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여의도 컴백 가능성…총선 역할 따라 명암 갈릴 듯
이낙연 국무총리가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총리가 5월 31일로 취임 2주년을 맞았다. 정부 출범과 동시에 낙점받은 이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탕평인사 신호탄으로 평가받았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현재 캠코더(문재인 캠프·코드 인사·더불어민주당) 인사 논란 속에서도 이 총리는 비문(비문재인)계 호남 총리로서 여권 권력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는 10월 말 이후까지 재임한다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장수 총리였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2년 5개월)의 기록을 갈아치운다. 명실상부한 차기 대권 주자로 우뚝 서는 셈이다.
이 총리 최대 장점은 ‘높은 지지율’이다. 이와 더불어 ▲총선 역할론 ▲대통령 후광 ▲친문계의 포스트 부재 등이 이낙연 4대 필승론을 뒷받침한다. 이 중 이 총리를 꽃가마에 태운 것은 여권 1위를 달리는 여론조사 결과다. 인지도는 한때 이 총리의 약점으로 꼽혔다. 4선(16∼19대) 국회의원과 전남도지사를 지냈지만, 그는 당내 호남 주자 중 한 명에 불과했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전남지사 당내 경선에서도 가까스로 이겼다. 경쟁자였던 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44.2%)과의 격차는 3.4%포인트에 불과했다.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주 의원(44.3%)보다 낮은 43.5%에 그쳤다. 불과 5년 사이 이 총리 입지가 180도 바뀐 것이다.
범친문계 한 관계자는 이 총리의 장점으로 ‘정치 경륜’과 ‘뛰어난 정무 감각’ 등을 꼽으며 “큰 꿈(대권 도전)을 위해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 안팎에서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이회창(자유선진당 전 총재)이 못 간 길을 이 총리가 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총리도 총선 역할론에 대해 “심부름을 시키면 따를 것”이라며 ‘총선 출마→대권 도전’ 의지를 드러냈다. 이 총리의 역할론은 선거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서울 종로 출마, 비례대표 등이 거론된다. 차기 총선에서 전진 배치된 이 총리가 제1당을 사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이낙연 대망론’은 한층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후광도 ‘이낙연 대망론’의 핵심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뒷배에는 DJ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도 ‘바보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있다. 이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는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다. 여권 내 ‘군기반장’으로 통하며 실세 총리 자리를 꿰찼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선 야권 의원들의 전방위 공세에 촌철살인으로 맞대응, 사이다 총리로 불린다. 강원 산불 진화 과정에선 ‘깨알 메모’가 공개되면서 호평을 받았다. 문 대통령이 이 총리 해외 순방 때 ‘대통령 전용기’를 내줄 정도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의 ‘운명 공동체’는 자칫 부메랑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대통령이 본격적인 레임덕(권력누수) 국면에 빠질 경우 후광은커녕 ‘쪽박’을 찰 수도 있다는 얘기다. 변수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 40% 선 유지다. 그 이하로 하락한다면, 이 총리의 지지율은 문 대통령과 동조화 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이낙연 대망론’의 입지는 탄탄하다. 친문계 내 ‘포스트 부재’도 한몫한다. 리틀 문재인으로 불린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드루킹 댓글 공모 의혹으로 대선 주자에서 이탈했다. 서울 종로 출마가 유력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당장 ‘이낙연 벽’부터 넘어야 한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이 총리의 운명은 결국 지속 가능한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이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낙연 4대 불가론’도 만만치 않다. 총리·호남 후보 잔혹사를 비롯해 ▲비문계 한계 ▲스토리 부족 ▲당내 역학구도 및 정계개편 등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국무총리는 24명에 달했다. 이 중 대권 고지를 밟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이회창 전 총재는 세 차례나 대권에 도전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 전 총재와 함께 YS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홍구·이수성·고건 전 국무총리 등도 대선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DJ정권의 국무총리였던 JP나 이한동 전 국무총리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친노(친노무현) 원로그룹인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한명숙 전 대표의 꿈도 물거품 됐다. 야권 한 당직자는 “보좌 역할은 잘하지만 견제 역할은 피하는, 전형적인 ‘관료의 한계’ 탓”이라며 “내각 제청권을 제때 쓰지 못한 이 총리도 헌법이 규정한 ‘책임 총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호남 후보 필패론’은 민주당 역대 대선 경선을 관통한 핵심 방정식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호남 인구는 영남 인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민주당이 호남 후보를 택하면, 영·호남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선거판이 ‘영남이냐, 호남이냐’로 양분하면, 인구가 적은 호남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세균 민주당 의원과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 등도 넘지 못한 벽이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이 총리가 호남 주자라는 점은 약점”이라고 밝혔다.
이 총리가 영남 후보 필승론을 정면 돌파하지 못한다면, 당내 예선과 본선에서 ‘호남 후보 잔혹사’를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호남의 강력한 구심점이었던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제외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 PK 출신이다. 이에 민주당 의원 한 관계자는 “호남 후보 필패론은 지역주의의 다른 이름”이라며 “20대 총선 당시 호남에서 비토당한 민주당이 또다시 호남 후보 필패론을 내걸겠느냐”라고 말했다.
비문계의 한계도 위험요인이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대선 본선은 인물 바람으로 가능하지만, 예선전은 당내 조직 없이는 뚫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총리가 당내 개혁성향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와 접점을 늘리는 것도 세력 구축을 위한 장기 포석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친문계의 대안으로 꼽히는 임종석 전 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부상한다면, 역으로 이 총리의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 총리는 2012년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문 대통령의 당내 정적이었던 손학규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공동 선대위원장이었다. 이 총리가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지만, 친문계 인사 중 ‘포스트 문재인’이 출현할 경우 ‘이낙연 역할론’이 2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는 의미다.
스토리 부족도 이 총리의 약점이다. 이 총리는 1979년 동아일보에 입사, 2000년까지 21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다가 그해 16대 총선을 통해 입성, 내리 4선을 지냈다. 당 대변인과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을 거쳐 제37대 전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스펙은 화려하지만, 스토리 텔링은 2% 부족하다. YS나 DJ는 한평생 목숨을 걸고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졸 학벌로 사법시험을 거쳐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원내 진입 후에는 지역주의와 거대 언론과 맞서 싸웠다. 샐러리맨 신화를 쓴 MB는 청계천 등의 업적을 남겼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으려면 ‘딱’ 떠오르는 삶의 궤적이 있어야 한다”며 “스토리 없는 이 총리가 대선을 돌파할 수 있겠느냐”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 같은 이유로 ‘이낙연 한계론’이 부상할 경우 자기 세력이 없는 이 총리의 구심력은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이 총리를 물밑 지원할지도 미지수다. 이 총리가 자기 정치에 시동마저 걸지 못한다면, 중간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총선 발 정계개편도 이 총리의 딜레마다. 그중 보수대연합은 치명적이다. 이 총리의 강점인 중도보수층의 지지도가 빠질 수도 있어서다. 당내 기반이 약한 이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한다면, 결론은 필패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