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연내 리콜 완료 가능” 반복…8000여대 노지에 방치
서울 서초구에 사는 구 아무개 씨(51)는 지난 16일 BMW서비스센터에서 진행한 안전진단 결과를 받고 한숨을 내쉬었다. ‘운행정지 예정’이라는 말에 안전진단을 받았지만, 결과는 ‘운행정지’와 다르지 않았다. 구 씨는 애지중지 아껴 타 온 520d 차량에 냉각수 누수가 심각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아끼느라 차량 구매 후 4년이 되도록 4만 2000㎞를 운행한 게 다였다. 서비스센터에서는 누수된 냉각수가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를 막아 화재가 날 수 있다며 운행정지를 말했다. 엔진오일 교체, 차량 정기점검 등의 이유로 그동안 숱하게 서비스센터를 찾았지만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구 씨가 520d를 다시 운행하기 위해서는 두 달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 EGR 모듈은 물론 냉각수가 새는 워터펌프를 교체해야 하는데 서비스센터에서는 부품이 없어 10월 말에야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BMW는 이 기간 구 씨에게 현대차 쏘나타 LPi를 권했다. BMW서비스센터는 구 씨에게 “쏘나타를 타시고, 차 키는 반납해 달라”고 말했다. 냉각수가 누수되는 차량을 타면 안 되니 차량을 안성과 평택 노지에 둬야 한다고 했다. 구 씨는 반대했다. 차량을 노지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구 씨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BMW 주차를 막지 않았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 589 에 위치한 BMW 코오롱모터스 성산 서비스센터. 임준선 기자
화재 사고로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BMW는 전에 없는 긴급 안전진단 및 리콜에 나섰지만 신뢰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더욱이 BMW는 안전진단에서 냉각수 누수가 발견된 차량을 우선 리콜한다고 밝혔지만, 부품 수급 계획마저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이 지난 13일 국회 긴급간담회에서 “8월 20일부터 리콜을 시작해 연내 완료하겠다”고 밝힌 것과 대조된다. 실제 서울 내 18개 서비스센터를 제외한 지역 서비스센터는 부품 수급이 확정되지 않은 탓에 리콜 예약을 아예 9월 이후로 미뤘다.
BMW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리콜 대상 차량에 대해 운행정지 처분을 본격화한 지난 16일 하루 약 9700대의 안전진단이 이뤄졌다. 이튿날인 17일 기준, 안전진단을 받은 차량은 10만 700여 대로 전체 리콜 대상 차량 10만 6317대의 95%에 이른다. BMW는 냉각수 누수에 따른 우선 리콜 대상 차량은 전체 안전진단 차량의 8.5%로 매일 1400대 리콜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16일 안전진단에서 냉각수 누수 판정을 받은 우선 리콜 대상 차량의 차주 대부분은 10월 말 부품 교체 및 운행 재개 통보를 받았다.
BMW는 8월 20일부터 평일 오전 9시~오후 10시, 주말 오전 6시~오후 6시 리콜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BMW는 평일 하루 1400대 리콜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고려하면 시간당 약 127대에 대한 부품 교체 리콜을 진행하는 셈이다. BMW가 1주일 동안 처리할 수 있는 리콜 대수는 8524대라는 계산이 선다. 8524대는 BMW가 밝힌 안전진단 결과 우선 리콜 대상 차종의 8.5%인 8559.5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국에 팔린 우선 리콜 대상 차량 예약을 산술만으로 쉽게 볼 수 없지만, 10월 말은 8월 20일에서 11주 후다.
서울시에 있는 한 아파트 주차장에 붙은 BMW 차량 주차금지 경고문. 일요신문DB
실제로 서울에 있는 BMW 강서서비스센터는 우선 리콜 대상 차량 130대를 입고한 상태임에도 일반 리콜 대상 차량에 대한 부품 교체 예약을 11월로 잡고 있다. EGR 모듈과 워터펌프를 교체하는 리콜 소요시간이 3시간여로 길기 때문이다. 인천시에 있는 한 BMW 서비스센터는 8월 중 일반 차량 리콜 예약을 아예 받지 않는다. 해당 서비스센터 관계자는 “8월 20일부터 리콜이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부품 수급이 어떻게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그럼에도 BMW코리아는 연내 리콜 완료가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 부품 수급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부품을 비행기로 수급할 수 있는 안을 찾고 있다는 게 이유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이상이 있는 차량을 우선 입고해 먼저 부품 교체 리콜을 진행하고 난 후 안전진단에서 이상없음 판정을 받은 차량으로 순차적인 리콜을 진행할 예정인 것은 맞지만 부품 수급이 현 상황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러나 독일 본사에서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BMW 화재에 우선 대응 방침을 정한 만큼 리콜 속도는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BMW는 20일부터 진행하는 우선 리콜 대상 차량 약 8500대를 안성 물류센터와 평택항 근처 부지로 이동해 둔 상태다. 주차구역 한정과 BMW 차량 주차장 이용금지 사태 등으로 리콜 전까지 차량을 소유할 수 없는 차주의 차량을 맡아 주겠다는 것이지만, 차주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주차장 이용 불가로 일단 차량을 맡겼다는 BMW 우선 리콜 대상 차주 박 아무개 씨(44)는 “BMW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게 죄로 느껴지는 상황이 됐다”면서 “중고차 가격은 떨어지고 있는데 차량은 운행할 수도 없이 노지에 방치됐다”고 토로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안전진단 받아도 불? ‘화차(火車) 포비아’ 커진다 16일 BMW가 긴급 안전진단을 진행한 차량에서 또 다시 화재가 발생하면서 BMW로 비롯한 이른바 ‘화차(火車)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앞서 BMW는 냉각수 누수가 일어나 EGR 흡기구를 막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안전진단을 받은 차는 안전하다고 밝혀 왔다. BMW가 ‘안전진단 완료 후 EGR 원인 화재 시 신차 교환이라는 후속 조치를 낸 것도 안전진단에 대한 확신 덕이다. 그러나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BMW GT 차량 화재로 BMW의 안전진단 확신에 금이 갔다. 불이 난 BMW GT는 BMW코리아가 EGR 제작 결함에 따른 화재 발생 우려로 있다며 리콜 대상에 지정, 긴급 안전진단을 진행한 차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BMW가 안전진단 후 발생한 첫 번째 차량 화재에 대해 “직원의 단순 실수”라고 밝힌 지 12일 만이다. 문제는 BMW가 안전진단 결과 냉각수 누수로 입고 후 운행 정지한 8560여 대 차량 외 10만 대 가까운 차량이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BMW는 17일 기준 전체 리콜 대상 차량 10만 6317대 중 10만 700여 대에 대한 리콜을 진행하고 9만 2000여 대를 ‘안전’한 것으로 판단, 10월 말 이후 리콜을 예정하고 있다. 리콜 일정이 앞당겨질지 여부도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BMW 관계자는 “16일 BMW 긴급 안전진단을 받고도 화재가 난 것으로 보도된 차량의 경우 연기가 피어오른 것은 맞지만 불이 난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17일 BMW코리아와 진행한 합동조사 결과에서 ‘부실 안전진단’을 화재 원인으로 결론내렸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