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 놓고 응원·신경전 벌이는 건 중년 팬도 어린 팬도 같아…“방송가와 대중 니즈 모두 만족”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사진=TV조선 제공
시청자들의 뜨거운 열기는 SNS로 이어졌다. 송가인, 홍자, 정미애 등 상위권을 엎치락뒤치락하던 가수들의 SNS는 갑자기 늘어난 ‘중년 팬’들의 응원글로 가득차 하루에도 몇 백~몇 천 개의 댓글이 쏟아졌다.
“딸이 SNS 계정을 만들어 줘서 여기에 응원글을 올린다. 꼭 1등 하셨으면 좋겠다. 노래가 너무 좋다” “SNS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응원하고 싶어서 가입했다. 하루에 한 번씩 응원 댓글 달겠다” 자녀가 직접 SNS에 가입시켜줬다고 밝힌 중년 팬들의 계정은 대부분 실제로 활동 흔적이 거의 없는 새 계정이었다.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기 위한 ‘팬심’이 SNS 까막눈이던 이들을 여기까지 이끈 셈이다.
각 가수 별로 만들어진 팬 커뮤니티도 인상적이다. 가수의 스케줄을 꿰고 그에 맞춰 현장 응원을 나가는 것은 어린 팬이나 어른 팬이나 다른 점이 없다. ‘미스 트롯’에 출연한 한 가수의 오랜 팬이라고 밝힌 50대 남성은 “원래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가수여서 소소하게 지역민들만 모인 팬카페가 있었다. 그런데 미스 트롯을 하면서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어 회원 수가 갑자기 늘어났다”며 “원래 우리 카페에는 그냥 우리 지역민들 수다방밖에 없었는데 덕분에 전국 지역별로 게시판을 새로 만들어서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스트롯’ 1대 우승자로 송가인이 선정됐다. 사진=TV조선 ‘미스트롯’ 캡처
젊은 층들은 페이스북 메신저나 카카오톡을 사용하지만 어르신들은 주로 네이버 라인 메신저나 밴드를 이용해 팬층을 다지는 식이다. 방송 중에 ‘내 새끼’를 위한 시청자 투표를 독려하거나 지지하는 가수의 SNS와 유튜브 영상, 뉴스 기사 등에 ‘선플’을 달아주는 운동도 이어 나간다.
좋은 쪽만 닮은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데스 매치’가 오고가는 서바이벌이었던 만큼 라이벌에 대한 경쟁심도 젊은 층 못지않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1, 2위를 다퉜던 송가인과 홍자의 경우는 팬들 간의 신경전도 대단했다는 게 방송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한 방송가 관계자는 “경연이 이뤄지는 내내 시청자 게시판에 양 측 팬들 간의 불꽃 튀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어느 한 쪽에게 심사위원단이 판정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양 쪽이 똑같이 주장했던 것인데, 앞서 어린 친구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어르신들이나 젊은 친구들이나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행동은 똑같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일 방송됐던 ‘미스 트롯’의 마지막 회 시청률은 18.1%를 기록해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종편 사상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기록이면서, 제작진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성공이었다.
사진=‘미스트롯’ 공식 홈페이지
‘미스 트롯’의 문경태 PD는 “종편의 특성상 주요 시청자 층에게는 트로트라는 장르가 친근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시청률)이 나올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로 성공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밝혔다. 8회 방송이 진행되던 지난 4월 19일 매체 인터뷰에서는 “결승전에서 15%를 넘어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소소한 희망을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그 이상인 20%를 바라보는 수치까지 올라섰으니 이만하면 종편과 지상파를 통틀어 대성공인 셈이다.
이와 같은 성공에는 ‘미스 트롯’이 택한 ‘역발상’이 주효했다는 게 방송가의 분석이다. 일반적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선택을 하는 쪽도, 받는 쪽도 비슷한 연령대층이었다. 그러나 ‘미스 트롯’은 시청자와 타깃 소비층은 중장년층으로 삼되, 실제 상품을 만들어내는 측은 젊은이들로 구성해 프로그램 내에서는 물론 밖에서의 이슈도 한 번에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종편 예능 프로그램 제작 관계자는 “장윤정이나 윙크, 홍진영 등을 필두로 2000년대 중반부터 트로트가 점점 젊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런 젊은 피들은 트로트에 발라드, 댄스, EDM 등 다양한 장르를 믹스하면서 20~30대 같은 또래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무대를 꾸밀 수 있는 사람들이다. 7080 가요무대가 아니더라도 어떤 방송에서도 트로트를 들고 활약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라고 설명했다.
이어 “방송가는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인기가요’ 무대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신세대 트로트 가수를 원하고, 대중들은 자신이 부모처럼 지지하고 응원해줌으로써 성장할 수 있는 가수를 원한다. 이 두 가지 수요가 맞아 떨어진 게 ‘미스 트롯’”이라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