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우 양정철 등 핵심 친문 복귀 초읽기…친문 코드 강화 딜레마 극복이 관건
이해찬 발 시프트가 가동됐다. 핵심은 ‘친문 코드 강화’다. 문재인 대통령 복심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구원 등판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사실상 친노(친노무현)계 좌장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작품이다. 이 대표는 3월 7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기획비서관, 권혁기 전 청와대 춘추관장 등과 만찬 회동을 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1기 참모진 핵심 인사였다. 여의도의 대표적인 책사로 꼽히는 이 대표는 이들에게 총선 역할론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 체제로 21대 총선을 치르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박은숙 기자
이해찬 발 시프트의 속도가 빨라진 것은 진퇴양난에 빠진 문재인 정부 현주소와 무관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제자리걸음이다. 당 지지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여권 호재인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판은 깨졌다. 이른바 ‘평화 효과’는 일시에 수그러들었다.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 공포에 대한 비판 여론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체제 출범 후 기점으로 본격적인 보수대연합 작업에 착수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숨죽이던 ‘샤이 보수’(보수 성향의 유권자가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거나 응답 시에도 성향을 숨기는 현상)는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21대 총선에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순간, 문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은 급속히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이 정국 주도권을 확보할 모멘텀은 어디에도 없다. 남은 카드는 ‘친정 체제 구축’뿐이다. 당 주류 전진 배치, 무너지지 않은 견고한 산성을 쌓겠다는 의도다. 이른바 ‘문재인 위기론’이 이 대표의 총선 전략을 변화시켰다는 얘기다. 이는 산토끼(비지지층)보다는 집토끼(지지층)를 먼저 잡는 전략이다. 친문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여권 지지층인 진보층에서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불문율인 여의도의 정치 문법”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가 문재인 정부 위기론이 심화하자, 협력적 스탠스를 취하면서 당·청 관계 관리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해찬 발 시프트 구상은 올해 초부터 진행됐다. 이 대표는 신년 초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 적임자를 청와대에 추천해 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주요직 인선이 청와대와 사전교감 하에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청 갈등의 변곡점으로 지목받은 당 수뇌부는 ‘백원우 카드’로 가닥을 잡았다. 이 대표는 즉각 이를 제안했다. 백 전 비서관도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백 전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 1기 청와대에서 인사 검증을 맡았다. ‘백원우 투입’은 인사 명분도 쥐면서 친정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일거양득 카드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이해찬(대표)·백원우(인재영입위원장)’ 체제가 당내 총선 공천과 외부 인사 영입 작업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20대 총선 당시에는 ‘김종인(비상대책위원회 대표)·김상곤(인재영입위원장)’ 체제로 공천 작업을 마무리했다. 민주당은 당시 123석을 거머쥐면서 한국당(122석)을 제치고 제1당에 올랐다.
이해찬 발 시프트는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이 대표는 2월 15일 서울 모처에서 ‘양비(양 비서관 줄임말)’와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양 전 비서관의 민주연구원장 내정설이 급물살을 탔다. 문 대통령 의중이 담겼다는 말도 들린다. 문 대통령은 19대 대선 직후인 2017년 5월 15일 선거운동을 같이한 동지들과 만찬에서 양 전 비서관이 백의종군 의사를 밝히자, 눈물로 이를 수용했다. 양 전 비서관은 다음 날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그분(문 대통령)과의 눈물 나는 지난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 퇴장한다”고 말한 뒤 한동안 ‘유배 생활’을 자처했다. 양 전 비서관은 전해철 민주당 의원,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3철로 불린다.
양비의 구원투수 역할론은 당 외곽 조직을 두텁게 하는 작업이다. 민주연구원장이 당·청에 부담을 주지 않는 조직이라는 점도 양비의 구원 등판을 부채질했다. 여기에는 친문 브레인을 당 외곽에 세워 임기 3년 차에 들어선 문 대통령의 레임덕을 ‘입구’부터 봉쇄하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다만 이 대표 측은 양 전 비서관과의 회동설을 부인하고 있다. 양 전 비서관도 민주연구원장직 수락을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기획과 정책 능력이 뛰어난 양비가 조기 등판한다면, 당·청 간 가교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의 신주류인 임 전 실장 거취도 뜨거운 감자다. 임 전 실장은 당 산하 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주요직을 맡는 ‘플랜 A’와 속도 조절하는 ‘플랜 B’ 중 하나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임 전 실장은 이 대표에게 당분간 당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임 전 실장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특임 외교 특별보좌관이라는 점도 속도 조절에 힘을 싣는다. 다만 임 전 실장은 만찬회동에서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당이 요청하면 언제든지 당을 위해 헌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발 시프트에 들어있는 인재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 대표의 권유를 수락, 조만간 입당 절차를 밟는다. 임종석 전 실장과 백원우 전 비서관, 권혁기 전 춘추관장 등은 지난 2월 민주당에 복당했다. 행정안전부·해양수산부·국토교통부 장관을 각각 맡고 있는 김부겸·김영춘·김현미 의원 등 3김도 여의도 복귀가 임박했다. 차기 총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이들도 핵심 요직에 전진 배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김영춘·김현미 의원은 오는 5월로 예정된 당 원내대표 경선 후보자에 이름을 올렸다. 민주연구원장도 같은 달 교체된다. 오는 5월이 민주당 내부 권력구도의 분수령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친문 코드 강화를 둘러싼 딜레마다. 친문계 브레인을 전진 배치할 경우 내부 분열과 외부 공격이 극대화될 가능성이 높다. ‘친문 패권주의’가 주요 타깃이다. 방어막의 입구부터 뚫리면 사실상 출구는 없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현 여권이 2007년 대선과 2012년 총·대선에서 패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특정 계파의 당 장악이 외연 확장을 막은 것이다.
문재인식 회전문 인사도 마찬가지다. 당장 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차기 주중대사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내정하자, “돌려막기식 코드 인사”라며 “경제 파탄이나 책임져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후 첫 4강 대사 인선도 ‘노영민(주중)·조윤제(주미)·이수훈(주일)·우윤근(주러)’ 등 보은 인사로 채웠다.
20대 총선 불출마(노영민·우윤근) 인사와 대선 캠프 및 주요 조직 인사(조윤제 전 정책공간 국민성장 소장·이수훈 전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외교안보분과)로 외교라인을 정비한 것이다. 김홍균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장호진 전 총리 외교보좌관, 조현동 전 외교부 기획조정실 등은 정부 출범을 줄줄이 좌천하면서 미국 조야에선 “그 많던 대미 라인은 어디에 갔느냐”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측근 인사 배치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대표적 사례다.
분화하는 친노·친문계도 변수다. 핵심 축은 이 대표와 임 전 실장이다. 이들은 당분간 협력적 관계가 불가피하지만, 과거 적잖은 갈등을 빚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패배 후 임 전 실장 등 운동권 그룹은 이 대표를 비롯해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정대철 전 고문 등의 용퇴를 촉구했다. 2012년 총선 직전 혁신과통합을 이끌었던 이 대표는 민주통합당 공천 기준으로 확정 판결과 관계없이 ‘불법 비리 전력 후보’를 배제하라고 압박했다.
임 전 실장은 당시 불법정치자금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월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혁신과통합이 임 전 실장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임 전 실장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대표의 리더십도 변수로 꼽힌다. 이해찬 발 시프트 가동 이후 당 내부에선 “이 대표가 친문계 중 핵심 인사들만 만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총선 국면에서 이해찬계와 친문계가 충돌한다면, 당 내부 원심력은 극에 달한다. 이 경우 진보대연합 구상도 흔들린다. 오는 4·3 경남 창원·성산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3자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차기 총선에서 기조를 유지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민주당과 중앙당 차원의 단일화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