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으로 작품 택한 적 한 번도 없어…1000만 관객 모은 영화도 아쉬움 남는다”
1년에 한 편씩 꾸준하게 주연영화를 내놓았던 송강호가 이번에는 다소 긴 1년6개월이란 공백을 보냈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여름 개봉했어야 할 영화 ‘마약왕’(감독 우민호·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공개 시기가 겨울로 밀리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공백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한 건 아니다. 올해 봉준호 감독과 다시 손잡은 영화 ‘기생충’ 촬영을 진행했고, 얼마 전 한글 창제에 얽힌 비밀을 다룬 또 다른 영화 ‘나랏말싸미’ 촬영을 시작했다. 영화를 찍고, 끝나면 또 다른 영화를 촬영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쉼 없는 활동에 잠시 짬이 난다면 송강호는 과연 어떤 일부터 할까. ‘마약왕’ 개봉을 며칠 앞두고 만난 송강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더니, 호탕한 웃음부터 터트렸다.
“주로 가만~히 있습니다. 하하하! 운동이요? 전문적으로, 열성적으로, 하지 않아요. 그저 적당히 하죠. 그리곤 또 가만~히 있습니다. 하하!”
사진 제공 = 쇼박스
12월 극장가는 여름과 더불어 연중 최대 성수기로 꼽힌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겨울방학이 맞물리면서 관객이 대거 극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그에 맞춰 블록버스터도 여러 편 출격한다. 올해는 ‘마약왕’을 포함해 하정우가 주연한 ‘PMC:더 벙커’, 도경수의 ‘스윙키즈’ 등 3편의 한국영화가 대진표에 올랐다. 이들 영화가 전부 공개돼야 제대로 된 평가와 결과 예측이 나오겠지만 일단 개봉 전 반응은 ‘마약왕’으로 쏠린다. 오직 송강호의 영화라는 사실이 호감도 상승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배우 한 명이 관객에 이토록 신뢰를 얻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배우에게 꼭 긍정적인 결과를 안기는 건 아니다. 송강호 역시 “부담스럽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했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부담이 작품 활동의 방향성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고요. 늘 자극을 주는 정도의 부담감이랄까. 이번 ‘마약왕’도 결과를 떠나서 관객에게 저의 새로운 도전으로 인식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요. 결과요? 겸허히 받아들이는 거죠.”
송강호는 배우로 갖는 자신의 ‘지향’도 밝혔다. 이 말을 할 때는 자신은 “이념적으로 치우친 배우도 아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영화 ‘변호인’을 선택하면서 얻기 시작한, 특정 정치 성향을 가졌을 것이란 시선을 경계하는 듯했다.
“어떤 작품이든 선택할 때는, 흔히 말하듯 이념적으로 택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저는 단지 우리가 정확하게 알고 싶은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전하는 쪽에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 욕심은 배우로서 끝까지 유지하고 싶어요.”
늘 승승장구하는 듯 보이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만드는 일종의 ‘외로움’은 줄곧 자신을 따른다는 말도 꺼냈다. 그는 “배우가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그런 면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며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고, 이 작업 자체가 구태의연한 표현일지 몰라도 외롭다. 모든 걸 결국 혼자 해야 하기에 그 과정이 달달한 것만은 아니다”고 했다.
# “마약 소재의 영화, 나약한 인간의 파멸 그려”
12월 19일 개봉한 송강호의 영화 ‘마약왕’은 1970년대 부산을 무대로 활동한 마약 밀매업자 이두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마약 수출도 애국’이라고 믿는 그는 수완을 발휘하면서 돈과 권력을 쟁취하지만 욕망의 끝에서 스스로 파멸한다. 그동안 송강호가 주로 보여줬던 살갑고 의지가 굳은 소시민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새롭지만 그만큼 낯설다. 송강호를 향한 관객의 지지가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는, 과감한 도전이기도 하다.
사진제공=쇼박스
“소재가 사회악으로 치부되는 마약이지만 그보다 인간이란 존재가 나약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입니다. 파멸할 걸 알면서도 그 길로 들어가 돈의 쾌락, 돈의 권력을 놓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관객들이 ‘저런 모습 처음 보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송강호는 출연하는 영화로 대부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다. ‘괴물’부터 ‘변호인’, ‘택시운전사’까지 내리 3편의 영화로 나란히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자타공인 ‘흥행배우’로도 꼽힌다. 그런 그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작품, 다시 촬영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가 있을까.
“글쎄요. 1000만 관객을 모았다고 해서 그 영화가 아쉬움이 없을까요. 어떤 작품이든 다 아쉬움은 남습니다. 특히 관객에게 덜 평가받는 작품이라고 한다면 그건 작품의 문제라기보다는 내 능력 부족이죠. 내 문제고요. 우리 인생사가 언제나 좋은 길만 갈 수는 없잖아요. 길을 가다 시행착오를 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송강호는 요즘 영화 촬영장에 나가면 자신이 가장 연장자라고 했다. 그럴 때면 “촬영장에서 느끼는 부담과 책임이 터 커진다”며 “극복할 방법은 간단하다. 즐거운 현장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좋은 연기란 뭘까 늘 생각하죠. 물론 연기의 기준이 문법화돼 있진 않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좋은 연기란 배우 자신이 얼마만큼 솔직한가, 얼마나 자신의 느낌을 투영했나에 달리지 않았나 해요. 내 자신에게 얼마나 솔직할 수 있는지, 얼마나 진심을 투영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