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신공항 추진 ‘TK 갈등’ 딜레마…김경수 ‘항소심 뒤집기’ 여부에 희비 갈릴 듯
조국 민정수석. 박은숙 기자
부산 가덕도 신공항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차출론, 김경수 경남도지사 구하기는 선거의 양대 변수인 ‘구도’와 ‘인물’을 관통한다. PK 승부수를 두 가지 선거변수로 압축한 셈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노련한 장수는 전선을 넓히지 않는다”라며 “선거는 결국 캠페인과 함께 구도·인물에 따라 갈린다”라고 밝혔다.
가덕도 신공항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구도를 ‘PK vs 비 PK’로 분할하는 변수다. 조 수석은 낙동강 전선을 지킬 사수다. 김 지사의 항소심 뒤집기는 친문(친문재인) 지지층의 구심력을 끌어올릴 최후의 보루다.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 ‘위기의 PK’는 예상 밖 패배를 당하는 지역의 의석수를 메워주는 ‘보완재 역할’로 전환한다.
PK 위기론은 지난해 여권을 강타했다. PK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를 짓누른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자)의 핵심 축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것은 이·영·자 현상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지역 경제가 흔들리는 PK의 민심이 흉흉하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21대 총선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여권의 PK 구애 작전은 올해 초부터 본격화했다. 불씨는 문 대통령이 직접 당겼다. 정부는 ‘총선용 돈 풀기’ 비판 속에서도 1월 29일 총사업비 24조 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했다. 이중 최대 수혜는 4조 7000억 원 규모의 남부내륙철도 사업을 면제받은 경남이었다.
이 사업은 문 대통령 복심인 김 지사의 ‘지방선거 1호’ 공약이다. 정부는 당시 부·울·경에 4개의 예타 면제 사업을 안겼다. 드루킹 댓글 공모 혐의 등을 받은 김 지사는 다음 날인 1월 30일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1월의 산타클로스 선물 전후로 천당과 지옥을 오간 것이다.
이후 문 대통령은 PK 숙원사업 가덕도 신공항의 물꼬를 텄다. 문 대통령은 2월 13일 부산지역 경제인들과 만나 신공항 문제와 관련해 “영남권 광역자치단체의 생각이 다르다면, 부득이 (국무)총리실 산하로 승격해 검증 논의를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에선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6월 영남권 5개 광역자치단체장이 정부의 결정을 수용하면서 확정한 김해신공항 대신 ‘동남권 신공항 건설’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였다.
부산시는 문 대통령 발언 직후 “큰 선물을 줬다”고 자평했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 지사와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등은 취임 직후부터 가덕도 신공항 띄우기에 나섰다. 정치권 안팎에선 조국 PK 차출설과 맞물려 ‘문 대통령이 PK에 예산과 인물을 쏟아 붓고 있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그러나 약효는 없었다. 문 대통령의 중간평가 성격인 4·3 보궐선거(경남 창원·성산, 통영·고성)에서 민주당은 완패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이를 ‘여권 발 PK 위기’로 규정하며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PK를 중심으로 하락하고 있다”며 “대통령 지지도 복원과 함께 지역경제 살리기, 진보진영 단일화 등이 (내년 총선에서도)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민주당은 조직적인 대응에 나섰다. 4·3 보궐선거 참패를 당한 민주당은 중앙당 차원에서 PK만 따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당이 특정 지역의 여론조사만 돌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PK 민심이 악화일로라는 얘기다.
지방자치단체와 현역 국회의원의 연대 전선도 강화됐다. 오 시장과 PK 지역구인 민주당 김영춘 의원을 비롯해 김해영 민홍철 최인호 의원 등은 4월 27일 국회에서 ‘동남권 신공항’ 대국민보고대회를 개최했다. 오 시장이 자체적으로 꾸린 검증단은 ‘동남권 관문공항 정책 판정위원회’의 국무총리실 설치 등을 제안했다. 이들 실무진에서는 신공항 여론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사활 건 PK 승부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PK 40석 중 8석(부산 5석·경남 3석)으로 선전했다. 앞서 영·호남 민주화 세력을 잇는 남부민주벨트를 띄운 19대 총선에서는 3석(부산 2석·경남 1석)에 그쳤다. 이듬해 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PK 지역 득표율은 30%대 후반(부산 38.71%·경남 36.73%·울산 38.14%)에 달했다. 부산과 경남에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를 앞질렀다. 1년 뒤 치른 6·13 지방선거에선 김 지사(52.81%), 오거돈 부산시장(55.23%), 송철호 울산시장(52.88%)이 모두 과반 득표율을 기록했다.
문제는 ‘신공항 딜레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동남권 신공항이 부산 민심에 유리할지는 몰라도, TK(대구·경북)와의 갈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경남과 울산도 이를 반길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의도적인 PK와 TK의 갈라치기 전략이 아니라면, 총선 득표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동남권 신공항은 참여정부 때인 2006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검토를 지시한 이후 10여 년간 지역 갈등의 화약고였다. ‘PK vs TK’ 또는 부·울·경이 정면충돌할 경우 여야 등 기존의 선거 구도를 흔들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조국 차출론’과 ‘김경수 구하기’는 여권의 약점인 포스트 문재인을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조국 차출론은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이 깃발을 처음 든 다음 홍영표 전 원내대표 등이 군불을 지피면서 여권 전반으로 확산했다. 킹메이커인 이해찬 대표도 “조 수석의 의지가 중요하다”면서도 출마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같은 당 우상호·설훈 의원은 “설득해야 한다”, “당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가세했다.
‘청와대 참모→원내 진입→대선 도전’으로 이어진 이른바 ‘문재인 모델’을 재연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뒤 2012년 18대 총선을 기점으로 ‘문재인 대안론’을 안고 여의도로 출격했다. 친노(친노무현) 지지층은 문 대통령을 ‘노무현 후계자’로 점찍고 그해 대선까지 적극 엄호하며 문재인 띄우기에 나섰다. 여권 전략통은 “2012년 당시 문 대통령은 박근혜 대세론에 맞설 유일한 후보였다”며 “문재인이란 인물의 영향력이 컸다”고 말했다. 조국 영입 시 ‘새 피 수혈→중진 물갈이’ 등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하지만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조국 차출론에 대해 “청와대 퇴출론”이라며 평가 절하했다.
김경수 재판도 변수다. 김 지사는 지난 1월 30일 1심 재판에서 댓글조작 혐의(징역 2년)와 공직선거법 위반(징역 10월)에 대해 각각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구속 77일 만인 4월 17일 보석으로 석방됐다. 이후 지난 5월까지 항소심 공판을 다섯 차례 진행했다. 6차 공판은 6월 말 열린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 지사가 징역형이나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확정받으면 직을 즉시 잃는다. 이는 여권에 최악의 시나리오다. 김 지사의 구속과 석방 전후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전자 땐 ‘하락’, 후자 땐 ‘상승’했다. 민주당이 ‘김경수 구하기’에 나선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경수 항소심 유죄 후 한국당이 ‘친문 적폐’ 프레임에 드라이브를 건다면, ‘문재인의 사람들’뿐 아니라 여권 전반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항소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처럼 대반전을 꾀할 경우 김 지사는 물론, 친문계에 숨통이 트인다. 오는 11월에는 부산에서 한·아세안 수교 30년을 맞아 정상회의를 연다. 친문계에도 올해 하반기 반전 카드가 적지 않은 셈이다. 다만 야권 핵심 관계자는 “뭐니 뭐니 해도 중요한 것은 경제”라며 “여권이 민생에 실패하면 별별 전략을 짜도 총선 승리는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