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존재감’이 양날의 검…지지대 역할하지만 헛발질 땐 돌이킬 수 없는 당·청 갈등 부를 수도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집권 2년차 징크스는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던 올해 초 친문(친문재인)계 성향의 한 전직 의원이 던진 말이다. 논거는 크게 두 가지였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권이 반복한 보여주기식 정책을 펴지 않는다. 다수의 정책은 복지다. 소위 ‘사람이 먼저’인 국정방향에서 조기에 민심이반을 초래할 정책은 없다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그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87년 체제 이후 최고 지지율로 1년차를 마감한 문재인 정부도 2년차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년차 징크스 복선은 올해 초부터 곳곳에서 터졌다. 정책을 둘러싼 당·정·청 간 혼선이 대표적이다. 사실상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신호를 시장에 준 셈이다.
실제 청와대와 법무부는 올해 초 광풍을 몰고 온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여부를 놓고 혼선을 거듭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1월 11일 ‘특별법 제정’까지 언급하면서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지하겠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조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블록체인 등 기술 발전에 초점을 둔 반면, 법무부는 규제에 초점을 맞췄다”며 정책 혼선을 시인했을 정도다. 부처가 엇박자를 내는 사이, 청와대 조정능력은 사실상 실종됐다.
여당과 국회도 손을 놓기는 매한가지였다. 여당 재선 의원은 박 장관을 향해 “뜬금없다”고 비판했을 뿐, 시장 혼란을 해소할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도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와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를 놓고 “금융위원회 소관 정무위에서 다뤄야 하는 게 아니냐”라며 늑장 처리에 한몫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부처 간 엇박자는 지난해부터 나왔던 얘기”라며 “매파(강경파)인 법무부가 강공 드라이브 걸면서 당·정·청 갈등이 여과 없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동수당도 당·정 갈등을 촉발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여야 합의안(상위 10%를 제외한 아동수당 지급)의 원점 재검토 의사를 밝히자, 당시 여당 원내대표였던 우원식 의원은 “여야가 합의했으면 지켜야 한다”고 공개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정책을 놓고도 당·정·청이 엇박자를 냈다. 정책 혼선을 초래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끝내 교체대상에 포함됐다. 한때 교육 대통령으로 불린 그조차 ‘공직자 무덤’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이어진 최저임금 논란과 부동산 정책 혼선 등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 2년차 징크스’를 부채질했다. 최저임금 인상안에선 일명 ‘김앤장’(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갈등이 불거졌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임대등록 활성화 대책 8개월 만에 정책을 뒤집었다. 여당 초선인 신창현 의원은 신규 택지 후보지가 들어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대외비 문서를 외부로 유출했다.
그러자 일부 여론조사에선 과반 지지율이 붕괴됐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9월 4일과 5일 이틀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7일 공개한 9월 1주차 정례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9%로, 한 달 전 대비 11%포인트 하락했다. 부정평가는 42%로, 같은 기간 13%나 상승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주목할 부분은 긍정평가도 부정평가도 앞의 숫자가 4라는 점”이라며 “경제에 발목을 잡힌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도 2년차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도 비슷했다. 집권 2년차였던 2014년 공무원 연금 개혁안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도 군인·사학연금 개혁 강행 의지를 밝혔다가, 공무원 노조의 반발로 하루 만에 거뒀다. 그해 가을 보건복지부와 안전행정부는 하루 시차를 두고 담뱃세와 주민세 인상안을 발표하면서 민심 이반에 기름을 부었다.
더 큰 문제는 현 정부에 집권 3년차 징크스의 전조현상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집권 3년차는 5년 단임제에서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기다. 87년 체제 이후 모든 정권은 반환점을 돌면서 레임덕에 빠졌다.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사실상 내리막길로 내몰렸다. 실제 김영삼(YS) 정권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으로 ‘사고 공화국’ 꼬리표를 뒤집어썼다. 그해 치러진 첫 민선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은 15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5곳을 얻는 데 그쳤다. 이후 소통령 김현철 씨의 비위 논란은 정권 몰락의 신호탄으로 작용했다.
김대중(DJ) 정권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호재에도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른바 ‘양갑 갈등’으로 불린 동교동계의 양대 산맥인 권노갑·한화갑 최고위원의 힘겨루기는 DJ의 조기 레임덕을 재촉했다. 노무현 정권은 2005년 부동산값 폭등과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과의 대연정 추진으로 조기 레임덕에 빠졌다. 그해 치러진 4·30 재보선에선 ‘0 대 23’의 참패를 기록했다. 지금은 모두가 친문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당시만 해도 극소수만 친노(친노무현)계를 자처했을 정도다.
이명박(MB) 정권은 3년차 때 터진 민간인 불법사찰로 몸살을 앓았다. 만사형통 논란을 야기한 MB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의 이른바 ‘영포라인’ 배후론이 불거진 것도 이때다. 영포라인은 영일과 포항의 줄임말로, 1985년 결성된 이후 변방에 있다가 MB 당선 이후 ‘권력 사유화’의 정점으로 떠올랐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도 집권 3년차 때 몰락의 징조가 나타났다. 박근혜 정권 비선실세인 ‘십상시’(중국 후한 말 영제 때 권력을 잡은 환관들을 부르는 말)의 실체를 드러낸 정윤회 문건파동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2015년 새해 벽두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항명 파동’은 가뜩이나 약화된 박근혜 정부의 국정동력을 짓눌렀다. 이듬해 사상 초유의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는 박근혜 정권 자체를 사장시켰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추석을 앞두고 열린 평양 남북정상회담 등 물꼬 트인 대북관계 등은 호재다. 코리아 패싱에 대한 우려 속에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정부 출범 1년 반 만에 세 차례나 개최했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거쳐 승부사로 거듭난 셈이다. 야권의 대안세력 부재도 문재인 정부가 쉽게 무너지지 않은 요인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보수진영에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있었던 과거와 지금은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이해찬 효과’도 문재인 정부의 지지대로 작용하고 있다. 배종찬 본부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큰 폭으로 빠지는 것과는 달리, 당 지지율은 엇비슷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청 갈등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존재감은 내부권력 투쟁의 가속페달을 밟는 분기점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앞서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가 엇나가면, 청와대가 국회에 와서 사과라도 했는데 이해찬 대표 체제에선 가능하겠느냐”고 우려했다. 이해찬호의 한 번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당·청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지난해 추 전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이 정국 경색의 도화선으로 작용하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내 야당에 사과한 바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임기 중반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민생”이라며 “당·정·청이 혼연일체가 돼서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느냐가 문재인 정부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