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특수 대비’ 움직이는 마네킹 개발…고객 응대·소비 성향 분석·아바타형 마네킹도
고객 응대 마네킹은 얼굴에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이 투영돼 질문을 던지면 입을 뻐끔뻐끔 움직이며 척척 대답을 한다. 사진=유튜브 캡처
지난해 10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국제전자통신 박람회 시텍(CEATEC)’에 독특한 마네킹이 전시됐다. 유명 마네킹 제작업체인 ‘나나사이(七彩)’가 선보인 것으로, 이른바 ‘고객 응대 마네킹’이었다. 외형은 일반 마네킹과 흡사했는데, 얼굴 부분에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이 투영돼 입을 뻐끔뻐끔 움직였다. 가장 큰 특징은 대화형 인공지능이 탑재됐다는 것. 질문을 던지면 마네킹이 척척 대답하는 별난 모습에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나나사이의 상품본부장인 이치노세 씨는 “아직 시작의 단계다. 향후 외국어 설정도 가능하도록 마네킹을 진화시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 백화점에서는 마네킹이 “어떤 옷을 원하세요?” “아동복 매장은 ○층입니다” 등 손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경우 마네킹은 옷을 팔기 위한 판촉용이라기보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다.
최근 일본 매체 ‘닛케이트렌디넷’은 “마네킹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보도했다. 돌이켜보면 과거 잘나가는 마네킹이었다. 의류전문 매장에서 유행하는 옷을 차려 입고 한자리 크게 차지했었다. 그러나 소비 패턴이 인터넷 쇼핑몰로 바뀌고, 백화점 매출이 감소하면서 마네킹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나나사이의 경우 마네킹 사업(대여와 판매) 매출액이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시장의 축소와 함께 저가 수입품이 늘어난 것도 매출 악화 요인이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 만한 다양한 마네킹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매체는 분석했다.
‘큐로고’는 움직이는 마네킹이다. 춤추거나 달리는 다양한 연출도 가능하다. 사진=큐로고 공식홈페이지
변화에 가장 먼저 대응한 곳은 교토에 위치한 ‘요시츄(吉忠)마네킹’이다. 이 회사는 로봇회사와 손잡고 움직이는 마네킹을 개발했다. 마네킹의 이름은 ‘큐로고(QLOGO)’. 2014년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다. 마네킹의 목과 어깨, 팔꿈치, 무릎에 소형모터를 내장해 머리와 손, 발 등을 움직일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컨트롤러로 복수의 마네킹과 연동시키면 함께 춤추거나 달리는 등 다양한 연출도 가능하다. 벌써 대형 백화점 디스플레이에 여러 번 채용된 ‘경력파’ 마네킹이다.
큐로고를 개발한 가와노 야스시 종합기획본부장은 “신축성이 뛰어난 의류 소재들이 인기다. 사람의 움직임을 재현하고 착용했을 때의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는 마네킹을 만들고 싶었다”며 개발 동기를 밝혔다. 가와노 본부장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활동성을 강조한 의류 전시회가 늘어날 것”이라면서 “더욱 섬세하게 움직이는 마네킹을 제작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그냥 보여지기만 하는 마네킹에서 거꾸로 소비자를 냉정하게 분석하는 마네킹도 등장했다. 나나사이가 개발한 ‘뷰 마네킹’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마네킹은 목 부분에 작은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화상 인식 카메라로 고객의 성별과 연령, 방문시간, 혼잡도 등을 분석하는 동시에 고객의 관심 정도를 수치화하는, 이를테면 마케팅 기능을 갖춘 마네킹이다. 다만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화상을 보존하진 않는다.
데이터들이 쌓이면 ‘어떤 소비자가 어떤 상품에 관심을 보였는지’ 분석할 수 있어 판매 전략을 짜는 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는 판매직원의 기억력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수치가 주관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대해 이치노세 상품본부장은 “뷰 마네킹이 차세대 마네킹의 유력 후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연령별, 시간별, 요일별 등 수집 데이터를 꼼꼼히 분석한다면 탁월한 상품구비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목 부분에 작은 카메라가 장착된 ‘뷰 마네킹’은 소비자를 냉정하게 분석하는 마네킹으로 이미 실용화가 시작됐다. 사진=나나사이
이미 실용화가 시작됐다. 아이치현의 모 쇼핑몰에서는 2018년 4월부터 3개월 동안 뷰 마네킹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고객 동향 정보를 수집했다. 녹화는 일절 하지 않기 때문에 마네킹 대여업체인 나나사이도 데이터를 볼 수 없는 시스템이다.
‘아바타형 마네킹’도 올 12월 출시를 앞두고 있다. 마네킹 얼굴 부분에 영상이 투영되는데, 놀랍게도 마네킹 앞에 선 사람의 얼굴이 그대로 옮겨진다. 예를 들어 스포츠 국가대표팀이나 아이돌 그룹의 얼굴이 투영된 마네킹들이 진열되고, 그 가운데 한 마네킹은 자유자재로 얼굴을 바꾸며 아바타 놀이를 하는 것이다. 카메라 어플처럼 사용자 얼굴에 동물 스티커를 접목시킨다든지 필터 처리도 가능하다. 주로 고객 참여 이벤트나 행사장에서의 수요를 노린다.
이러한 마네킹 업체의 새로운 시도가 항상 호평만 받은 것은 아니다. 로봇이나 인형이 사람과 너무 흡사하면 섬뜩한 느낌이 드는데, 이를 가리켜 흔히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부른다. 10년 전, 요시츄마네킹은 고령자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마네킹을 선보였다가 중장년층들로부터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불쾌하다”는 불만이 쏟아져 철수해야만 했다.
마네킹 제작업체가 신형 개발에 ‘무게’를 두는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위기감 때문이다. 옷을 입고 포즈만 취하는 마네킹은 더 이상 사업적 메리트가 없다. 틀을 깨고 마네킹답지 않은 마네킹이 주목받는 시대다. 물론 과제도 남아 있다. 나나사이의 상품담당부 관계자는 “인공지능을 도입하더라도 ‘로봇 제작은 하지 않는다’라는 기본 축을 고수할 것”이라고 전했다. 애초 마네킹을 만드는 업체다. “기술 개발을 겨루면 본말이 전도된다”는 얘기다. 어디까지나 ‘마네킹 판로 개척을 위해 진화하는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적극 도입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최근엔 ‘통통녀’ 마네킹 주목 통통녀 마네킹. 사진=나나사이 1970년대에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리얼’ 마네킹이 등장했다. 일본 경제가 최전성기를 누렸던 버블 경제기에는 어깨 패드가 한껏 들어간 패션이 유행했다. 덕분에 마네킹 역시 어깨를 최대한 강조한 것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장기불황과 함께 표정을 감춘 추상적인 마네킹이 주를 이뤘다. 또 가장 최근인 2017년에는 얼굴도 체형도 둥글둥글한 ‘통통녀’ 마네킹이 나와 주목을 끌기도 했다. 통통녀들을 위한 패션잡지가 출간되고, 뚱뚱한 몸매를 감추기보다는 예쁘게 드러내도록 하는 코디네이션이 인기를 끈 것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