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기부터 존재감 뽐내며 ‘인맥 축구’ 논란 정면돌파…김학범 감독 전술도 활약 요인
와일드카드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해 빼어난 활약을 보인 황의조.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와일드카드. 스포츠 종목에서 출전 자격을 따지 못했지만 특별히 출전이 허용되는 선수를 일컫는다.
그동안 이 정도로 성공적인 와일드카드가 있었을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나선 황의조가 성공적인 대회를 치러냈다. 그는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공격수로서 매 경기를 지배하며 팀 공격을 주도했다. 이번 대회 활약으로 A대표팀에도 승선했고, 더욱 많은 기대를 받게 됐다.
#‘인맥 논란’에서 ‘갓(god, 신)의조’가 되기까지
1992년생, 만 26세를 갓 넘긴 공격수 황의조는 대한민국 그 어느 누구보다 극적인 한 달을 보냈다. 전 소속팀에서 김학범 감독과의 인연으로 ‘인맥 축구’ 논란에 휩싸였다. 다소 팬들의 관심이 덜한 J리그에서 활약하던 그는 발탁만으로 가장 많은 욕을 먹는 축구선수가 됐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되자마자 일거에 논란을 잠재웠다. 그는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지난 3월, 대회를 약 5개월 앞둔 시점 김 감독이 대표팀에 새롭게 부임했다. 와일드카드 주인공에 많은 시선이 쏠린 대회에서 그는 부임과 동시에 손흥민을 언급했다. 3자리 중 하나는 손흥민의 자리였다.
나머지 두 자리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 사이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열렸고 ‘군 미필’ 골키퍼 조현우의 맹활약에 여론이 요동쳤다. 기존의 손흥민에 조현우가 추가된다면 나머지 한 장은 수비적인 카드가 사용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역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서 와일드카드는 공격에 방점을 찍어줄 수 있는 공격수 외에 수비적인 면에 중점을 뒀다. 성공을 거뒀던 2012년 런던(박주영, 김창수, 정성룡)과 2014년 인천(김신욱, 박주호, 장현수) 모두 유사한 조합이었다.
당초 수비적으로 불안한 대표팀의 사정, 특히나 부족한 풀백 자원 등에 보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의 선택은 예상을 벗어났다. 그는 손흥민 외에 조현우를 선택하며 결과적으로 여론에 화답하는 듯한 모양새가 됐지만 나머지 한 자리에는 공격수 황의조를 선택했다.
지난 7월 아시안게임 명단 발표 당시 ‘의리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한 김학범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대회 첫 경기부터 황의조는 존재감을 뽐냈다. 해트트릭을 작성하며 팀의 6-0 대승을 이끌었다. 1-2 패배로 팀이 졸전을 치른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도 팀의 유일한 골을 만들어냈다. 대표팀은 우여곡절 끝에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됐다. 황의조의 역할은 이것으로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 감독은 명단 발표 기자회견 당시 “손흥민, 이승우, 황희찬 등 유럽파 공격진의 합류가 늦어질 것을 대비해 황의조를 뽑았다”는 이유를 들기도 했다. 그의 발탁에 크게 반발하지 않는 측에서도 황의조가 조별리그에서 주축으로 활약하고 토너먼트에서는 손흥민 등에게 역할을 넘겨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황의조는 오히려 토너먼트를 지배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란과의 16강전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3골 1도움으로 팀을 구했다. 4강에서 또 다시 1골을 적립했다. 그의 활약에 팀이 승승장구하며 팬들의 관심 또한 높아졌다. 이제 팬들은 그를 ‘갓의조’라 부르고 있다.
#맹활약 요인은?
황의조는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수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학창 시절부터 연령별 대표팀을 오가던 선수다. 성남 FC 산하 유스팀인 풍생중·고교를 거쳤고, 우선지명을 받았다. 연세대 재학 도중 성남에 합류했다.
프로에서도 화려한 족적을 남겼다. 1, 2년차 선발과 벤치를 오가며 활약하던 그는 3년차인 2015년 당시 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학범 감독 밑에서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리그에서만 15골을 넣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맹활약하며 성남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해 K리그 득점왕, 영플레이어상을 두고 쟁쟁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후 다소 부침이 있었지만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팬들을 매료시켰다. 지난 시즌 이적 이후 적응기를 거쳐 올해 J리그 감바 오사카의 주축으로 뛰고 있다. 팀내 최다 득점자이며 아시안게임 차출로 자리를 비우고 있음에도 리그 득점랭킹 8위에 올라 있다. 리그 9골로 팀 득점의 약 40%를 홀로 기록했다.
일본에서의 맹활약에 김학범 감독도 믿고 그를 기용했다. 황의조는 은사의 기대를 200% 충족시키고 있다.
박종윤 해설위원은 “손흥민이 황의조의 골을 돕는 전술로 황의조도 살고 손흥민도 살고 김학범 감독도 살았다”고 평가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심리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김 위원은 “대회 시작 전 논란이 선수 본인에게는 자극이 됐을 것이다”라면서 “J리그에서 뛴 것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일본의 세밀한 축구를 배운 것 외에 해외에 있으면서 약간 부담감도 덜고 팀 내 에이스로 자신감도 회복했다”고 말했다.
박종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황의조의 활약 요인 중 하나로 김학범 감독의 전술을 꼽았다. 그는 “이전까지 대표팀에서 많은 감독들이 손흥민이라는 큰 선수를 중심에 놓고 그에게 맞추는 전략을 사용했다”면서 “김학범 감독은 오히려 황의조가 골을 넣고 손흥민에게 이를 돕는 역할을 맡겼다. 두 선수 모두가 ‘윈윈’하는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김환 위원도 “김 감독이 팀 내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선수가 황의조일 것이다. 감독의 전술과 선수가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A대표 발탁까지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황의조에게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신임 파울루 벤투 국가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대표팀은 오는 9월 7일과 11일 평가전을 치른다. 황의조는 지난해 10월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 평가전에 나선 이후 11개월 만에 대표팀에 복귀하게 됐다.
김 위원은 “벤투 감독이 아시안게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황의조와 함께 다른 멤버들도 일부 발탁됐다”면서 “전형적인 최전방 공격수 자원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자원이다. 지금 모습을 유지하면 충분히 활약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다만 “아시안게임과 비교해 A대표팀에서 상대할 칠레와 코스타리카는 수준이 달라 조금은 다른 내용이 나올 수 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박 위원은 “벤투 감독 체제에서 가장 먼저 치를 대회가 내년 1월 아시안컵이다. 황의조가 충분히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새내기’ 황인범·김문환, 벤투 눈도장 찍을까 아시안게임 대표에 이어 A대표까지 이름을 올린 황인범. 사진=대한축구협회 8월 27일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국가대표팀 명단에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한 황의조 외에 황인범과 김문환도 이름을 올렸다. 이전까지 A매치 11경기에 출전한 경험이 있는 황의조와 달리 이들은 생애 최초 발탁이다. 신임 파울루 벤투 감독이 아시안게임을 보고 이들의 활약상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대체 복무 혜택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번 대표팀에서 미드필더 황인범은 유일하게 이미 군복무 중인 선수다. 고교 졸업 직후 프로에 직행한 황인범은 대전 시티즌에서 단숨에 핵심 선수로 발돋움했다. 또래에서 최고의 재능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유럽 구단과 이적설을 뿌리기도 했다. 대전에서 3년간 활약 이후 아산 무궁화(경찰 축구단) 입단을 결정했다. 해외 이적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병역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는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경찰 신분으로 참가한 아시안게임에서 A대표팀 감독의 눈에 들게 됐다. 그는 대회 내내 미드필드에서 손흥민·황의조·이승우 등 황금 공격진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에 충실했다. 김문환도 황인범과 함께 A대표팀 데뷔를 눈앞에 두게 됐다. 측면 공격수와 수비수 모두 나설 수 있는 김문환은 체력 안배 차원에서 빠진 말레이시아전을 제외하면 전 경기에 오른쪽 측면에 나서 활약을 이어갔다. 윙백 또는 풀백임에도 공수 양면에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난 2년간 K리그2에서 경험을 쌓아온 김문환은 아시안게임에 이어 A대표팀에서도 기량을 뽐낼 수 있게 됐다. A대표팀의 부름을 받은 이들 외에 왼쪽 수비수 김진야도 주목받는 새내기 중 하나였다.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주로 오른쪽 포지션에 나서는 그는 아시안게임 대표팀 사정상 왼쪽 윙백이나 풀백에 고정적으로 출전했다. 타고난 체력을 바탕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소화한 선수이기도 했다. 조별리그와 토너먼트 전 경기에 대체자 없이 출전했다. 연장전을 포함해 120분 경기를 치른 8강 우즈벡전에서 연장 후반 교체돼 경기장을 나왔다. 그가 휴식을 부여받은 유일한 경기였다.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른 이번 아시안게임 축구에서 와일드카드 3인방(조현우, 손흥민, 황의조) 외에 기존 23세 이하 선수들의 활약도 팬들을 기쁘게 했다. 이번 대회로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인 이들이 어느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축구를 보는 한 가지 재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 |
“성지순례 왔습니다”…황의조 활약 때마다 네티즌이 모이는 곳은? ‘의조 오빠’로 불리던 성남시절. 사진=성남 FC 하지만 황의조 발탁에 대한 여론의 반발은 여전했다. 특히 성남시의회 소속 한 의원이 황의조 발탁에 대해 ‘인맥축구’라며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많은 이들이 황의조 발탁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지만 이 시의원의 비판만큼은 동조를 얻기 힘들었다. 성남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축구선수로 성장해 성남 FC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황의조에 대한 성남 시민과 축구팬들의 감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성남은 FA컵 우승으로 이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다. 2015년 황의조를 최전방에 내세운 성남은 1년 예산이 수백억 원에 이르는 아시아 강팀들을 상대로 대등히 맞섰다. 황의조는 그 해에만 20개가 넘는 골을 넣으며 자신과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성남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를 ‘의조 오빠’라 불렀다. 실력이나 마케팅, 양 측면에서 모두 황의조는 ‘성남의 얼굴’이었다. 이처럼 성남에서만큼은 ‘오빠’인 황의조를 시의원이 맹렬히 비난하자 오히려 그에게 비판의 화살이 쏠렸다. 아시안게임이 시작되고 황의조가 연일 맹활약을 이어가자 그 시의원의 소셜 미디어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오히려 팬들이 그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장이 돼버렸다. 8월 30일 현재 그의 글에는 3600개의 댓글이 달렸다. 한 스포츠전문 매체는 시의원 본인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