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몰라 고배” 코드인사 논란 재점화 반면 “경쟁사 파격가 탓 책임 돌리기 어렵다” 의견도
지난해 방산비리 사건과 지난 7월 마리온(수리온) 사고 등 잇단 악재를 털어낼 수 있는 기회이자 심혈을 기울였던 APT 사업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시자 김조원 KAI 사장의 리더십도 도마에 올랐다. 이번 수주전은 김 사장의 경영능력의 첫 시험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미국 공군의 고등훈련기 교체사업에 입찰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국 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이 고배를 마셨다. 미 공군은 27일(현지시각) 고등훈련기 교체사업 낙찰자로 보잉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9월 28일 오후 경남 사천시 KAI 본관에 설치된 T-50 모형. 연합뉴스
APT 교체 사업은 KAI가 하성용 전 사장 시절부터 사활을 걸어온 사업이다. 2013년 5월 취임, 2016년 3월 연임에 성공한 하 전 사장이 같은 해 7월 열린 정기 이사회에서 “수주에 성공하지 못하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각오를 다질 정도였다. 정부 또한 국방부, 외교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리며 힘을 실어줬지만 방산비리와 분식회계 의혹에 휘말리면서 하 전 사장은 지난해 7월 사퇴했다.
하 전 사장의 뒤를 이은 인물이 김조원 사장이다. 지난해 10월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경영혁신TF’를 구성한 김조원 사장은 지난해 12월 혁신안을 발표하고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10여 명의 임원을 해임하고 기존 11개 본부를 5개 본부로 축소했다. 또 윤리경영지원본부를 신설해 투명성과 윤리경영 강화에 나섰다. 이 같은 노력에 KAI는 지난 9월 11일 방산업체 최초로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을 획득했다. 방산비리 의혹을 털어낸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김 사장은 이번 수주전 탈락으로 위기에 놓였다. 취임 1년을 맞았지만 경영쇄신 이외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뜩이나 취임 전부터 항공·방산 분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터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탈락의 가장 큰 원인은 보잉의 저가 공세”라면서도 “지난해 방산비리 조사로 KAI가 위축되고, 하 전 사장과 스타일이 상반된 김 사장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증권가에서는 KAI가 이번 수주 실패로 10조 원 규모의 사업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장기 성장의 토대를 잃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제까지 미국훈련기 사업은 한국항공우주의 고 멀티플을 설명하던 근거로 사용됐기 때문에 이번 실주는 단순 개별 프로젝트 수주 실패로만 해석될 수 없다”며 “장기성장성을 지지하던 이슈의 해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향후 해외 훈련기 시장에서의 수주경쟁력에 장해 요인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번 수주 무산을 KAI나 김조원 사장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KAI 측 입장처럼 보잉·사브 컨소시엄이 덤핑에 가깝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해 탈락했다는 것. 미국 역시 보잉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방산업체 다른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미국의 정세를 봤을 때 저가로 입찰한 보잉의 수주는 당연하다”며 “미국은 이란 제재로 인해 전투기 사업 물량이 줄어든 보잉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는 “APT 사업은 수량이 많다는 점에서 KAI에 주요한 사업은 맞지만 주 계약자가 록히드마틴이었던 이번 수주 무산이 KAI에 엄청난 타격을 준다든지 KAI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힘들다”며 “보잉은 앞서 비슷한 사업의 수주 실패를 경험하면서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했고, 록히드마틴은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KAI가 APT 사업을 저가로 수주했을 경우 더욱 큰 부담을 떠안을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익상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적정한 가격으로 APT를 낙찰했을 경우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될 수 있지만 기업 존망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저가수주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잘라 말했다. 앞의 방산업체 관계자 또한 “이번 수주전에서 KAI 또한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고 알려졌는데 만약 더 낮은 가격으로 입찰해 수주에 성공했더라면 조선업계나 건설업계의 전례처럼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금감원장 후보에서 느닷없이… 김조원 사장은 행정고시 22회 출신으로 감사원 감사관과 사무총장 등 관료 시절 주로 감사원에서 근무했다. 노무현정부 출범 후 2005년 감사원 국가전략사업평가단장으로 있던 김 사장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때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근무했다. 2015년 더불어민주당 당무감사원 원장을 맡았던 김조원 사장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 같은 인연 때문에 방산 경험이 거의 없는 김 사장의 선임을 두고 ‘코드인사’, ‘낙하산인사’라는 비난이 나왔다. 김조원 사장은 당초 문재인정부의 초대 금융감독원장으로 유력하게 점쳐졌으나 ‘경영쇄신’이라는 이유로 느닷없이 KAI 사장으로 선임됐다. 비리와 논란으로 얼룩진 KAI 내부를 수습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김 사장의 선임과 관련해서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금감원장 임명이 초미의 관심사였으며 감사원 출신의 김 사장이 내정됐다고도 알려졌다”며 “갑자기 KAI 사장에 선임되자 뒷말이 무성했다”고 전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