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유)승민이 잘라야 되냐” 고뇌 토로…문고리 이재만 “최순실 ‘일베’서 본 얘기 떠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 청와대가 20대 총선에 개입한 진짜 이유
박근혜 청와대는 지난 20대 총선에 개입하기 위해 불법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비용은 국정원이 대납했다. 관련자들의 진술 조서 등에 따르면 청와대도 이 같은 행위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20대 총선 이후로도 약 1년 8개월이나 박근혜 정부 후반기가 남아 있었다. 청와대는 후반기 국정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와대는 당시 새누리당(현 한국당)이 이미 과반수였는데 국정을 못 끌고 갔던 이유가 당내에 대통령 세력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은 “야당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국회선진화법상 신속처리 요건인) 180석도 가능하다고 봤다. 총선은 어차피 이기니까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공천문제에 몰입하게 된 거다. ‘선거 져도 돼. 우리가 새누리당만 장악하면 돼’가 아니고 ‘선거는 이기니까 친박 공천에 몰입하는 구조였다’고 회고했다.
실제로는 지저분한 공천 싸움 끝에 새누리당은 122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고 원내 제1당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상향식 공천방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치열한 계파 싸움의 단초가 됐다. 상향식 공천방식은 현역 의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청와대는 현역 의원들의 지지가 두터운 김 대표가 당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경선 방식을 내세운다고 생각했다.
청와대는 현기환 정무수석을 통해 공천에 적극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현 수석이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과 광화문 프라자호텔에서 만난 것이 언론에 노출될 뻔했다. 현 수석은 기자들을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갔고 이후 청와대는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현 수석은 이 사실을 주변에 자랑하듯 말하며 “부인할 때는 칼같이 부인해야 돼. 여지를 남겨두면 안 돼”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후 공천 관련 자료를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차를 타고 대기하고 있던 이한구 위원장에게 창문 안으로 넣어주는 방식으로 전달했다. 007작전처럼 스치듯 지나가며 자료를 넘겨주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자신이 배신자라고 지목한 유승민 의원 공천배제 여부였다.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공천을 주도한 당내 인사는 이한구 위원장과 최경환, 윤상현 의원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최경환 의원은 유승민 의원을 잘라내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주변 증언에 따르면 최 의원은 “진짜 승민이 잘라야 되는 거냐”며 고뇌했다.
청와대 안에서도 유승민 의원은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청와대가 무리하게 유 의원을 공천배제하려 하면서 대구 지역 여론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인사들은 “서로 대통령에게 건의 좀 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못했다”고 증언했다.
청와대가 유승민 대항마로 내세운 이재만 후보 지지율은 좀처럼 뜨지 않았다. 그럼에도 친박 진영은 이재만 후보를 단수 공천했고 이른바 김무성 대표 옥새파동의 단초가 됐다. 이는 보수심장이라는 대구에서 진보성향 김부겸, 홍의락 의원이 당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 지역기반인 대구 선거에 큰 관심을 보였다. 비박 인사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자 대항마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해 포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 전 지사는 현재 박 전 대통령 석방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 문고리 3인방이 탄핵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이유
박 전 대통령 탄핵 재판에서 문고리 3인방은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때문에 항간에선 문고리 3인방이 박 전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에 대해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나름의 변명을 했다.
이 전 비서관은 “청운동으로 이사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이사하기 전 거주지로 출석요구서를 보내서 전달받지 못했다. 전화기도 검찰에 압수당해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문고리 3인방 증인 출석과 관련한 보도를 보지 못했느냐는 질문에는 “기사를 보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 이 전 비서관은 증인출석 요구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서도 출석할 의사는 있었냐는 질문에 “출석 요구서가 전달되면 판단을 해보자는 심정이었다”며 확답을 피했다.
# 안봉근 면회 거절한 박근혜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 면회를 가려고 했으나 거절당해 가지 못했다.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안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하려던 메모가 발견됐다. 메모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옥중인사 / 우리가 죄인 2. 우리 안부에 대한 인사 / 우리 안부에 죄송 3. 20~30%에 대한 지지자 / 제약된 시중 분위기 4. 앞으로 대응 1. 동지애, 안타까움 2. 변호인 소송 / 뇌물죄 대응 3. 이후 재기의 계기 정면돌파 / 직접소통 5. 국민들의 재평가 때까지 옥체보존 / 분골쇄신 |
메모에 대해 안 전 비서관은 구치소 면회 시에는 시간 제약이 있어 할 말을 미리 생각해 가야 하는 관계로 혼자 적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모 내용을 보면 안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상황에서도 국민들이 재평가할 때까지 버티면 이후 재기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 사업가 지인에게 체크카드 받아 쓴 안봉근
국정농단 수사과정에서 안봉근 전 비서관이 사업가 지인에게 현금이 들어있는 체크카드를 받아 쓴 사실도 밝혀졌다. 다만 워낙 소액이라 검찰이 따로 기소하지는 않았다.
체크카드에는 150만 원이 들어있었는데 안 전 비서관은 40만 원가량만 사용했다. 안 전 비서관이 카드를 받은 시기는 2017년 7월경으로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이후였다.
안 전 비서관은 “사업가 지인이 네가 의기소침해 있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좋지 않다. 기운 내서 밥도 사먹고 하라”며 카드를 줬다고 증언했다. 비록 소액이지만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지적이다.
# 최순실-문고리 3인방 회의 실체
탄핵 국면에서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에서 정기적으로 회의를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문고리 3인방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다음은 이재만 전 비서관의 말이다.
“저희가 최순실과 함께 회의를 한 사실은 없다. 저희가 올라갔을 때 마침 최순실이 있어서 함께 과일을 먹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렇지만 대통령께 드리는 업무보고는 최순실이 없는 곳에서 했다. 대통령께 보고를 드리기 위해 대기하는 곳에서 최순실과 과일을 함께 먹었는데 최순실은 야당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얘기나 자기가 일베 사이트에서 본 얘기를 저희에게 일방적으로 하고 관저 주변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안봉근 전 비서관도 최순실과 국정에 대한 회의를 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안 전 비서관은 “저희가 최순실과 어떤 주제를 가지고 회의를 한 적은 없다. 다만 대통령과 회의를 하고 있으면 최순실이 불쑥 들어오고, 대통령이 나가면 최순실이 저희와 함께 차 한잔 하면서 그냥 이런저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 적은 있다. 최순실이 이것저것을 알고 싶어했다. 예를 들어 여야가 싸우는데 왜 그래요?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등등의 질문을 불쑥불쑥 하곤 했다”고 진술했다.
# 이원종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고백
이원종 전 실장은 검찰수사에서 “완전히 허수아비 실장이라는 별명에 이의를 걸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실장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사람으로 분류된다. 이 전 실장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됐을 때 청와대가 차기주자로 반 전 총장을 내세우기 위한 인사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 전 실장은 친박이 아닌 외부인사라는 한계 때문에 대통령 비서실장임에도 청와대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 이 전 실장은 “당시 청와대 내 비서진들의 기강해이가 심각했고, 비서실장인 본인 혼자서는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비서진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고 고백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