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지식 부족한데 요직에 떡하니…실무진급에서도 전문가 패싱 현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6월 부산 기장군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한 원자력계 인사는 “기자님이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 언론은 사회악이고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회사 요직을 다 차지하면 그 언론사가 제대로 돌아가겠나. 탈원전 인사가 줄줄이 원자력계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조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원자력계 인사는 “탈원전 인사들은 절대 원자력 전문가들이 아니다. 진짜 전문가들은 그들과 이야기해 보고 기초지식이 너무 없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일례로 한 인사가 ‘북한이 원전을 폭격하면 핵폭발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핵폭탄은 핵물질을 고농축해 만든다. 원전은 핵폭발이 일어날 만큼 핵물질을 농축시키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에도 방사능이 유출되는 정도다. 이런 기초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원자력계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비전문가들이 요직을 차지하면 국민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최근 요직에 임명된 탈원전 인사는 김혜정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이다. 원자력안전재단은 재난 발생 시 주무부처 중 하나다.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지만 김 이사장은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다. 김 이사장은 환경운동연합에서 원전안전특별위원장을 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원자력안전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기초용어를 물어보는 질문을 반복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했는지 원자력안전재단 측은 이례적으로 신임 이사장에 대한 보도자료도 내지 않고 취임식을 치러 ‘도둑 취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 이사장 취임 이전에도 원자력안전재단에는 탈원전 인사들이 연이어 임명됐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대표와 김영중 환경컨설팅협회회장은 각각 이사로, 김영희 탈핵법률가 모임 해바라기 대표는 감사로 임명됐다.
원자력에 대한 국민이해 증진을 위해 설립된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2017년 12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아예 재단에서 원자력이란 단어를 빼버린 것이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임명된 인물은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다. 윤순진 이사장은 교수 시절 전국을 돌며 탈원전 강연을 했고, 언론에 탈원전 옹호 글을 기고했던 인사다. 역시 탈원전 활동을 했던 윤기돈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상임이사로 취임했다.
이외에도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대표인 박진희 동국대 교수는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감사로 임명됐고,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감사,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집행위원장을 지낸 김해창 경성대 교수는 한수원 사외이사가 됐다.
친환경 반핵 활동을 했던 서토덕 부산·경남생태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원자력연구원 감사로 임명됐는데 이 과정에서 연구원 노조가 반발하기도 했다. 연구원 노조는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무자격 인사를 임명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반발했지만 임명이 강행됐다.
문재인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 수립에 참여했던 안남성 에너지전환정책 전력정책심의위원은 한국전력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선임됐다.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는 원자력산업분야 실무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원자력 실무인력을 양성하는 대학 총장에 탈원전 인사를 선임한 것이다.
한 원자력계 인사는 “현재 원자력계에서는 탈원전 활동했던 이력이 최고 경력이다. 밖에서 탈원전 활동이나 했으면 좋은 자리 갔을 텐데 왜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했는지 자괴감이 든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탈원전 인사들을 요직에 임명하기 위해 기존 인사들을 찍어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임기가 남은 전임자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물러난 후 그 자리에 탈원전 인사들이 임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환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임기를 1년 4개월 남겨놓은 상태에서 물러났다. 김 전 위원장은 원자력정책관, 원자력국장 등을 지낸 원자력 전문가였다. 후임자로 임명된 사람은 반핵운동가 출신인 강정민 전 미국 천연자원보호위원회(NRDC) 선임연구위원이었다.
최종배 원전안전위 상임위원도 일신상의 이유로 물러났다. 그 자리에는 ‘월성 1호기 운전 취소소송’을 이끌었던 김호철 민변 회장이 위촉됐다. 이관섭 전 한수원 사장과 성게용 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도 임기를 남기고 사임했다. 전임자들이 물러날 이유가 없어 외압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사자들은 침묵을 지켰다.
지난 2018년 11월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이 물러났을 때는 연구원 노조가 공개적으로 정부 외압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원자력연구원이 과거 원자로 해체 폐기물을 무단 처분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를 이용해 정부가 하 원장 사퇴를 압박했다는 주장이다.
탈원전 인사들이 대거 임명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한 원자력계 관계자는 “일부 인사들이 원자력 관련 직책을 얻고 탈원전 강연에 나서더라. 원자력 기관 현직 인사가 원자력이 위험하다고 강연하니 얼마나 신빙성이 있겠나. 탈원전 여론전을 위해 이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부로 보이는 자리뿐만 아니라 원자력계 내부 실무진급에서도 전문가 패싱 현상이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면서 “특정 대학 원자력학과 출신 인사들이 원전 마피아로 낙인찍혀 요직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전문가들을 전부 배제하면 원전 안전은 누가 책임질 거냐”고 우려했다.
한 대학 원자력학과 교수도 “물론 어느 정도 외부인사가 필요하지만 균형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원안위 위원 중 원자력 전공자가 1명도 없다. 국민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면서 “선진국에선 외부 인사를 임명하더라도 원자력 관련 경력이 있는 인사를 임명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기준이 없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