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산 의존도 가장 낮은 현대오일뱅크 지분 대량 매입…한국 추후 협상력 약화 우려
현대오일뱅크 충남대산공장의 고도화 분해시설 전경. 연합뉴스
당초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기업공개(IPO)를 진행하려 했으나 유가 하락으로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현대오일뱅크의 지난해 매출액은 21조 5036억 원으로 전년 대비 31.2% 급증했지만, 영업이익은 6610억 원으로 무려 41.9% 급감했다. 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 가격 급락 여파다. 당기순이익은 4038억 원으로 전년 대비 56.9%가 줄면서 ‘반토막’이 났다.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지주의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한 상황에서 심각한 경영차질일 수 있다. 그런데 아람코가 선뜻 후한 액수를 쳐주겠다며 현대오일뱅크 지분 인수에 나섰다.
아람코가 치르겠다고 한 현대오일뱅크 주식 19.9%의 값은 총 1조 8000억 원으로 1주당 3만 6000원선이다. 에쓰오일의 현재 시가총액 및 아람코가 평가한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가치를 올해 말 자본총계 규모에 대한 증권업계 추정치로 나눠 계산해봤다. 주가순자산비율(PBR)에서 에쓰오일(1.4~1.5배)보다 현대오일뱅크(약 1.7~1.9배)에 더 높다. 아람코는 에쓰오일의 최대주주(지분율 63%)다.
현재 국내 원유도입선은 크게 중동과 미주대륙이다. 2018년 기준으로 3분기까지 도입된 10억 2330만 배럴 가운데 74.21%인 7억 5935만 배럴이 중동산이다. 중동산에는 사우디 외에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이란, 이라크 등이 포함된다. 이란을 제외하면 사실상 사우디의 영향력이 큰 곳들이다. 아람코가 최대주주인 에쓰오일은 사실상 원유 수입 물량의 100%를 아람코에서 들여온다. 문제는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산 원유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 산유국들은 판매가격조정계수(OSP)를 통해 원유 가격을 조절한다. 2017년까지만 해도 미국산 세일가스와 점유율 경쟁을 위해 동아시역 지역 OSP를 낮춰왔다. 그런데 2017년 말부터 OSP가 가파르게 인상된다. 2018년 감산이 시작되면서 사우디뿐 아니라 UAE 등도 동참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OSP 인상은 정제마진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업계 전체적으로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현대오일뱅크의 중동산 의존율은 OSP 인하에 따라 2015년 80.3%에서 2016년 85.4%로 높아졌다. 하지만 OSP 인상이 시작된 2017년에는 72.2%로 낮아졌고, 2018년 3분기 말에는 47.17%로 떨어졌다. 이는 원유 도입 단가에서 비교 우위로 이어졌다. 연도별 배럴당 도입 단가를 보면 2016년 에쓰오일이 41.56달러, 현대오일뱅크가 38.13달러다. 8%가량 차이가 난다. OSP 하락이 이어진 2017년에는 각각 53.98달러와 50.69달러로 격차가 6%로 좁혀진다. 하지만 OSP 상승이 본격화된 2018년(3분기 말)에는 72.49달러와 67.88달러로 차이가 다시 벌어진다.
실제 대신증권 등 증권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의 지난해 감가상각전 영업이익(EBITDA) 마진율은 5.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한편, 에쓰오일의 경우 이보다 낮은 3.8~4.1% 수준으로 예측됐다. 이 때문에 미국계 쉐브론이 대주주로 있는 GS칼텍스는 최근 원유 도입 다변화에 나섰다. 2017년 88%였던 중동산 비중은 2018년 73%로 낮아져 업계 평균을 밑돌기 시작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업계 최고의 고도화율 외에도 다변화된 원유도입선 덕분에 정제시설의 원유수용률이 유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마다 생산되는 원유 특성이 다른 만큼 설비와의 ‘궁합’이 중요한데, 현대오일뱅크 설비들은 여러 종류의 원유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아지면 향후 추가 설비투자 과정에서도 이 같은 유연성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아람코가 향후 현대오일뱅크 상장이 이뤄지면 보유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회수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세계 최대 기업 아람코에 1000억~2000억 원 정도의 차익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동아시아 원유 수요의 핵심인 한국시장을 장악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람코에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매각한 현대중공업지주는 ‘발등의 불’을 끄게 됐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주체제 개편 과정에서 10조 7867억 원(2017년 말)이던 부채가 지난해 3분기 말 12조 1728억 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단기금융부채가 2조 9393억 원에서 4조 938억 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현대중공업지주가 평가한 현대오일뱅크의 장부금액은 약 2조 9500억 원(지분율 91.1%) 수준이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약 1조 1500억 원 규모의 매각 차익이 예상된다. 불어난 차입금을 갚는 것은 물론 배당 확대 재원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