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시즌 두산 린드블럼의 속구 구종가치 가장 높아… 올 시즌엔 LG 윌슨의 ‘슬라이더-싱커’ 강세
LG 트윈스 선발투수 타일러 윌슨.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야구의 역사는 ‘마구(魔球)의 등장과 극복’이란 문구로 요약되기도 한다. 투수들은 타자들을 괴롭힐 마구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타자들은 마구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반복해 왔다.
이런 과정의 반복 끝에 야구 역사엔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스플리터, 싱커, 너클볼 등 새로운 구종이 등장했다. 21세기에도 투수들의 마구 개발은 멈추지 않는다. 투수들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대변할 만한 마구 개발에 힘쓴다. 현대 야구에서 마구 개발 트렌드는 기존 구종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응용해 특별함을 더하는 것이다.
박찬호의 ‘라이징 패스트볼’, 김병현의 ‘프리즈비 슬라이더’ 등은 일반 야구팬들에게 대표적인 마구로 인식되는 구종이다. 이런 마구를 극복하는 건 전적으로 타자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 KBO리그 타자들이 공략에 애를 먹는 마구는 무엇일까. ‘일요신문’이 2018, 2019시즌 투수 구종가치를 바탕으로 ‘KBO 리그 마구 마스터’들을 살펴봤다.
구종가치는 ‘투수의 특정 구종이 기대 득점을 변화시킨 누적값’을 나타내는 수치다. 특정 구종이 실점을 막아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지표인 셈이다.
2018시즌 최고 마구는 린드블럼의 속구, 후랭코프 슬라이더-박종훈 커브도 돋보여
지난해 KBO리그 구종가치 1위를 기록한 구종은 린드블럼의 속구였다. 사진=연합뉴스
2018시즌 KBO 리그 구종가치 부문 전체 1위를 차지한 건 두산 베어스 조쉬 린드블럼의 속구였다. 린드블럼 속구 구종가치는 무려 24.1이었다.
지난해 속구 구종가치 1위와 2위 사이 격차는 상당히 컸다. 속구 구종가치 2위를 차지한 이용찬의 속구 구종가치는 12.3으로 린드블럼 속구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는 ‘지난해 린드블럼의 속구가 승부구로 완벽한 역할을 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린드블럼의 속구 구사율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시즌 속구가 주무기인 앙헬 산체스(SK 와이번스)나 헨리 소사(전 LG 트윈스)의 속구 구사율은 50% 수준이었다. 그런데 린드블럼의 속구 구사율은 32.7%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린드블럼의 속구는 두산의 기대 승률 상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승부처에서 린드블럼 속구의 가치가 빛났던 셈이다.
그렇다고, 린드블럼의 속구가 리그를 대표하는 ‘파이어볼’은 아니다. 지난해 린드블럼 속구 평균 구속은 146.1km/h로 리그 8위였다. 하지만 정면승부를 두려워하지 않는 린드블럼의 투지가 속구의 위력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린드블럼의 속구가 마구 반열에 오른 비결은 앞서 언급한 투지와 무관하지 않다. 린드블럼의 투구 성향은 ‘공격적’ 그 자체다.
지난해 린드블럼은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기록은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다. 얼마나 공격적인 투구를 했는지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피해가는 투구를 하다가 상대 타자에게 ‘공짜 출루’를 허용할 때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린드블럼이 공격적 투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료=스탯티즈
한편 2018시즌 가장 가치 있는 슬라이더를 구사한 투수는 두산 세스 후랭코프였다. 후랭코프의 슬라이더 구종가치는 23.8이었다. 커브 부문에선 SK 잠수함 투수 박종훈의 ‘떠오르는 커브’가 구종가치 12.6으로 선두를 차지했다.
가장 강력한 스플리터를 던졌던 투수는 LG 소사였다. 소사 스플리터의 구종가치는 10.5였다. 소사와 원투펀치로 활약했던 LG 타일러 윌슨은 지난해 최고의 ‘싱커볼러’였다. 윌슨의 싱커 구종가치 20.2로 상당히 높았다. 한편 2018년 KT 위즈에서 활약했던 더스틴 니퍼트는 체인지업 구종가치 15.6을 기록하며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LG 윌슨 ‘슬라이더-싱커’ 2개 부문 구종가치 1위 질주… 구종가치 전체 1위는 SK 다익손의 ‘아파트 속구’
엄청난 높이에서 꽂히는 SK 와이번스 브록 다익손의 속구는 2018시즌 구종가치 전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SK
올 시즌 KBO리그 구종가치 순위는 지난해와 사뭇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5월 13일 기준 KBO 리그 구종가치 1위는 SK 와이번스 브록 다익손의 속구가 차지하고 있다. 다익손 속구 구종가치는 10.4다.
다익손은 203cm 장신 투수다. 높은 타점에서 내리 꽂히는 140km/h 중반대 속구는 다익손의 주무기다. 마치 전성기 더스틴 니퍼트를 연상시킬 만한 속구다. 야구 관계자들은 높은 타점에서 대포알처럼 날아오는 니퍼트의 속구를 “아파트 2층에서 던지는 공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익손의 속구 역시 니퍼트가 던지던 ‘아파트 속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올 시즌 다익손은 9차례 선발 등판해 49.1이닝을 소화하며 3승 1패, 평균자책 3.83으로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최고의 싱커볼러로 손꼽혔던 LG 트윈스 타일러 윌슨 역시 주목할 만하다. 올 시즌 윌슨은 싱커뿐 아니라 슬라이더 구종가치 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 윌슨은 슬라이더 구종가치 10.2, 싱커 구종가치 8.1로 두 부문에서 선두 자리를 차치하고 있다.
슬라이더와 싱커, 두 가지 수준급 마구를 구사하는 윌슨은 올 시즌 KBO 리그 최고 투수로 손꼽히고 있다. 13일 기준 윌슨은 9차례 선발 등판에서 4승 2패 평균자책 1.66을 기록 중이다. 승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최고의 성적이란 평가를 들을 만하다.
한 야구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투수가 확실한 무기를 한 가지만 갖고 있어도, 타자는 대처하기 힘들다”면서 “윌슨은 슬라이더, 싱커 두 가지 확실한 무기로 타자를 상대한다. 타자 입장에선 윌슨을 상대하기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자료=스탯티즈
한편 올 시즌 커브 구종가치 1위엔 LG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7.5)의 이름이 올라 있다. 한화 이글스 채드 벨은 체인지업 구종가치 1위(8.9)다. 스플리터 구종가치 1위 자리는 장민재(5.5)가 지키는 중이다.
이제 2019 KBO 리그 일정은 중반에 접어들고 있다. 아직 2019시즌 ‘최고의 마구’를 단정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리그가 흘러가면서 투수들의 구종가치 순위는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과연, 시즌 마지막에 리그를 대표하는 마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KBO 리그 투수들의 구종가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프로야구를 즐기는 또 다른 관전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