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016년에도 유사 사건 발생, 미성년자 부작용 신고 급증…전문가들 “보호자가 5일간은 지켜봐야”
김 씨의 자녀 3명은 올해 초 차례로 독감치레를 했다. 그는 “시럽으로 된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먹였다. 세 아이 모두 부작용이 있었고 증상도 각각 달랐다. 8세 첫째는 저체온증, 6세 둘째는 구토를 했다. ‘약에서 매운맛이 난다’던 3세 막내는 어지러운지 잠도 잘 못자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고 말했다.
12월 22일 타미플루를 복용한 여중생이 자신의 방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학생이 전날 환각 증상을 호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타미플루 공포증’이 확산되고 있다.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타미플루. 연합뉴스
타미플루는 2001년 스위스 제약사 로슈사가 개발한 독감 치료제로 신종플루 등 변종 바이러스에 탁월한 효과를 가진 제품이다. 타미플루의 ‘오셀타미비르’는 중국 토착식물인 ‘팔각’에서 유래한 시키미산 성분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표면의 ‘뉴라미데이즈’라는 효소를 억제해 바이러스가 사람세포를 뚫고 들어가는 것을 막는 치료효과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오셀타미비르는 복용 환자에게 경련과 환각, 초조함, 떨림 등 신경정신계 이상 반응을 나타낼 수 있다. 실제로 타미플루의 부작용 문제는 몇 년 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먼저 불거진 곳은 일본이다. 2004년 일본 기후현에서 타미플루를 복용한 고교생이 맨발로 도로를 걸어 다니다가 트럭에 뛰어 들어 사망했다. 이듬해 같은 약을 먹고 환각 증세를 호소하던 중학생이 9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사건이 한 차례 더 발생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일본에서 환각 증세를 호소하다 사망한 인원만 120여 명. 이 가운데 8명은 건물에서 떨어지거나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사망자의 80%가 20세 미만의 청소년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일본 후생노동성은 2007년부터 2018년 8월까지 해당 약의 미성년자 처방을 중단했다.
국내에서도 부작용 신고 건수가 크게 늘었다. 신종플루가 유행했던 2012년 55건에 불과했던 부작용 신고 건수는 2016년 257건으로 증가했다. 2018년은 9월까지 접수된 것만 벌써 206건이다. 특히 소아·청소년 환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아·청소년 환자들의 경우 성인과 달리 환각 증상이 일어났을 경우 대처가 미흡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실제로 2016년 타미플루를 복용한 11세 남학생이 21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고 그보다 앞선 2009년 경기도 부천에서는 14세 중학생이 같은 약을 먹고 환청증세를 호소하다 6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전신골절을 입기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07년부터 소아와 청소년의 경우 경련과 섬망과 같은 신경계 이상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 문구를 추가했다.
이 외에도 타미플루를 복용한 환자들은 크고 작은 부작용을 호소했다. 지난달 5세 딸이 독감에 걸려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다는 최 아무개 씨(42)는 “약을 복용한 당일 아이 등과 배, 심지어 얼굴에도 빨간 두드러기가 폈다. 3일이 지나도 발진이 가라앉지 않아 아이를 업고 소아과에 갔는데 의사가 ‘약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며 ‘보습제만 잘 발라주라’고 하더라. 집에 와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타미플루 부작용 중에 ‘피부발진’도 있었다. 부작용이 맞는데 의사와 약사는 아니라고만 하니 답답할 뿐이다”라고 전했다.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박 아무개 씨(40)의 10세 아들도 2017년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이상 행동을 보였다고 했다. “아이가 ‘덥다, 춥다’를 반복하며 안방과 거실을 수도 없이 왔다갔다했다. 눈을 자꾸 비비며 ‘앞이 흐리게 보인다’는 말도 했다. 집에 있던 아이 할머니가 당황해서 ‘침대에 누워있으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3일 내내 혼잣말과 구토를 반복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생각해도 무섭다. 올해는 독감에 절대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타미플루의 다양한 부작용에도 병원이나 약국에서는 명확한 복약지도 없이 쉽게 약을 처방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일요신문’이 만난 타미플루 부작용 피해자 5명 가운데 4명은 의사나 약사로부터 해당 약품의 부작용에 대해 자세히 고지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머지 1명은 약사로부터 “아이가 토하면 약을 다시 먹이라”는 등의 내용만 들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작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녀에게 약을 먹였다가 아이가 부작용을 일으켜 자의적으로 복용을 중단하는 부모도 적지 않았다. 김 씨와 최 씨 모두 의사가 권장한 5일 복용을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에 놀라 더 이상 약을 먹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타미플루 부작용 때문에 약 복용을 중단하거나 과잉 반응을 보일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가정의학과 의사는 “환각이나 환청은 독감 고열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타미플루가 신경장애나 자살충동을 유발한다는 의학적 근거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48시간 안에 약을 복용하지 않아 생기는 위험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10세 미만의 아이들의 경우 환각이나 환청이 발생하면 크게 당황한다. 따라서 약을 복용하는 5일 동안은 보호자가 반드시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식약처는 12월 24일 의사·약사 등 의료인들에게 처방·투여 시 주의 사항을 알리는 ‘안전성 서한’을 배포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약을 먹은 아이가 환각을 보거나 환청을 듣는 경우, 혼잣말을 과도하게 하는 경우, 안절부절못하거나 잠을 못 자는 경우에는 의사에게 알리고 약 복용에 관한 상담을 하라”고 했다.
한편 최근 발생한 여중생 추락사와 관련해서 담당 경찰은 “추락에 의한 장기 손상으로 사망했다는 검안 소견이 나왔으며 타미플루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해당 학생의 혈액을 채취해 국과수에 검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복제약 부작용이 더 클까 타미플루 부작용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타미플루 정품이 아닌 복제약이 부작용을 더욱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타미플루 계열 약 대부분이 ‘XX플루’, ‘타미XX’ 등 정식 명칭이 타미플루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위스 로슈사의 타미플루는 2017년 8월을 기준으로 물질특허가 만료돼 현재는 누구든 복제약 제조가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복제약이 정품에 비해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근거는 없다. ‘일요신문’이 만난 한 의약품 관계자 A 씨(57)는 “타미플루 정품과 복제약은 성분이 같아 어느 하나가 더 많은 부작용을 유발한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 ”다만 제품의 증가가 부작용 발생 건수를 높였을 개연성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복제약이 많긴 많다. 지난해 이후 국내에만 벌써 123개가 넘는 복제약이 출시된 상태다. 2012년 타미플루 품귀현상은 옛말이고 지금은 너도나도 제품 공급에 힘쓰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약이 없는 것도 아니니 병원에서 처방을 안 해줄 이유가 없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말했다. 공급이 충분한 만큼 병원이나 약국 입장에서 처방하기도 쉽다는 뜻이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타미플루의 처방건수는 2009년부터 해마다 2만 건씩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24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B 씨 역시 “요즘 병원에서는 열이 조금만 높으면 24개월짜리 아이에게도 타미플루나 항생제를 처방해주는 것 같다“라며 ”효과가 좋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면 부모로서는 약이나 주사나 뭐든 할 수밖에 없어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
“토해도 다시 먹여라” 왜? 인플루엔자 항바이러스제는 국제적으로 5일간 총 10회 복용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타미플루 계열 약품도 마찬가지다. 독감 증상이 일어난 지 48시간 이내, 10시간~12시간 간격으로 하루 2알씩 5일간 총 10회를 권장하고 있다. 중도에 약 복용을 끊어서도 안 된다. 바이러스의 재발 가능성과 약에 의한 내성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약을 먹고 바이러스 수치가 떨어졌을 때 약을 끊어버리면 억제 효과가 떨어지면서 다시 바이러스가 증식할 수 있다. 체내 바이러스가 있는 상태에서 항바이러스제의 농도가 낮아지면 바이러스가 내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의사와 약사들이 “아이가 약을 토해도 반드시 다시 먹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중간에 증상이 호전된다고 하더라도 5일 10회를 채워 약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 구토를 하거나 약 복용에 실패하면 30분 이내에 곧바로 한 알을 다시 먹어야 한다. 만약 부작용이 너무 심한 경우 주치의와 상담 후 흡입제나 정맥주사형 타미플루를 복용할 수도 있다. 최희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