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타 때마다 여론에 난타…7년 전 약물 전과, 지우지 못한 ‘주홍글씨’
김재환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두산 외국인 투수 조쉬 린드블럼이 367점, 넥센 내야수 박병호가 262점으로 그 뒤를 이었다. 4위와 5위 역시 김재환의 팀 동료다. 포수 양의지가 254점, 외국인 투수 세스 후랭코프가 110점을 차례로 받았다. 정규시즌 우승팀 두산은 5위 안에 소속 선수 네 명을 포함시키는 위용을 뽐냈다.
# 김재환이 잃어버린 35명의 ‘표심’
올해 MVP 투표에선 총 111명이 투표권을 행사했다. 규정이닝 혹은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 전원과 투타 부문별 순위 10위 이내에 이름을 올린 모든 선수가 후보다. 투표 방식은 순위별 점수제. 투표자가 1위부터 5위까지 자율로 순위를 정해 표를 던진다. 1위표에 8점을 주고 2위표는 4점, 3위표는 3점, 4위표는 2점, 5위표는 1점을 각각 얻는다. 1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1위표와 2위표의 점수에 차등을 크게 뒀다. 동점이 나오면 1위표를 더 많이 얻은 선수가 승자로 결정된다. 1996년부터 2015년까지는 후보선정위원회가 추려 놓은 소수의 후보들 가운데 단 한 명만 찍는 방식으로 MVP를 선정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다시 프로야구 초창기 방식인 점수제로 돌아갔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도 오래전부터 점수제로 투표를 하고 있다.
2018 KBO리그 시상식에서 MVP로 선정된 두산 김재환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김재환은 점수제로 복귀한 지 3년 만에 가장 낮은 점수로 수상한 선수가 됐다. 유일하게 500점을 넘지 못했다. 반면 앞선 두 MVP는 모두 600점을 훌쩍 넘겼다. 2016년 MVP가 된 두산 더스틴 니퍼트는 896점 만점에 642점을 받았다. 투표인단 102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62명이 1위로 니퍼트를 선택했다. 그 외에는 2위표가 35장, 3위표가 2장씩 나왔다. 단 3명을 제외한 99명이 최소한 3위 안에 니퍼트를 선택했다는 의미다. 심지어 그해 삼성 소속으로 뛰었던 MVP 투표 2위 최형우(530점)마저 올해의 김재환보다 총점이 높았다.
2017년 MVP였던 KIA 양현종 역시 856점 만점에 656점을 가져갔다. 총 107명의 투표인단 중 68명이 양현종을 1위로 뽑았다. 2위표 18장, 3위표 10장, 4위표 4장, 5위표 2장도 각각 나왔다. 그해 투표에서 양현종을 뽑지 않은 기자는 다섯 명뿐이다.
김재환은 조금 다르다. 111표 가운데 1위표 51표를 받아 유일하게 과반을 넘지 못했다. 또 487점 가운데 1위표로 얻은 408점을 제외하면 79점밖에 남지 않는다. 2위표 12장, 3위표 8장, 4위표 2장, 5위표 3장을 합한 점수다. 투표인단의 68%인 76명만 김재환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바꿔 말하면 김재환의 이름을 5위 안에도 적어 넣지 않은 투표자가 무려 35명이라는 얘기가 된다.
# 성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과
김재환은 올 시즌 MVP를 받고도 남을 만한 성적을 냈다. 정규시즌 144경기 중 139경기를 뛰면서 타율 0.334(527타수 176안타) 44홈런 133타점 104득점을 기록했다. 두산이 역대 한 시즌 최다승(93승) 타이기록과 함께 압도적인 정규시즌 우승을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홈런과 타점 부문 1위를 석권했고, 장타율 2위(0.657)와 타율 10위에 올랐다. 리그 최정상급 타격 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이뿐 아니다. KBO 리그 최초로 3년 연속 타율 3할-30홈런-100타점-100득점을 동시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3년 연속 300루타도 성공했다. 또 1998년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의 42홈런을 넘어 두산 구단(전신 OB 포함) 역대 최다 홈런 신기록도 만들었다. 2년 전 자신이 경신했던 구단 역대 최다 타점 기록(124개) 역시 다시 한 번 갈아치웠다. 무엇보다 우즈 이후 20년 만에 국내 최대 규모의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에서 홈런왕이 나왔다. ‘잠실 홈런왕’은 김재환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별명이다.
그런데도 MVP 결과 발표 직후 김재환의 수상을 놓고 거센 반발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MVP 후보 자격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실력’ 때문은 물론 아니다. 야구선수로서 그의 성과는 수많은 기록과 숫자로 충분히 입증됐다. ‘인성’은 더욱 아니다. 김재환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 역시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성실하다.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도 매번 야구장에 나와 훈련하는 게 습관이다. 그런 그의 유일한 문제이자 논란거리는 7년 전 적발된 ‘약물 복용’ 이력이다. 그 과거가 수상에 흠집을 남겼고, 야구인생에 주홍글씨로 남았다.
김재환은 2011년 10월 파나마에서 열린 야구월드컵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 국내에서 실시된 사전 도핑 검사에서 남성호르몬 스테로이드인 ‘1-테스토스테론의 대사체’가 검출돼 양성 판정을 받았다. 2007년 도핑 검사가 시작된 이후 국내 선수 최초 적발 사례였다. 김재환은 그때 “운동을 하다 친구가 권한 피로회복제를 무심코 마신 게 전부”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금이야 선수들이 영양제 하나도 구단 트레이너의 검수를 받은 뒤에야 복용할 만큼 조심하는 분위기지만, 당시만 해도 도핑에 대한 경각심이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다. 도핑과 관련된 KBO 규약도 느슨했다. 김재환의 징계는 10경기 출전정지 선에서 마무리됐다.
김재환은 그 후로도 한동안 ‘기대주’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타격 재능을 살리기 위해 입단 당시 포지션이던 포수도 포기했지만, 2015년까지 1군과 2군을 오가는 유망주에 머물렀다. 그 재능이 폭발한 시즌이 바로 2016년이다. 타율 0.325 37홈런 124타점을 올리면서 마침내 팀의 중심 타자로 올라섰다. 2017년에도 타율 0.340 35홈런 115타점으로 맹활약했다.
# ‘도핑 적발 MVP’ 최초 수상 사례가 김재환?
문제는 김재환의 성적이 좋아질수록 그를 향한 비난도 거세졌다는 점이다. 처음 주전으로 자리 잡은 2016년을 기점으로 수년 전의 ‘약물 이력’이 재조명됐고, 김재환이 홈런을 하나씩 더 칠 때마다 인터넷 기사 댓글창은 원색적인 손가락질과 조롱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논란은 MVP 수상과 동시에 다시 한 번 불타올랐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금지약물 복용으로 징계를 받은 선수에게 MVP를 준 전례가 없기에 더 그랬다.
물론 역대 메이저리그 MVP들이 모두 스테로이드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호세 칸세코, 배리 본즈, 켄 캐미니티, 새미 소사, 제이슨 지암비, 미겔 테하다, 알렉스 로드리게스, 라이언 브론을 비롯해 약물 스캔들에 휘말렸던 스타플레이어들이 여러 차례 MVP 트로피를 받아갔다. 다만 이들 모두 수상 전이 아닌 이후에 그 사실이 밝혀졌다는 게 차이점이다.
11월 19일 서울 강남구 르메르디앙서울에서 열린 2018 KBO리그 시상식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LG 김현수, KIA 전상현, kt 김민혁, kt 문상철, 경찰청 이성규, 넥센 임지열, 한화 정우람, 롯데 전준우, 넥센 박병호, 두산 김재환, 정운찬 KBO 총재, kt 강백호, 롯데 오현택, 권영철 심판위원. 연합뉴스
특히 본즈의 경우에는 2003년과 2004년 처음으로 약물 복용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지만, 공식적인 확인이 되지 않아 두 해 모두 MVP로 뽑혔다. 이후 본즈가 스스로 “고의는 아니었다”며 약물 복용 사실을 시인했고, 이런 이유로 명예의 전당 헌액 투표에서는 번번이 표를 얻지 못하고 있다. 또 시애틀의 넬슨 크루즈는 볼티모어 시절인 2013년 홈런 40개를 쳐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에 오른 뒤 이듬해 시애틀로 이적해 다시 홈런 44개를 때려냈지만, MVP 투표에선 2013년 7위, 2014년 6위에 각각 머물렀다. 그마저도 역대 약물 복용 적발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2007년 도핑 검사를 도입한 일본에선 주로 외국인 선수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두산에서 오래 뛰다 일본으로 건너갔던 다니엘 리오스가 2008시즌 도중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돼 퇴출된 게 대표적 사례다. 리오스는 2007년 한국에서 정규시즌 MVP에 올랐을 때도 타 구단 관계자들로부터 의혹의 시선을 받았지만, 랜덤으로 선정하던 도핑 검사 대상자에서 늘 제외돼 한 번도 테스트를 받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일본으로 떠난 지 채 1년도 안 돼 퇴출되자 2007년 한국에서의 활약에 다시 한 번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지기도 했다. 일본의 자국 선수가 도핑 검사에서 적발된 사례는 2011년 주니치 내야수 이바타 히로카즈가 유일하다. 그는 눈 질환에 따른 치료약을 잘못 복용했다는 점이 인정돼 견책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 감격보다 반성이 먼저였던 수상소감
어쨌든 도핑에 대한 인식은 날이 갈수록 더 엄격해지는 추세다. 7년 전 ‘솜방망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KBO의 관련 징계는 이제 최고 수준으로 강화됐다. ‘1회 적발시 시즌 경기의 50% 출장 정지, 2회 적발시 100% 출장 정지, 3회 적발시 영구제명’이라는 중징계가 떨어진다. 무엇보다 ‘사회적 징계’가 가장 무겁다. 김재환처럼 오랜 무명 시간을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조차 과거의 낙인을 지워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몰래 쏟아낸 땀과 눈물도 한순간에 빛을 잃는다. 은퇴하는 순간까지 무거운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한다.
“금지약물인 줄 몰랐다” 혹은 “고의가 아니었다”는 해명 역시 통하지 않는다. 천하의 본즈를 비롯해 그동안 적발된 거의 모든 선수들이 입을 모아 같은 변명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는 정말 아니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한들 그 진위 여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과거의 약물 복용이 현재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해도, 약물에 ‘손을 댔다’는 것 자체를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일부 투표인단의 주장에는 기본적으로 그 해명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김재환 역시 이제는 어떤 말로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를 얻고도, 환희를 만끽하는 대신 “내가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며 거듭 사과와 반성을 했다. 수상소감 도중 아내와 세 딸의 얼굴이 떠올라 잠시 울컥하기도 했다.
그는 시상식 후 어렵게 입을 열어 “내게는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나를 향한 비판을 외면하거나 지나가지 않고, 무겁게 가지고 가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가 관련 질문을 던지기 전에 스스로 먼저 꺼낸 화두였다. 그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그 일’을 언급한 순간이기도 했다.
김재환은 “지금도 후회를 하고 있다. 단 하루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며 “최근 3년 동안 야구가 잘 풀려서 기쁘면서도 너무 괴로웠다. 바깥출입도 자제해야 했다”고 털어 놓았다. 또 “과거의 잘못이 있으니 내 미래가 더 중요하다.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아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를 기부해 이 상의 무게를 다른 이들과 나누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역대 가장 엄숙하고 쓸쓸했던 MVP 수상소감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그리고 김재환은 2018년 최고의 프로야구 선수로 영원히 기록됐다. 훗날 그는 KBO 리그 역사에 어떤 선수로 남게 될까. 그리고 올해의 MVP 투표 결과는 어떻게 기억될까. 시간이 말해줄 듯하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새로운 신인왕 강백호, 만장일치는 실패 매년 MVP와 신인왕은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탄생하기 마련이다. 신인상은 특히 더 그렇다. 풀타임 첫 시즌에 1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인 선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서다. 이런 이유로 신인상 투표는 MVP 투표에 비해 유독 몰표가 쏟아지는 사례가 많다. 올해 최우수 신인선수로 뽑힌 KT 강백호(19)도 다르지 않았다. 일찌감치 ‘1순위 신인왕’으로 꼽혔고, 실제로 기자단 투표에서 555점 만점에 총 514점을 받아 2위 김혜성(넥센·161점)과 3위 양창섭(삼성·101점)을 여유 있게 제쳤다. 2018 KBO리그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kt 강백호가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누적 성적만 좋은 게 아니라 ‘임팩트’도 강했다. 데뷔 첫 타석부터 올 시즌 KBO 리그 1호 홈런을 터트리며 ‘슈퍼 루키’의 출현을 알렸다. 9월 15일 수원 삼성전에서는 시즌 22호 아치를 그려 1994년 LG 김재현이 작성한 역대 고졸 신인 최다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또 10월 9일 수원 한화전에서는 1991년 쌍방울 김기태가 기록한 27홈런을 넘어 왼손 타자 신인 최다홈런 기록도 새로 썼다. 막내 구단 KT는 강백호 덕에 KBO 리그 합류 4년 만에 처음으로 신인왕 수상자를 배출했다. 강백호는 신인상 트로피를 품에 안은 뒤 자신이 프로 첫 스프링캠프로 출발하던 날 세상을 떠난 할머니에게 인사를 전했다. “가족들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내게 알리지 않았다. 스프링캠프를 마친 후에야 아버지와 함께 납골당으로 가서 할머니께 인사드렸다”며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올해 144경기를 치르는 동안 매일 할머니께 기도를 했고, 할머니께서 나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신 것 같다”고 말해 감동을 안겼다.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그런 강백호도 ‘만점’은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점 혹은 만장일치 수상은 아무리 압도적인 성적을 올려도 오르기 힘든 고지다. 2006년 신인 최초로 투수 트리플 크라운(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1위)을 달성한 한화 류현진조차 9표가 모자라 만장일치에 실패했다. 2016년 신인 투수로는 류현진 이후 10년 만에 15승을 올렸던 넥센 신재영 역시 총 93표 가운데 1위표 90장을 받아 만점이 불발됐다. 역대 KBO 리그에서 만장일치로 뽑힌 신인왕은 1996년 현대 박재홍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박재홍은 데뷔 첫 해부터 홈런·타점왕을 휩쓸고 최초의 ‘30홈런-30도루 클럽’을 개설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견이 없는 신인왕. 경쟁자였던 해태 김상진, 한화 송지만, 삼성 최재호는 단 한 표도 받지 못했다. 강백호는 올해 박재홍이 보유한 역대 신인 최다(30홈런) 홈런 기록에 딱 하나가 모자랐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