. 임 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로 인해 입지가 좁아졌다고 생각하는 친문 진영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한 민주당 친문 의원은 “지난 일 년을 돌이켜 보자. 아무리 여당이라지만 존재감이 너무 미미했다. 지금 청와대에 끌려만 다녔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많다. 동시에 당을 거수기 역할 존재로만 여기는 청와대에 대한 불평도 나온다”면서 “SNS 등을 통해 돌았던 ‘임종석 정보지’는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전했다.
민주당 비문 의원도 “솔직히 민주당 지지율이나 지방선거 대승은 문 대통령 개인기 덕분 아니냐. 여론을 등에 업은 청와대 눈치를 안 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면서 “수직적 당청 관계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이 할 말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은산 분리, 국민연금 등과 관련해 여당 내에서조차 쓴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의 이러한 분위기는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 8·25 전당대회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여권 주류인 친문 진영의 권력 다툼이 숨겨져 있다. 주로 당에 포진해 있는 친문 의원들이 청와대 참모 그룹과 본격적인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임종석 실장이 최우선 ‘타깃’이다. 친문 의원들 사이에선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말들이 새어나온다. 앞서의 친문 의원 말이다.
“6월 지방선거 때 한 친문 인사가 소위 ‘문재인 마케팅’을 하다가 청와대 참모로부터 경고를 받았다고 한다. ‘대통령 이름 함부로 팔지 말라’는 것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아니 그 참모가 언제부터 친문이었다고 그런 소릴 하느냐. 시중에 돌고 있는 얘기들을 대통령이 가감 없이 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참모들이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지지율 하락도 이 때문 아니겠느냐. 결국 비서실장인 임 실장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
친문 진영에선 김경수 경남도지사 특검수사와 관련해서도 청와대 참모들의 스탠스를 문제 삼는 이들도 있다. 김 지사를 사실상 ‘팽’ 시켰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김 지사를 비호하자는 게 아니다. 정권 개국공신이자 대통령 최측근을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이냐. 김 지사가 다치면 결국 문 대통령에게로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청와대 참모)은 김 지사를 내치려고 했다. 김 지사와 선을 그어야 한다는 보고가 문 대통령에게 올라간 것으로 들었다. 이는 참모들이 김 지사를 잠재적 경쟁자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권 주류의 또 다른 한 축인 친노 진영도 청와대를 원망 섞인 시선으로 본다. 핵심 친문들이 당 대표로 김진표 의원을 밀고 있는 배후에 청와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한 친노 의원은 “문 대통령이 (이해찬 의원을) 껄끄러워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청와대에서 나온다. 이는 아마 수평적인 당청 관계를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이 의원은 그 누구보다 문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다. 문 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 진의를 왜곡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민감한 사안임을 감안해 “다들 문 대통령 국정 운영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라고 말을 꺼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그동안 별 말 없다가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니 한 마디씩 하는 게 기회주의적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들이 문제 삼는 임종석 실장과 참모들은 정치와는 무관하다. 쉴 틈 없이 일만 하는 사람들을 정쟁으로 끌어들인 것은 당이다. 참모들이 흔들리면 문 대통령도 일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 앞으로가 더 중요한데 당이 이렇게 나오니 참으로 걱정스럽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다른 관점에서 이 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정권을 잡으면 대통령 참모들과 당 주류 의원들 간엔 필연적으로 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참모 경력이 있는 인사들에 따르면 의원들이 대통령을 옛날 후보나 의원 때처럼 대하는 게 불편하다고 그러더라. 대통령이 됐으면 그에 걸맞은 의전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의원들은 대통령 옆을 차지하고 있는 참모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는 것 아니겠느냐. 이번 정권의 참모들과 친문 의원들 관계도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뿐 아니라 관가에도 이상 조짐이 역력하다. 이는 공직사회에 대한 청와대 장악력이 정권 초반에 비해 약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과 맞닿아 있다. 청와대 수석실과 부처 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고, 이 과정에서 연이어 ‘항명’ 논란이 불거졌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 간 갈등설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남북정책 추진을 놓고서도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통일부 및 국방부 간 뒷말이 새어나온다.
이외에도 여러 부처에서 청와대가 추진 중인 현안과 관련해 이견이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한 국민연금 논란 역시 청와대는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를 향해 경고성 메시지를 날렸지만, 오히려 보건복지부 안팎에선 ‘청와대 책임이 더 크다”는 반박이 나온다. 공무원들은 ‘청와대 주도의 일방통행식 업무 처리에 대한 부작용’이라는 반응이다.
전직 차관급 인사는 “청와대가 하는 대로 무조건 따르라는 방식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모두 청와대만 바라볼 텐데 그 많은 업무를 일일이 챙기진 못한다”면서 “청와대로부터 ‘패싱’을 당하는 장관의 경우 소속 공무원이 말을 듣겠느냐”고 반문했다. 중앙부처 현직 고위 간부도 “우리를 비롯해 대부분의 부처에서 현 정권 인사들과 가까운 직원들이 핵심 보직을 차지했다. 지난 정권에서 주요 업무를 맡았다가 적폐로 내몰린 직원들도 상당수다. 그러다보니 조직 내에 청와대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팽배한 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