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성범죄는 끝내 ‘무혐의’…한상대 전 총장 반발에 검찰 내부 뒤숭숭
“결국 성폭행 적용 없이 (김학의 전 차관) 구속으로 끝이군요. 그럴 수밖에 없겠죠.” (법원 고위직 관계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을 재수사하는 검찰 수사단은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 씨를 구속 기소하고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찜찜한 부분을 남겼다. 건설업자 윤중천 씨를 ‘건설업자’로 한정지은 채 수사를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복수의 법조계 관계자는 “사실 윤 씨는 브로커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수사팀은 윤 씨와 김 전 차관의 관계만 수사했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제기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등의 윤중천 씨 유착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 불가’ 판단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김 전 차관의 성범죄(강간) 혐의에 대해서도 무혐의로 판단했다. ‘딱 거기까지만 할 것’이라는 기존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 결론이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동부지검 출석 당시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고성준 기자
4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은 한 달여 넘게 진행된 수사 끝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뇌물과 성 접대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2013년 3월 차관 내정 직후 별장 성접대 동영상의 존재가 드러난 지 6년 만이었다. 하지만 성폭행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다.
검찰은 윤 씨가 피해 여성 A 씨를 심리적으로 억압해 3회에 걸쳐 성폭행해 정신적 상해를 가하고 김 전 차관에게 성 접대를 하도록 강요했다고 결론은 내렸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은 이를 모르고 성관계를 맺어 성폭행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근거는 A 씨의 진술이었다. 피해 여성 A 씨는 김 전 차관에게 폭행·협박당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수사 도중 진술했는데, 이를 근거 삼아 김 전 차관에 대해서는 성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강제성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강간 등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신 성 접대를 포함, 김 전 차관이 윤 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의혹을 혐의로 적용했다. 2007년 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건설업자 윤중천 씨에게 31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비롯해 1억 3000만 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판단했다. 윤 씨가 김 전 차관의 스폰서 역할을 했다고 본 것이다.
윤중천 씨는 강간치상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됐는데, 윤 씨는 “합의된 성관계다. 뇌물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여성 A 씨 등을 협박해 김 전 차관을 비롯한 유력인사들과 성관계를 맺도록 하고 2006년 겨울께부터 이듬해 11월 13일 사이 세 차례 성폭행해 정동장애와 불면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적 상해를 입힌 혐의가 적용됐다. 하지만 윤 씨에서는 다행일 수도 있다. ‘브로커’ 역할로서의 처벌은 피했기 때문이다.
# 건설업자? “NO, 전형적인 검찰 브로커”
중천산업개발. 과거 윤중천 씨가 운영했던 회사 이름이다. 하지만 건설업은 그의 ‘직업’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그의 건설업체 관련행사 등에는 연예인들이 오는 등 마당발 인맥을 자랑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역시 다 ‘브로커’로서의 네트워크에서 비롯됐다는 게 서초동 일대 평이다.
윤 씨를 아는 검찰 브로커는 “2000년대 중반 윤 씨는 건설회사 명함을 들고 다니는 서초동의 브로커 중 하나였다”며 “윤 씨가 김학의 전 차관 등 몇몇 검사들과의 친분을 자랑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김학의 전 차관이 받은 성 접대 역시 브로커이자 스폰서인 윤 씨가 제공하는 ‘로비’ 차원이고, 보통 일반적으로 검사들은 돈보다 뒷문제가 없는 술자리를 선호했다. 김 전 차관 역시 그런 경우”라고 귀띔했다.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당시의 윤중천 씨. 임준선 기자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브로커 역할의 윤 씨 존재를 알고 있었다. 김학의 전 차관 외에 검찰 고위직 중에 윤 씨와 유착한 의혹이 있다는 리스트를 5월 29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박 아무개 전 차장검사 등 전직 검찰 고위간부들이 윤 씨를 알고 지내면서 유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구체적인 근거들도 제시됐다. 윤 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에서 한 전 총장이 2005년에 쓰던 명함이 발견됐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1년에는 윤 씨의 민원을 받아들여 수사 주체를 바꿔줬다는 것. 당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은 윤 씨의 민원이 제기됐던 1차 수사 때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였고, 2차 수사 때는 사건 지휘라인인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겸 강력부장 자리에 있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한 전 총장이 윤 씨에게 수천만 원의 금품을 수수하고 윤 전 고검장은 골프 접대 등을 받은 정황이 있었다는 게 검찰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 배경이었다.
하지만 김학의 수사단은 추가 수사를 벌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수사단을 통해 ‘유착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 임기가 다음 달로 끝나는 문무일 총장은 임기 내에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했고, 특히나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적극적으로 선배 검사들의 유착 의혹을 판다는 것은 ‘자충수’에 해당했기 때문에 ‘수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그대로 따르는 판단이었다.
무혐의 근거는 당시 수사에 관여한 검찰 관계자들의 진술이었다. 수사단 조사에서 모두 한 전 총장이 윤 씨 형사사건에 개입한 사실을 부인했다. 2013년 압수된 윤 씨의 전화번호부에 한 전 총장의 연락처가 적혀있지 않고 통화내역 역시 없었다. 진상조사단은 윤 씨가 면담 과정에서 “한 전 총장에게 돈을 준 사실이 있다”고 했지만, 정작 윤 씨는 녹취가 이뤄진 정식조사에서는 이런 사실을 부인하며 현 수사단의 결과에 힘을 보탰다.
한 전 총장 등을 상대로 한 추가 수사가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검찰 내부는 다소 뒤숭숭해지는 분위기다. 한 전 총장 등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관계자들을 상대로 5억 원대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윤 전 고검장 역시 지난달 30일 이 세 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윤 씨에 대해서는 ‘아는 검사가 더 있다’는 게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과거사위가 실명으로 한상대 전 총장 등을 지목하며 수사를 권고하면서 ‘저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있나’라며 검찰 내에서 동요가 일었다”며 “결국 이번 수사 결과 역시 예상 너머의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서 말이 더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