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강 신진서 꺾고 천부배 초대 챔피언에…이전 세계대회 두 차례 우승 땐 전성기 이세돌·커제 제압
중국에서 개최하는 세계 대회는 춘란배, 백령배, 몽백합배, 신오배, 천부배까지 이미 다섯 개다(한국은 삼성화재배, LG배 두 개). 천부배는 2018년 8월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금융·부동산 기업인 천부그룹이 창설한 메이저 기전이다. 우승상금은 200만 위안(한화 약 3억 3000만원), 준우승 상금 70만 위안이다. 4년마다 열리는 응씨배(대만 개최) 40만 달러를 제외하면 단일대회 최고 액수 상금이다.
천부배 결승 3번기 최종국 복기장면. 최종 우승자 천야오예(오른쪽)는 32강에서 최철한, 16강에서 셰얼하오, 8강에서 구쯔하오를 꺾었다. 천야오예는 4강에서 박정환 9단을 완파하고, 결승 3번기에선 한국랭킹 1위 신진서 9단(왼쪽)에게 2-1 승리를 거뒀다.
천부배는 지난 9월에 본선을 시작해 4강 진출자를 가렸다. 세계 각국 최고수 32명을 초청했는데 한국은 조별 토너먼트에 박정환·신진서·김지석·이동훈·강동윤·최철한·이창호 일곱 명이 출전했었다. 12월 말에 열린 준결승에 남은 기사는 한국 박정환·신진서와 중국 천야오예·장웨이제였다.
천야오예는 준결승에서 박정환 9단에게 완승을 거두고, 결승 3번기에서 신진서 9단을 2-1로 제압해 초대 우승자가 되었다. 한국랭킹 2위와 1위 기사를 연달아 꺾은 결과다. 상대전적을 살펴봐도 최근 3년 동안 천야오예가 박정환을 상대로 7연승(총전적은 34전 21승 13패), 최근 한국랭킹 1위에 오른 신진서에겐 8전 6승 2패다.
이 정도면 ‘천재들의 천적’ 소리를 들어도 무방하다. 천야오예가 세계대회 우승만 세 번째인데 이전 결승 상대가 5년 전 전성기 시절의 이세돌 9단(춘란배), 2년 전 한창 물이 올라있던 커제 9단(백령배)이었다.
#천재 잡는 천재, 천야오예는 누구?
천야오예는 89년 12월에 베이징 시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4세 때 생일선물로 아버지에게 다이아몬드 게임(보드게임의 일종)을 선물 받았는데 여기에 매혹된 천야오예는 혼자 앉아 온종일 각종 수법을 연구했다. 얼마 되지 않아 이 게임에서 천야오예를 이길 수 있는 어른은 없었다. 이런 방면에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달은 천야오예의 부모는 1년 후 그를 소년 바둑학교에 보냈다.
어린 시절, 바둑과 만남은 천야오예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 밤을 잊고 바둑에 매진했다. 쉼 없이 달려드는 의욕이 가장 귀한 재능이었다. 흑백 세계에 깊이 빠져들수록 바둑선생들은 입을 모아 그가 보여주는 기재를 칭찬했다. 사활고전 ‘발양론’과 ‘천룡보’가 취미서적이었고, 바둑판 앞이 유일한 휴식처였다.
천야오예는 2000년, 11세 나이로 프로입단했다.
# “너 잘났다, 이런 소 같은 놈…”
천야오예 하면 회자하는 일화 하나. 2003년 갑조리그 6라운드, 당시 베이징팀 소속이었던 13세 소년 천야오예는 녜웨이핑 9단에게 한집반을 패했다. 승부는 패했지만, 복기에선 천야오예가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녜웨이핑이 “웃기는군. 이렇게 두면 네 돌이 죽은 거야”라고 말하면 천야오예는 맥점을 보여주며 “2선으로 두면 아무 일 없어요”라고 반박하는 식이었다. 끝까지 대항하는 천야오예의 고집에 할 말을 잃은 녜웨이핑은 “잘났군 잘났어. 정말, 이런 소 같은 놈”이라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른 대국을 관전하러 가버렸다. 자리에 홀로 남은 천야오예 눈이 붉어지더니 끝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2006년 LG배에서 17세 천야오예는 수많은 선배 고수를 꺾고 결승에 올라갔다. 최후의 승자는 구리 9단이었지만, 결승 5번기에서 천야오예는 2연패 후 2연승이란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 ‘천재 소년’ 이미지를 굳혔다.
2007년 열린 TV바둑아시아 선수권 준우승(대 이세돌)해 당시 세계최연소 9단으로 특별 승단(세계대회 2회 준우승)했다. 이후 중국 국내기전인 천원전, 창기배, 초상은행배 등에서 우승하며 꾸준히 정상권에서 활약했지만, 세계대회 우승은 아주 늦었다. 입단 후 13년이 지나서야 춘란배에서 이세돌 9단을 2-1로 꺾고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2016년은 커제 9단을 3-1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천야오예는 어린 시절부터 이창호 9단을 존경하고 자신의 이상형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읽은 수를 마음속에 접어두고, 최적 타이밍을 기다리는 노련함도 천야오예의 장기 중 하나다. 예전 베일 듯했던 천재성과 황소처럼 질긴 고집은 거듭된 노력으로 내면에 감추었다.
이번 천부배 결승을 해설한 이지현 9단은 일요신문과 전화인터뷰에서 “천야오예 9단은 수읽기가 날카롭고, 형세판단이 정밀하다. 복잡한 반면을 정리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번뜩이는 수보다는 대체로 무난하고 평범한 수를 좋아하는 면도 독특하다. 기풍 자체만 놓고 보면 박정환 9단과 많이 닮았고, 신진서 9단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승부기질에선 더 센 느낌을 준다”라고 평가했다.
천부배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천야오예는 “이제 세계대회에서 3번째 우승이다. 창하오 9단의 우승기록을 따라잡아서 기쁘다. 내가 바둑을 배우던 무렵에는 대부분 일류기사 나이가 30대를 넘었었다. 내 전성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천야오예는 1월 중순 열리는 백령배 준결승에서 다시 커제와 대결할 예정이다. 2019년을 여는 세계대회에서 그가 ‘30대 전성기’론을 증명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박주성 객원기자
[승부처 돋보기] 1선 젖히자 곤마가 세 개 제1회 천부배 결승 최종국 ●천야오예 9단 ○신진서 9단 (207수 흑불계승) 3번기 1국은 돌을 가려 신진서가 흑번, 2국은 천야오예가 흑번이었다. 최종국에선 다시 돌을 가렸다. 결승 3국 개시를 선언하자 천야오예가 백돌을 한 움큼 쥐었고, 신진서는 독특하게 돌 두 개를 반상에 올렸다. 결국 홀짝을 맞힌 신진서가 백을 쥐었다. 결승1, 2국에선 ‘백번필승’ 흐름이어서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포석은 결승 2국과 비슷했고, 서로 연구된 진행이라 초반은 돌이 빠르게 놓여졌다. 제1회 천부배 결승 3국. 참고도를 보며 중반 진행을 살펴보면 흑은 좌하귀와 좌상귀에서 삼삼을 파며 확실하게 실리를 챙겼다. 우변에서 먼저 접전이 펼쳐졌는데 결과는 백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하변에서 신진서가 실리를 탐하며 흑에게 두터움을 빼앗겼다. 마지막 승부처 장면이다. 천야오예가 흑1로 젖혀 백돌을 차단하니 백은 곤마 세 개(△, □, × 표시)가 보인다. 신진서는 우선 2로 상변을 붙여 응수를 묻고, 백4 날일자로 씌웠다. 신진서는 국후 이 장면에 대해 “패가 나오는 모양을 착각했다. 또 여기서 내가 약간 불리한 정도라고 형세를 오판하고 있었다”라며 아쉬워했다. 흑이 5로 강하게 붙여 나오자 틀어막을 수가 없다. 흑9까지 수순으로 패는 피할 수 없다. 천야오예는 확실한 팻감 확보를 위해 우하귀도 14까지 교환해 둔다. 흑이 팻감으로 17을 두자 신진서는 더 버티지 못하고 바로 ‘A’ 자리에 빵따냄을 했다. 결국 우하귀 영토는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 여기선 확실하게 흑이 우세해졌다. 신진서는 처음 오른 세계대회 결승이 아쉬웠는지 가망 없는 형세에도 80여 수를 더 두다 돌을 거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