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친박계 ‘우리 홀대하면 TK 신당’ 경고…비박계 제3지대로 떠날까 오세훈 중심으로 뭉칠까
2월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신임 대표로 선출됐다. 이종현 기자
# 시험대 오른 리더십, 대권 가도 갈림길
이변은 없었다. 경선 내내 ‘대세론’을 형성했던 황 대표는 오세훈 김진태 후보를 따돌리고 승리했다. 핵심당원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영남권,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일부 보수층, 박근혜 전 대통령을 따랐던 친박 진영이 황 대표의 주요 지지 세력으로 꼽힌다. 결과 발표 후 만난 황 대표 측 관계자는 “승리를 낙관하긴 했지만 처음 해보는 TV 토론을 조금 걱정했었다. 여기서 나름대로 선방해 과반 이상의 표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 대표 측 분위기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예상보다 낮은 득표율 때문이다. 황 대표는 전체 득표의 50%(선거인단+여론조사)를 얻었다. 오세훈(31.1%) 김진태(18.9%) 후보가 뒤를 이었다. 황 대표는 여론조사에선 오 후보에게 13%p가량 졌다. 선거인단 투표에서 큰 표 차로 이기며 당선되긴 했지만 당심과 민심이 괴리된 것 아니냐는 지적은 뼈아플 수밖에 없다. 당초 황 대표 측은 60% 이상 득표를 기대했었다. 홍준표 전 대표는 2017년 전대 때 65.7%를 얻은 바 있다.
황 대표 딜레마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황 대표는 통합, 미래, 외연확장을 강조하지만 당을 둘러싼 안팎 여건은 녹록하지 않다. ‘도로 박근혜’ 그늘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황 대표조차 경선 기간 탄핵의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고, 태블릿PC 조작설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다. 민심과는 동떨어진 행보였지만 전대에선 통했다. 황 대표 당선으로 한국당 내 강경한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한국당 내에선 태극기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대한애국당과의 합당을 주장하는 요구가 거세다. 앞서의 황 대표 측 관계자는 “황 대표는 바른미래당과의 합당으로 보수를 재건하고자 한다. 하지만 핵심 당원들은 배신자(박근혜 탄핵에 찬성)와는 절대 함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대한애국당과 손을 잡으라는 청원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5·18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김진태 김순례 의원의 징계건도 골칫거리다. 더군다나 김순례 의원은 선출직인 최고위원에 당선돼 징계를 밀어붙일 경우 지지층 반발이 예상된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상황이 황 대표에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보수 진영 차기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황 대표에게 ‘박근혜 그늘’은 태생적 한계다. 또 정치경력이 전무하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대권 도전은 쉽지 않다. 황 대표로선 본인에게 달린 의문부호를 없애는 게 최우선 관건이다. 그 승부처는 내년 총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황 대표가 정치력을 입증한다면 대권 가도엔 탄력이 붙게 된다.
# 친박의 부활? ‘TK 신당’은 히든카드
황 대표 승리 원동력은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원 사격이다. 황 대표를 정치권으로 영입하려 했던 의원들 역시 대부분 친박계다. 이번 전대를 친박과 비박의 대결로 단순화할 순 없다는 반론도 있긴 하다. 하지만 친박 진영이 일사불란하게 황 대표를 밀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직과 선거 경험이 없었던 황 대표는 이를 바탕으로 경선 초반부터 대세론을 주도할 수 있었다.
친박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폐족 위기에 놓였다. 홍준표 전 대표 시절엔 청산 대상 영순위였다. 하지만 지난해 지방선거 대패 이후 비박계가 주춤한 사이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원내대표 선거에선 나경원 의원을, 전당대회에선 황교안 전 대표를 당선시키며 사실상 당 주류로 부활했다. 연이은 당내 선거 승리로 자신감이 충만한 모습이다. 이들은 모든 정치 알람을 내년 총선 공천에 맞춘 상태다.
황 대표가 신임 사무총장으로 한선교 의원을 발탁한 것을 두고도 친박을 의식한 인사라는 말이 나온다. 사무총장은 총선 공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다. 자유한국당 친박 의원은 “솔직히 한 의원이 원박(원조 친박)이긴 하지만 한동안 친박과 거리를 뒀었다. 황 대표가 그를 택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면서 “친박 의원 중 계파색이 가장 옅은 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해 당 내 논란을 줄이려 했던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친박 중에서 사무총장을 골랐다는 점이다. 한 의원 역시 친박 몫으로 사무총장이 됐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당내 친박 위상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 대표와 친박 간 전략적 제휴가 계속될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선도 적지 않다. 대권을 노리는 황 대표 스스로가 이러한 관계를 뛰어넘으려 할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친박 진영에서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인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황 대표가 자기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당 대표로서 어느 정도 입지가 안정되면 우리 쪽과 일정 부분 정리를 시도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거기에 대비한 여러 플랜B를 갖고 있다. 무조건 황 대표만 믿고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친박계에선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TK 신당설’도 그중 하나다. 한 친박 중진을 중심으로 대구·경북 기반의 신당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친박계에선 “언제든 신당을 띄울 채비가 갖춰져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황 대표를 향한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인 셈이다. 신당 작업을 주도하는 중진 의원실 최측근은 “당에서 거의 쫓겨날 뻔했던 시기부터 준비해 왔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지지 않았나. (신당은) 마지막 히든카드라고 보면 된다. 황 대표는 TK를 잃고 싶지 않다면 우리 쪽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유승민 복당 힘들 듯, 3지대 정계개편 가능성은
황 대표 당선으로 보수진영 셈법도 복잡해졌다. 그동안 정치권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 자유한국당 주도의 보수 재편이 유력하게 점쳐졌었다. 그 중심엔 유승민 의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유 의원 입당을 통해 둘로 쪼개졌던 보수 야당을 하나로 합친 뒤 총선 승리와 정권을 탈환하자는 게 보수진영 ‘큰 그림’이었다. 유 의원 역시 친정인 한국당 복당 결심을 거의 굳혔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유 의원이 ‘황교안 체제’의 한국당으로 돌아가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 명분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복당 조건으로 친박 청산을 내걸었었다. 하지만 친박 진영은 원내대표·당 대표 선거에서 잇달아 이기며 세를 불렸다. 황 대표 당선은 친박 부활의 화룡점정으로 평가받는다. 유 의원에 대한 친박계 거부감도 복당의 걸림돌이다. 바른미래당의 한 의원은 “유 의원 결단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복당은)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면서 “자유한국당과의 합당 논의도 ‘올스톱’ 상태”라고 전했다.
대신 원심력은 강해졌다. 제3지대 빅텐트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 평론가들은 “한국당 우경화에 실망한 중도·보수층을 대변할 새로운 정당이 탄생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중도·보수로의 외연확대를 주장했던 오세훈 후보가 전당대회 여론조사 부문에서 50% 넘는 득표를 기록한 것에 주목한다. 한 평론가는 “한국당은 과거로 회귀했다. 침몰하는 배에선 탈출하는 게 상책”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면서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보수 정당을 위한 이합집산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점쳤다.
이 경우 비주류로 전락한 비박계 의원들이 얼마나 합류할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한 비박 의원은 “몇몇 수도권 의원들이 당을 떠나는 것을 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이들은 바른미래당을 포함한 새로운 보수 신당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박계가 집단 이탈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단 황 대표의 당 운영을 지켜보자는 목소리도 뒤를 잇는다. 앞서의 비박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전당대회에서 비록 졌지만 우리가 밀었던 오 후보는 선전했다. 민심에선 이겼다. 처음 오 후보를 데리고 올 때 전대에서 지더라도 당 차기 주자로 확실하게 키워주겠다는 일종의 ‘밀약’이 오갔던 것으로 안다. 확실한 차기 주자가 있으면 그 계파엔 힘이 실리기 마련이다. 오 후보를 중심으로 비박계가 단일대오를 형성하면 반격을 노려볼 수 있다. 총선 공천, 그리고 차기 대선에서 (친박과) 한 번 붙어볼 만하다는 얘기다. 밖에 나가면 고생한다는 말도 있듯이 굳이 당을 탈당해 신당에 참여하는 의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