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기본권 침해, 형평성도 어긋나” VS “신뢰 회복하겠다더니 스스로 약속 어기려”
최근 일부 변호사들이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연합뉴스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에서 재무·공보이사를 역임했던 이율 법무법인 동서남북 변호사 등을 포함한 변호사 59명은 지난 11월 23일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의무화하는 ‘변호사법 제27조’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이율 변호사 등은 이 법규가 양심·직업수행의 자유권과 평등권 등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이율 변호사는 “공익활동은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법조계에서 변리사, 세무사, 회계사, 노무사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변호사만 이런 법적 의무를 지우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므로 위헌이며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법 제27조는 세계 최초로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의무화한 법조항이다. 해당 법조항과 대한변협 회칙에 따르면, 국내 변호사는 연간 최소 20시간의 공익활동을 이행해야 한다. 이를 어긴 변호사는 일정 금액의 과태료를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납부해야 한다. 법조경력이 2년 이상, 60세 미만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한 변호사라면 이를 예외 없이 준수해야한다.
공익활동 의무화 시행 배경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자 했던 변호사들의 지지가 있었다. 폐지를 주장하는 지금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였던 것. 해당 법규가 입법화된 시기는 2000년이다. 당시 의정부, 대전 지역에서 법조 비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변호사들은 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었다. 김창국 대한변협 40대 회장은 “법조계가 최대 위기를 맞게 된 것은 기득권을 지키며 안주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민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일하겠다”며 변호사들의 공익활동 의무화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 무렵 참여연대 사무처장직을 역임하고 있던 현 박원순 서울시장은 “변호사 수의 증대로 변호사 비리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변협이 공익활동을 의무화한 것은 획기적”이라며 공익활동 의무화를 적극 지지했다. 입법화 이후 대한변협은 공익활동의 범위와 시행 방안들을 직접 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작 변호사들은 이를 좀처럼 준수하지 않았다. 법정 의무시간을 채우지 않는 사례가 빈번히 나타났던 것. 판사·검사 출신의 전관변호사들까지도 공익활동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변호사들 사이에서 이 제도는 관심 밖이었던 셈이다. 국내 주요 법무법인 소속의 한 변호사는 “이 제도를 처음 듣는다. 대부분 변호사들도 잘 모르는 듯하다”라며 “여태 변호사로 근무하며 공익활동 시간이 부족하니 이를 채워라라는 등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국 변호사 59명이 ‘변호사법 제27조’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고성준 기자
공익활동 미이행에 대한 제재조치가 미약한 것도 문제다. 공익활동 의무시간을 채우지 않은 변호사가 지급해야 하는 과태료는 1시간 당 2만~3만 원에 불과하다. 서초구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사실 일하면서 20시간에 이르는 공익활동 시간을 채울 겨를이 없다”며 “3만 원으로 해결하고 말자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변협 차원에서의 감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변호사들의 의무연수 참여나, 필수 강의 수강 등처럼 공익활동에 대한 감시·감독도 동일하게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공익활동 내용과 시간은 변호사가 직접 입력하는 식이라 본인이 지인들을 무료상담해주고 이를 공익활동이라 말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법은 유명무실해졌고 변호사들은 입법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최근 변호사들의 헌법소원 청구는 자신들의 약속을 어기는 행위이자 편의를 누리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공인노무사는 “법규 폐지는 변호사들이 처음 내세웠던 명분을 뒤엎는 것이며 결국 실리를 쫓는 행위”라며 “변호사는 사회에서 검사·판사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특수한 전문직이다. 그 사회적 역할과 법적 서비스를 누릴 수 없는 계층 등을 인지하다면, 변호사들은 폐지가 아닌 개선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게 옳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이율 변호사는 당초 법규 자체가 정당성을 갖지 못한 만큼 헌법소원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변호사의 공익활동 의무화는 변호사들의 진심어린 자정적 약속이었다기보다 일종의 정부와 변호사 사이 거래의 일부로 입법화된 측면이 크다”라며 “당시 김대중 정부는 변호사들의 생리를 개혁하겠다며 대한변협에 대한 임의단체화를 시도했다. 이때 대한변협이 법정단체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내건 게 공익활동 의무제이기도 했다. 입법 취지 자체가 다소 부적합하다.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