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시즌 초반 상위권 질주…팀 전력 좌우하는 포수들의 고충은?
지난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현역 최고 포수 반열에 오른 양의지. 박정훈 기자
[일요신문] “이맛현(이 맛에 현질한다)” 요즘 야구계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신조어다. ‘현질’은 무료로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에서 현금으로 유료 아이템이나 게임 화폐를 구매한다는 뜻의 온라인 속어다.
이 신조어를 야구계로 끌어들인 선수는 바로 NC 포수 양의지(32)다. 게임회사 NC소프트를 모기업으로 둔 NC는 지난해 12월 현역 최고 포수인 양의지를 영입하면서 역대 포수 프리에이전트(FA) 최고액인 4년 125억 원을 안겼다. NC팬들은 구단의 이 ‘현질’이 창단 후 최고의 투자였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돈을 쓴 그 이상으로 결과물을 얻어내고 있다는 뜻에서다.
# 최고 포수 영입은 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양의지는 개막 직후부터 공수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체력 소모가 큰 주전 포수로 나서는 한편, 연일 승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장타를 때려내면서 4번 타자 역할까지 해낸다. 무엇보다 양의지가 안방에 앉은 뒤 NC 젊은 투수들이 부쩍 안정감을 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련하게 경기를 운영하고 투수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는 포수의 리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NC는 지난해 창단 첫 최하위 수모를 당하면서 5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양의지가 가세한 올해는 단숨에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공인구 반발력이 이전보다 낮아지면서 대부분 구단의 팀 타율이 지난해보다 떨어졌지만, NC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반대로 지난해 최하위에 그쳤던 팀 평균자책점은 중위권까지 올라왔다. 메이저리그 부럽지 않은 새 야구장과 새 주전 포수 영입 효과에 대한 주위의 기대가 크긴 했지만, 이 정도로 눈부시게 도약하리라고는 구단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올해 NC 지휘봉을 잡은 이동욱 감독은 양의지 영입 효과를 놓고 “전체적으로 정말 많은 부분이 좋아졌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투타 짜임새가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달라진 것은 외국인 선수들과 양의지밖에 없는데 훨씬 팀이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좋은 선수와 같이 있다는 게 힘으로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 NC 벤치는 승부처에서 포수에게 끊임없이 사인을 내야 했다. 양의지가 이적한 뒤로는 그런 상황이 거의 없어졌다. 고의4구와 같은 특수 상황 외에는 양의지를 믿고 맡긴다. 포수 한 명이 알아서 경기를 진행하니 투수들의 피칭 템포도 빨라지고 경기 시간도 단축된다.
양의지는 올해 NC의 고공행진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NC 다이노스
오히려 양의지는 최근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나 때문에 확 좋아진 게 아니라 NC가 원래 저력있는 팀이었다. 지난해를 빼면 원래 포스트시즌에 계속 출전하던 강팀 아닌가”라며 “젊은 투수들이 스스로 잘 하고 있는데 괜히 나만 주목을 받는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NC가 번번이 맥을 못췄던 ‘숙적’ 두산과의 시즌 첫 3연전에서 양의지의 존재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게 사실이다. 늘 두산과 만날 때마다 양의지와의 승부에 골머리를 앓았던 NC 투수와 타자들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편한 마음으로 두산전에 임했다. 반면 두산은 지난해까지 팀 사인과 전술을 꿰뚫고 있던 양의지와 처음으로 적으로 맞서게 되면서 큰 부담감을 안고 3연전을 치렀다. 결과는 NC의 3연전 스윕. 특급 포수의 보강과 이적이 팀 전력과 선수들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영민한 포수 양의지는 노련한 투수가 많은 두산과 젊은 투수 위주로 구성된 NC에서 다른 방식으로 리드를 하고 있다. 그는 “NC에서는 두산 때와 달리 생각을 줄이고 과감하게 사인을 낸다”고 했다. “두산 투수들은 개인의 능력이 좋아 상대 타자 약점을 공략해 이기려는 경향이 강했다”며 “하지만 NC의 젊은 투수들은 마운드에서 자신감과 경험을 쌓는데 우선적으로 집중한다. 잘 던지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몸도 마음도 고단한 포수들, 할 일이 많다
양의지의 활약에서 드러나듯, 좋은 포수란 그만큼 팀에 중요한 존재다. 그라운드의 안방과도 같은 홈에 앉아 어머니처럼 선수단을 아우른다는 뜻에서 ‘안방마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홉 명의 수비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쭈그리고 앉아야 하는 포지션. 게다가 그라운드의 꼭짓점에서 선수들 전체를 바라보는 포지션도 포수밖에 없다. 반대로 나머지 여덟 명의 선수들은 모두 홈플레이트 뒤에 버티고 있는 포수를 지켜보고 있다.
몸부터 고되다. 포수는 타자로 타석에 설 때를 제외하면, 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투수의 공을 불과 18.44m 떨어진 곳에 앉아 눈앞에서 받아내야 한다. 당연히 온 몸을 보호할 장비가 필요하다. 종류도 여러 가지다. 가장 기본적인 마스크부터 시작해 가슴 보호대, 발가락 보호대, 다리 보호대, 무릎 보호대, 목 보호대까지 세분화 돼 있다. 헬멧은 당연히 착용한다.
마스크에는 교차 막대(포수의 시야를 확보하고 눈과 얼굴을 보호하는 역할)와 목 보호대가 부착돼 있다. 이 모든 장비의 무게는 무려 3㎏에 달한다. 경기 내내 3㎏을 몸에 매단 채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다 보면, 한여름에는 그 무거운 장비들 안으로 땀이 비 오듯이 흐르기 마련이다. 체중이 2~3㎏씩 무섭게 줄어들기 일쑤다.
이뿐만 아니다. 공이 뒤로 빠지기라도 하면 총알같이 튀어 올라 전력질주를 해야 하고, 타구가 포수 머리 위로 높이 뜨면 쫓아가 잡아내야 한다. 포수가 한 경기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횟수가 평균 130회에 이르고, 에너지 소모량은 42.195㎞를 완주한 마라톤 선수와 맞먹는다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것은 기본. 점수 한 점을 뽑겠다고 홈으로 죽자 사자 달려드는 상대팀 주자를 향해 두려움을 참고 굳건히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몸보다 머리가 더 아플 때도 많다. 경기 시작 전부터 다른 포지션에 비해 준비해야 할 게 많아서다. 투수들과 미팅을 해야 하고, 야수들과도 대화해야 한다. 선발 투수의 컨디션과 기분을 파악하는 한편, 상대 타자들의 특성까지 꿰뚫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바뀐 사인은 없는지 확인도 하고, 수비 시프트도 숙지한다.
경기가 시작된 후에는 진짜 치열한 머리싸움이 시작된다. 스스로 판단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마다 구종과 코스를 결정해야 하고, 흔들릴 때면 마운드에 올라가 다독여야 한다. 상대 타자와 주자의 움직임을 눈으로 끊임없이 살펴야 하는 것은 물론, 벤치와 끊임없이 사인도 주고받는다. 그 와중에 심판의 비위도 맞추고, 자신의 타석에도 들어서야 한다. 포수로 프로에 입단했다가 외야수로 전향한 한 선수는 “몸을 쓰는 건 자신 있는데, 머리 쓰는 게 자신 없어서 포기했다”고 농담했을 정도다.
# 포수 수비에는 어떤 가치가 있나
이렇게 할 일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포수는 공격보다 수비로 능력을 평가 받는다. 양의지처럼 공격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공격에서 큰 몫을 하지 못했다 해도 고과를 잘 받을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포수는 연봉 고과를 매길 때 수비 부분에서 가점과 감점의 항목이 가장 많아서다.
과거 A 구단 고과 항목에 따르면, 포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는 도루저지와 홈 태그아웃(이상 5점)을 성공했을 때 가장 많은 점수를 얻는다. 좋은 블로킹(3점)이 그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만약 한 경기에서 도루 저지와 홈 태그아웃을 성공시켰다면 홈런을 친 것에 버금가는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팀이 이긴 경기에서는 ‘포수의 좋은 리드’라는 항목에서 5점이 더 추가된다. 반대로 수비 실수 때문에 깎여야 하는 점수도 많다. 패스트볼(-2점)과 패스트볼 시 실점(-3점) 연결, 블로킹 미스 및 타격방해(-2점) 같은 실수는 그만큼 연봉 산정에 악영향을 미친다. “포수는 수비만 잘 하면 타율 2할 3~4푼만 쳐도 되는 포지션”이라는 평가가 틀리지 않다.
그 수비 능력이 포수 자신의 평점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투수의 고과평점과도 직결된다. 투수가 폭투(-2점)나 폭투로 인한 실점연결(-3점)로 감점을 받지 않으려면 포수의 블로킹 능력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부 감독들은 다리가 짧은 포수들을 선호하기도 했다. 한 야구인은 “최근 투수들은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많이 구사하고, 원바운드 공도 많이 던진다. 그런데 다리가 길면 블로킹이 불리해진다”며 “도루저지나 주자견제를 위해 일어설 때도 시간이 더 걸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포수가 진정으로 무형의 가치를 평가받는 덕목은 바로 투수와의 ‘소통’이다. 투수와 포수는 그라운드에서 부부나 다름없는 관계다. 둘 사이를 오가는 사인 하나와 공 하나에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둘이 찰떡 호흡을 자랑하는 순간 그라운드에는 평화가 찾아오지만 반대로 그들이 대립하는 순간 경기는 산으로 간다. 투수가 포수를, 혹은 포수가 투수를, 혹은 양 쪽이 서로를 확실하게 믿어야 한다.
한 팀에 좋은 투수들이 몰려 있으면 포수가 굳이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다. 전설적인 투수들이 여럿 몸담았던 ‘해태 왕조’의 대표 포수 장채근은 과거 “투수들이 원하는 사인을 웬만하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이유로 그는 투수들에게 무척 인기가 좋은 포수로 이름을 날렸다. 가끔은 장난 삼아 욕설을 연상시키는 세 번째 손가락으로 사인을 내기도 했는데, 그 의미는 ‘그냥 네 맘대로 던지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반대로 구위는 좋은데 평정심이 부족한 젊은 투수에게는 든든한 베테랑 포수의 존재가 큰 영향을 미친다. SK 김광현은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후 포수 박경완에게 달려가 얼싸안는 대신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자신을 노련하게 이끌어준 선배 포수에게 확실한 예우와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여전히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또 다른 야구인은 “투수 입장에서는 마운드에서 흔들렸을 때 잘 다독여줄 수 있는 포수의 소통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투수들은 마운드에서 무척 외롭다. 특히 젊은 투수들은 위기상황에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때 내가 믿는 포수의 진심 어린 한 마디가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했다. 포수 기근 현상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포수가 거의 없는 이유 역시 “투수와 포수의 소통 장벽을 언어가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38년 KBO 리그 역사 ‘전무’…왼손잡이 포수가 없는 이유 38년 역사를 자랑하는 KBO 리그에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던 존재가 있다. 바로 ‘왼손잡이 포수’다. 다른 모든 포지션에서는 왼손잡이가 각광을 받지만 포수만큼은 예외다. KBO 리그 현역 최고 포수라는 평가를 받는 양의지 역시 오른손잡이 포수다. 박정훈 기자 역사가 훨씬 긴 메이저리그에서도 왼손 포수는 약 30명 정도만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1000경기 이상 출장한 왼손 포수는 1884년부터 1900년까지 뛰었던 잭클레멘츠가 유일하다. 심지어 1902년 이후부터는 단 11경기에만 왼손 포수가 출전했다. 1958년 데일 롱(시카고 컵스)과 1980년 마이크 스콰이어스(시카고 화이트삭스)는 딱 2경기에서만 마스크를 쓴 뒤 포지션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9년 왼손잡이였던 베니 디스테파노(피츠버그)가 3경기에 포수로 나선 게 가장 최근 사례지만, 원래 포지션이 아니라 팀 사정상 대체 요원으로 나섰을 뿐이다. 대체 왜 왼손잡이 포수는 이렇게 보기 어려울까. 일단 송구 문제가 첫 손에 꼽힌다. 한 포수는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오른손 타자가 많기 때문에 왼손 포수는 송구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송구하는 방향에 타자가 서있으면, 포수의 송구 동작은 지연되기 마련. 오른손 포수들은 좌타자가 타석에 있을 때 불편하지만 왼손 포수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우타자들이 시야를 방해한다. 2루뿐 아니라 3루 송구도 오른손잡이에 비해 불편하다. 오른손 포수가 1루로 던질 때와 마찬가지로 몸을 한번 틀어서 송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1루수를 제외한 내야수들이 대부분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왼손잡이 포수만큼이나 왼손잡이 유격수, 2루수, 3루수도 보기 어렵다. 한 전직 감독은 “오른손 포수의 송구는 팔의 스윙 궤적 상 주자를 태그하기 좋은 방향(포수 시야의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가지만, 왼손 포수는 공의 궤적이 그 반대로 휘어서 수비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주자는 1루 쪽에서 2루로 달려오기 때문에, 포구와 동시에 태그 아웃시키는 논스톱 플레이는 거의 할 수 없는 셈이다. 실제로 포수들의 2루 송구는 대부분 2루수 방향으로 향한다. 미트 문제도 있다. 오른손 포수는 미트를 왼손(주자가 홈을 향해 달려오는 방향)에 끼운다. 반대로 왼손 포수는 미트를 오른손에 착용하니, 홈 블로킹이나 태그 때 몸을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0.1초가 아까운 홈 승부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왼손잡이 포수용 미트는 아예 구하기도 어렵다. 기성품이 나와 있지 않고 모두 주문 제작을 해야 한다. 한 회사가 미트 1000개를 만들면 3개 정도가 왼손잡이용이라고 한다. 이마저도 왼손잡이 아버지가 아들과 캐치볼을 하기 위해 주문하는 정도다. 물론 이 모든 이유는 일반론에 따른 분석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왼손 포수 클레멘츠는 송구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명포수로 알려졌다.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한 배터리코치는 오히려 야구계의 현실을 지적했다. “왼손잡이인데 어깨까지 좋으면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포수가 아니라 투수를 하게 된다”는 얘기다. ‘시속 150㎞를 던지는 왼손 투수는 지옥에 가서라도 잡아 오라’는 속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어깨가 좋은 ‘좌투’ 외야수들이 거의 없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송진우 한화 투수코치의 둘째 아들인 송우현(키움)은 초등학교 시절 유일한 왼손 포수로 화제를 모았지만, 중학교에 재학하면서 결국 투수로 변신했다. 이후 다시 내야수로 포지션을 바꿔 프로에 입단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