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터울로 상무서 잠재력 폭발한 거포 SK 한동민-KT 문상철, 전역 후 운명 엇갈린 속사정
‘퓨처스 홈런왕’ 출신인 SK 와이번스 한동민과 KT 위즈 문상철. 사진=연합뉴스, KT
[일요신문] 2010년대 중반 KBO 퓨처스리그를 ‘씹어먹은’ 타자가 있었다. 그것도 둘이나. 바로 SK 와이번스 한동민과 KT 위즈 문상철이다. 두 타자는 군복무 시절 상무 유니폼을 입고, 2년 연속 퓨처스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 쥐었다.
2015년과 2016년 KBO리그는 ‘한동민 시대’였다. 퓨처스리그 상무 소속 한동민은 2015년 21홈런, 2016년 22홈런을 때려냈다. 2년 동안 퓨처스리그를 초토화한 것. 한동민은 2년 연속 퓨처스 남부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2016년 9월 한동민이 전역을 신고한 뒤 맞이한 2017년. 퓨처스리그엔 ‘문상철 시대’가 도래했다.
문상철은 한동민보다 강력한 화력을 뽐내며, 퓨처스리그를 평정했다. 2017년 문상철은 타율 0.339/ 36홈런/ 101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문상철은 퓨처스리그 최초 ‘3할-30홈런-100타점’ 타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가 때려낸 36홈런은 퓨처스리그 단일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이었다. 2018년에도 문상철은 22홈런을 기록하며, 퓨처스 홈런왕좌를 차지했다.
‘퓨처스 홈런왕’ 시절 한동민과 문상철은 그야말로 미친 존재감을 뽐냈다. 두 타자는 모두 대졸 야수였고, 상무에서 기량을 만개했다. 이에 두 홈런 타자를 향한 야구팬들의 기대감은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제대 이후 두 타자의 행보는 180도 다른 모양새다.
한동민은 KBO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성장했다. 2017시즌 29홈런을 기록한 한동민은 2018시즌 41홈런을 터뜨리며,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한동민은 40홈런을 기록한 최초의 대졸 선수로 한국 야구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이뿐 아니었다. 한동민은 2019 KBO 리그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MVP에 등극하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한동민의 주가가 급등하자 시선은 자연스레 문상철에게 쏠렸다. 적어도 퓨처스리그에서 만큼은 문상철이 한동민보다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줬던 까닭이다. 하지만 2019시즌 군 제대 후 첫 시즌을 맞이한 문상철은 1군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KBO 리그 1군 무대에서 한동민과 문상철 사이의 간극은 상당히 크게 느껴진다. 같은 ‘퓨처스 홈런왕’ 출신 타자인데, 이처럼 존재감 차이가 극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야구계 일각에선 “군 제대 후 두 타자가 놓인 환경이 다르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같은 종류의 나무라도 정글에서 자라면 거목이 되고, 화분에서 자라면 성장이 멈춘다. 군 제대 후 두 ‘퓨처스 홈런왕’의 행보가 엇갈리는 이면엔 상반된 성장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KBO리그 톱클래스 타자로 성장한 퓨처스 홈런왕, ‘동미니칸’ 한동민
‘퓨처스 홈런왕’에서 ‘한국시리즈 MVP’로 성장한 한동민. SK는 한동민을 믿었고, 한동민은 믿음에 응답했다. 사진=연합뉴스
상무에서 기량이 만개한 한동민이 제대한 뒤, SK 와이번스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2016시즌을 마친 SK는 ‘리빌딩’을 선언했다. SK의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SK는 외국인 감독 트레이 힐만을 선임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SK 부임 초기부터 힐만 감독은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힐만 감독은 유망주들이 성장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바로 경쟁이었다. 힐만 감독은 경기마다 다른 라인업을 선보이며, 다양한 선수들에게 고른 기회를 부여했다. ‘리빌딩’이란 구단 운영 기조에 정확히 들어맞는 선수 기용 방식이었다.
힐만 감독은 2017년 4월 초부터 한동민에게 꾸준한 출전 기회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4월 6일부터 한동민이 SK 선발 라인업에 드는 빈도수가 높아졌다. 그리고 한동민은 힐만 감독의 기대에 200% 부응했다.
한동민은 2017년 4월에만 9홈런을 몰아치며, 자신이 왜 ‘동미니칸(한동민의 스윙이 마치 도미니카공화국 타자처럼 호쾌하다는 데서 비롯된 별명)’이라 불리는지 입증했다. 이후 한동민은 ‘SK 홈런 공장’의 주축으로 떠올랐다. 8월 8일 문학 NC 다이노스전에서 왼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기 전까지 한동민은 타율 0294/ OPS(출루율+장타율) 1.010/ 29홈런/ 73타점을 기록했다.
2018시즌 부상에서 돌아온 한동민은 자신의 활약이 ‘단발성’이 아니었음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2018년 한동민은 136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4/ OPS 0.967/ 41홈런/ 115타점 ‘리그 톱클래스급’ 활약을 펼쳤다.
한동민의 맹활약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이어졌다. 한동민은 중요한 고비마다 홈런을 터뜨렸다.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한방 역시 한동민의 몫이었다. 포스트시즌 4홈런을 때려낸 한동민은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차지했다.
‘퓨처스 홈런왕’을 차지한 한동민의 자신감이 충만한 상황. SK는 한동민에게 꾸준한 기회를 줬다. 한동민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한동민은 급격히 성장했다. 2015, 2016년 퓨처스리그를 초토화했던 한동민은 어느덧 KBO 리그를 대표하는 전국구 강타자로 발돋움했다.
결과적으로 SK는 ‘리빌딩 선언’ 2년 만에 향후 10년을 책임질 중심 타자를 얻게 됐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덤이었다. 리빌딩 기간 SK가 길러낸 주축 선수는 한동민뿐 아니다. 박종훈, 문승원, 김태훈, 노수광 등 여러 주축 선수를 길러낸 SK는 구단 기조를 ‘리빌딩’에서 ‘윈 나우(Win Now)’로 매끄럽게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전직 퓨처스 홈런왕 한동민은 구단의 전폭적인 믿음 아래서 스타로 성장했다. 한동민의 성장 과정은 SK가 다시 한번 강팀으로 거듭난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 들쑥날쑥한 출전기회… 식어만 가는 ‘퓨처스 홈런왕’ 문상철의 방망이
올 시즌(5월 6일 기준) 문상철은 9경기에 출전해 13타석에 들어섰다. 사진=KT
SK 와이번스 한동민이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거듭난 뒤 야구팬들의 시선은 KT 위즈 문상철에 쏠렸다. 문상철과 한동민의 ‘라이프 리듬’이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두 타자는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무대에 입성했다. 군에 입대한 뒤 기량이 만개했다. 2년 연속 퓨처스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다. 이처럼 문상철과 한동민의 야구 인생엔 흡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군에서 제대한 뒤엔 사정이 달랐다. 문상철은 한동민 만큼 강력한 임팩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5월 6일 기준) 문상철의 성적은 ‘퓨처스 홈런왕’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는다. 문상철은 9경기에 출전해 12타수 2안타 1타점으로 부진하다. 여기서 2안타는 모두 대타로 나서 때려낸 안타였다.
하지만 ‘부진한 성적의 책임이 문상철 개인에게만 있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문상철이 부여받은 기회 자체가 지나치게 적다. 5월 6일 기준 KT는 37경기를 마쳤는데, 문상철은 고작 9경기 출전에 그쳤다.
9경기 가운데 선발로 출전한 경기는 2경기, 3타석 이상을 소화한 경기는 1경기에 불과하다. 9경기에서 문상철은 타석에 13번 들어섰다. ‘잘했다, 못했다’를 판가름하기엔 표본 자체가 적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문상철은 올 시즌 54타석을 소화하게 된다.
많은 야구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타자라도 1~2타석씩 드문드문 기회가 찾아온다면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문상철 역시 비슷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물론 출전 기회를 준다고, 100% 성공으로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퓨처스리그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증명한 타자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어지지 않는다는 건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KT의 퓨처스 홈런왕 활용법은 SK와 확연히 다르다. 이는 KT의 모호한 구단 운영 기조 단면을 드러내는 사례일지 모른다. 올 시즌 KT는 줄곧 베테랑 타자들을 중심으로 타선을 꾸렸다. 하지만 KT의 성적은 저조하다. 5월 6일 기준 KT는 11승 26패로 리그 최하위에 쳐져있다.
2015년 KBO 리그 1군 무대에 합류한 KT는 2017년까지 ‘3년 연속 꼴찌’란 불명예스런 성적을 냈다. 2018시즌에도 리그 9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많은 기대를 안고 시작한 올 시즌에도 KT의 성적은 제자리걸음이다.
KT의 구단 운영 기조는 당장의 성적을 내려는 ‘윈나우’도, 미래를 기약하는 ‘리빌딩’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대로 가다가 KT는 구단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놓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KT가 고질적으로 하위권에 머무른다면, KBO 리그 흥행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KT가 ‘윈나우’와 ‘리빌딩’ 중 하나의 기조를 선택하는 건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창단 이후 KT는 아직 제대로 ‘빌딩’된 적이 없다”는 시각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