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25명이 ‘왕실 식사’ 담당하고 옷은 주문…시집 오는 여성은 위원회 전원합의로 결정
과거 일왕의 존재는 정치적으로 여러 번 이용됐다. 예컨대 제국주의 시절, 일왕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내세워 전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주변국에 위치해 있는 우리가 일왕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야할 이유다. 일왕이 주로 어떤 활동을 하며, 사생활은 일반인과 어떻게 다른지 등등 일왕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나루히토 새 일왕이 1일 도쿄 지요다구 고쿄(皇居) 내 규덴(宮殿)에서 열린 즉위 행사 뒤 마사코 왕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소감을 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일왕은 어떤 일을 하나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일왕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위상이 축소됐다. 실질적인 권력은 내각 총리와 의원들이 행사하고, 실권 없는 ‘상징 천왕’이 된 것. 그러나 여전히 일본 국민들에게 일왕은 정신적 지주이자 국민통합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왕의 가장 중요한 일은 국사에 관한 행위다. 가령 의회로부터 의제와 서류가 송부되면 일왕이 서명한다. 이처럼 의결된 법안에 일왕의 서명이 기재돼야만 법률적 효력을 갖추게 된다. ‘주간여성’에 따르면, 연간 일왕이 서명하는 서류는 1000여 건에 이른다. 그 외에 풍요를 기원하는 ‘식수제’에 참석한다거나 재해지 위문, 해외 귀빈 접대, 각국 국가원수들에게 축전을 보내고 불행한 사건에 조전을 보내는 것도 일왕의 일이다. 또 전통을 계승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일왕이 와카(일본 고유 정형시)를 읊는 건 단순히 취미 생활만은 아니다.
#일왕의 식탁은 누가 차릴까
왕실의 식사를 담당하는 부서 ‘다이젠카(大膳課)’가 따로 존재한다. 요리사가 약 25명으로 일식과 양식, 과자, 빵 그리고 왕세자 전담 등 5개 분야로 나뉜다. 야채나 돼지고기, 계란 등은 도치기현에 있는 왕실 전용 농장·목장에서 생산한다. 생선을 비롯한 다른 식재료는 믿을 만한 공급처를 통해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왕도 주민등록표, 호적이 있을까
일왕을 포함한 왕족은 호적이 없다. 다만 ‘황통보(皇統譜)’라 하여 족보가 내려온다. 성이 없기 때문에 생년월일과 부모의 이름 등이 기록돼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여성 왕족은 일반인과 결혼하면 황통보에서 제적되며, 평민 신분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반대로 평민 여성이 왕실로 시집올 경우 호적에서 제적된 다음 황통보에 등록된다.
#여권은 가지고 있나
세계적으로 관습상 국가원수에게는 여권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왕도 국가원수급의 귀빈이므로 굳이 여권이나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 아울러 “다른 왕족이 외국여행을 할 때는 일회성 여권이 발급된다”고 한다. 외교관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여권이다. 일왕은 물론 왕족들은 일반인처럼 출입국심사대에 줄을 서지 않으며, 특별 통로를 통해 신속하게 수속을 마친다.
#일왕도 이혼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일본 왕실에 대한 법률인 ‘왕실전범’ 14조에 따르면 “이혼했을 시 왕족 신분을 포기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혼한 사례는 없었다. 일왕이나 왕세자가 신분을 일탈하는 것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라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만약 일반인과 결혼해 족보에서 나온 여성 왕족이라면 이혼하더라도 다시 왕족으로 돌아갈 순 없다.
#평상복은 어디서 구입하나
일왕이 직접 옷을 사러가진 않는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백화점 등의 카탈로그를 보고 주문하는 식이다. 실제로 보고 싶은 옷이 있으면 왕궁으로 갖다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실물을 입어본 다음 주문하기도 한다. 일본 왕실에 납품하는 어용상인 제도는 1954년 폐지됐다. 왕실 저널리스트 쿠노 야스시는 “공식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으나 왕실이 거래하는 가게, 백화점이 정해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가 깊은 장인의 가게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전속 헤어 담당자는 있나
물론 있다. 취향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힘들기 때문이다. 앞서 아키히토 일왕도 재위 기간 동안, 같은 이발사가 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통은 자기 가게를 운영하다 연락이 오면 왕궁으로 가 이발을 해준다. 담당자가 고령이 되어 은퇴할 경우 그 제자가 계승하기도 한다. ‘주간여성’ 보도에 의하면 ‘짧은 시간에 척척 일 잘하는 사람’이 전속 이발사의 요건 중 하나라고.
#왕실에 시집오는 여성의 조건
명문화된 것은 없다. 하지만 왕비교육이 따로 있으며, 전통시 와카를 읊을 수 있을 정도의 교양이 필요하다. 품격도 중요한 조건이다. 단지 자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여성 왕족이 결혼할 땐 상대에 대한 신원조사가 엄격하지 않은 편이다. 이에 반해 왕실로 시집오는 여성은 왕실 위원회가 학력, 인물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전원합의로 결정한다. 미치코 왕비의 경우 가톨릭신자인 것이 문제가 됐으나 영세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성혼이 허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왕은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데 사실일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왕실 저널리스트 쿠노 야스시는 “일왕은 일본국의 상징이다. 일반 국민이 아니므로 형벌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일왕을 소송한다는 것은 국민을 고소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일왕이 잘 알고 있기에 형벌에 해당하는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참고로 일왕 및 왕족은 선거권과 피선거권, 국민연금, 납세, 국민건강보험료 지불 의무 등이 없다.
#왕실에 드는 비용은
왕실 비용은 국고에서 지원된다. 크게 내정비, 왕족비, 궁정비 등 3개로 구분된다. 먼저 내정비는 일왕을 비롯해 왕족이 쓰는 생활비다. 기초적인 금액은 법률로 정해져 있으며, 2017년도 기준 예산은 3억 2400만 엔(약 33억 원)이 책정됐다.
왕족비는 쉽게 말해 왕족 품위 유지비다. 성년과 미성년, 혹은 독립 생계를 영위하고 있는지 등 조건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2017년도 왕족비용 총액은 2억 1472만 엔(약 22억 원)이었다. 일본 매체에 의하면, 내정비와 왕족비는 사유재산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궁정비는 각종 행사와 해외 방문, 국빈 접대 등에 사용되는 비용이다. 궁내청에서 관리하는 공금으로, 2017년도 기준 56억 7892만 엔(약 595억 원)이 지출됐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