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론은 탈당파 명분 쌓기” vs “손학규 얼굴로는 총선 못 치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사진 박은숙 기자
국회의원 단 2명을 선출한 초미니 보궐선거 결과가 바른미래당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4·3 보궐선거는 국회의원 선거구 2곳(경남 창원성산, 통영·고성)과 기초의원 선거구 3곳(전북 전주시 라, 경북 문경시 나·라) 등 모두 5곳에서 치러졌다.
바른미래당은 5곳 중 유일하게 창원성산 국회의원 선거에 후보를 냈다. 손학규 대표가 선거구에 숙소까지 마련하고 전력투구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바른미래당 이재환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 소속으로 출마해 8.3%를 득표했으나 이번 선거에선 3.57%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이 후보는 원내 의석 1석에 불과한 민중당 후보에게도 밀려 4위를 기록했다.
바른미래당 내부에선 손학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행동하는 바른미래당 원외위원장 모임’은 기자회견을 열어 손 대표 사퇴를 요구했고, 일부 의원들도 공개적으로 손 대표 사퇴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손 대표는 사퇴요구를 일축했지만 내부갈등은 더 커질 전망이다. 한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충격이 상당하다.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데 손 대표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할 그룹이 더 있다. 릴레이 사퇴요구가 진행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참담한 성적표를 받은 것은 바른미래당이다. 자유한국당은 5곳 중 3곳을 얻었고, 정의당은 창원성산에서 승리했다. 민주평화당은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을 꺾고 승리해 축제분위기라고 하더라”면서 “민주당도 한 석도 못 건진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쪽은 이해찬 대표가 처음부터 보궐 선거 의미를 축소해놔서 별다른 내홍이 없다. 우리 당은 대표가 전력투구한 게 오히려 독이 됐다”고 했다.
한 바른미래당 원외위원장은 “이번 선거결과를 본 후 내년 총선에 대한 당내 공포감이 커졌다. 이재환 후보 득표율이 당 지지율보다도 낮게 나왔다. 사표가 될 거 같으니 유권자들이 전략적으로 판단해 바른미래당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은 거다. 내년 총선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할 거다. 지난 지방선거 때 우리 당 후보들이 10%도 득표 못해 패가망신한 사람이 많았다. 이번 선거결과를 보고 누가 내년 총선 때 우리 당 간판으로 출마하려 하겠느냐”고 했다.
후보자가 득표율 15% 이상을 얻을 경우 선거비용의 100%를 보전 받을 수 있고, 득표율 10% 이상을 얻을 경우 선거비용의 50%를 보전 받을 수 있다. 10% 미만을 득표한 후보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이 원외위원장은 “이번 선거로 당내에서 내년 총선 연대론이 힘을 얻고 있다. 당내 인사들이 생각하는 연대 내지 통합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이대로 내년 총선을 치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는 대부분 동의한다”면서 “손 대표를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막연하게 우리 당이 더 노력하고 혁신하면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이 선택해줄 거라며 연대를 거부한다. 도대체 어떻게 혁신하자는 건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고 비판했다.
손 대표는 창원성산 선거에서 한국당과 연대해야 한다는 당내 요구를 일축하고 완주했다. 그 결과 바른미래당 후보가 보수표를 잠식해 친여권 성향인 정의당이 500여 표 차이로 승리하는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손 대표는 선거가 끝난 후에도 한국당과 손잡아야 했다는 비판에 대해 “문재인 정권 심판을 위해 한국당과 손잡았어야 한다는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탄핵 이후 반성 없이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세력과 어떻게 손을 잡느냐”면서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손 대표 측은 보궐선거 책임론에 대해 한국당과 연대하기 위한 당내 보수 성향 인사들의 명분 쌓기로 보고 있다.
손 대표 측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손 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미 계획된 손 대표 흔들기”라며 “손 대표가 물러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바른미래당이 결국 분열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찬열 의원은 바른미래당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이제 깨끗하게 갈라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바른미래당 원외위원장은 “이번 선거는 울고(탈당하고) 싶은데 뺨 때려준 선거다. 사실 이 정도로 당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면 민주당 대표도 사퇴해야 한다. 민주당도 한 석도 못 건졌다. 통영·고성이 보수 텃밭이라고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 치러진 선거에선 통영시장, 고성군수를 민주당이 가져갔다. 호남에서 민주평화당에 패한 것도 심각한 일”이라면서 “이런 상황임에도 민주당은 조용한데 우리 당만 난리다. 손 대표가 한국당과 연대를 강하게 반대하니까 끌어내리려는 것 아닌지 의심 된다. 손 대표가 사퇴한 후 비상대책위 체제가 들어선들 내년 총선에서 우리 당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미 바른정당계를 포함한 당내 보수 성향 인사들은 공공연하게 한국당과의 후보단일화를 언급하고 있다. 일부 의원은 한국당 복당설까지 돈다.
반대로 국민의당계 의원들을 중심으로는 민주평화당과의 연대설이 나온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바른미래당 측과 접촉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바른미래당 창당을 계기로 찢어졌던 국민의당계가 다시 뭉쳐 ‘도로 국민의당’을 만들자는 계획이다.
바른정당과 합당 후 보수 색채가 강해지자 호남에 지역구를 둔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불만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평화당 후보가 이번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승리하면서 도로 국민의당 출범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는 평가다.
앞서의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손 대표가 사퇴를 거부하면 강제로 사퇴시킬 방법은 없지만 식물 대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비대위 체제도 출범 못하고 당 대표도 힘을 못 쓰면 누가 내홍을 수습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