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급 인사 통해 부원장보 자진사퇴 압박…조직 장악 나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7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브리핑룸에서 열린 금융감독혁신 과제 발표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지난 10일 전격적으로 국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통상 임원(부원장보) 인사 후 국장급 인사를 단행하지만, 이번에는 순서가 달랐다. 임기가 보장되는 부원장보 일부가 사직서 제출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금감원 부원장보는 3년 임기가 보장되며 원장이 임명권을 갖지만 해임권은 없다. 자진사퇴가 아니면 임기를 마쳐야 교체할 수 있다.
그런데 윤 원장은 국장급 인사에서 교체가 유력한 3명의 부원장보 자리를 메울 후보들을 대기시켰다. 대기 중인 후배들을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만들지 않으려면 자진 사퇴하라는 압박을 한 모양새가 됐다. 일각에서는 윤 원장이 사퇴를 거부하는 부원장보에 대해 직무배제 조치를 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인사에서는 세대교체와 발탁도 두드러졌다. 통상 이 같은 인적쇄신은 인사권자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본다. 지방자치단체와 외부 공공기관 등에 파견 가 있던 인사들이 이번 인사에서 대거 본부 국·실장에 기용됐다. 이른바 ‘물 먹은’ 자리에서 요직에 기용되면 인사권자에 대한 로열티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윤 원장이 확실한 조직 장악에 나섰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윤 원장이 학자 출신이고 큰 조직을 이끌어 본 경험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었는데, 이번 인사 등으로 전혀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됐다”고 풀이했다.
최근 윤 원장은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갈등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금감원의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최근 예산동결 등을 통해 통제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최 위원장은 윤 원장이 밝힌 금융회사 종합감사제도 부활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앞서 두 사람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처리와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문제 등에서도 뚜렷한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최 위원장은 윤 원장이 학자 시절 금융위원회 혁신을 위해 이끌었던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개혁안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종합감사 부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회 정무위는 금융위를 관할한다. 최 위원장에게는 ‘갑(甲)’이다. 정무위원장인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종합감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윤 원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종합감사가 부활하면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에 대한 강력한 통제권한을 갖는다. 특히 윤 원장이 강조해왔던 금융그룹통합감독과 내부통제 강화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금융회사를 가진 대기업집단에는 부담이다.
윤 원장과 최 위원장의 힘겨루기는 조만간 있을 저축은행중앙회장 선거에서도 반영될 전망이다. 후보자 가운데는 윤 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박도규 전 SC제일은행 부행장과 최 위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박재식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출사표를 낸 상태다. 저축은행중앙회장은 회원사 총회에서 선출하지만, 대부분 이사회에서 추천하는 단독후보가 추대되는 형식이었다. 그만큼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김이 절대적인 곳이다. 윤 원장과 최 위원장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이유다.
핵심 변수는 최 위원장의 거취다. 금융위원장 임기는 3년으로 1차례 연임 가능하다. 최 위원장은 취임 후 1년 반가량 지났다. 임기가 남았지만 지난해 경제부총리가 김동연 장관에서 홍남기 장관으로 교체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편제상 상급자인 홍 신임 부총리(29기)가 최 위원장(25기)의 행정고시 후배다. 관료사회에서는 좀처럼 있기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홍 부총리 지명 후 최 위원장이 청와대에 사의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위원장의 사의가 반려됐는지 보류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인사권에 영향력이 큰 비서실장에 노영민 주중대사가 임명된 점이 변수다. 장하성 정책실장 등 경제라인 대부분이 바뀐 상황에서 1기 인사들 가운데 유임된 이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최 위원장 정도뿐이다. 최 위원장이 교체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윤 원장과 긴장관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최 위원장이 교체된다면 윤 원장의 개혁 작업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최 위원장과 홍 부총리는 모두 강원도 출신으로 평소에도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자인 김동연 부총리(행시 26기)는 최 위원장과 불화설이 퍼질 정도로 관계가 불편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