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지났지만 그의 발자취 고스란히
조지 오웰이 부총경으로 근무하며 살던 2층 목조집. 현재도 현지인 경찰 책임자가 살고 있다.
양곤을 떠나 카타로 가며 1927년 동시대의 두 사람을 떠올립니다. 당시 버마 랭군에는 칠레 시인이자 혁명가 파블로 네루다가 명예영사로 파견되어 왔고, 조지 오웰은 양곤 인세인을 떠나 카타에서 근무했습니다. 두 사람은 비슷한 나이였고, 한창 젊은 20대를 인도차이나에서 5년간 보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본명 아닌 필명으로 인생을 산 아픔입니다. 조지 오웰은 본명이 에릭 아서 블레어였지만 버마를 떠나며 영국 식민정책과 제국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쓰다 보니 필명으로 살게 됩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 역시 지금도 사랑받는 시인이자 소설가입니다. 조지오웰의 ‘1984년’은 미국 대학생 구독도서 1위로 선정되기도 하니까요.
중북부 카타 마을 풍경. 이라와디 강변을 끼고 있다.
조지 오웰의 처녀작 ‘버마 시절’의 주인공 플로리는 산림회사 책임자입니다.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버마로 와 결혼할 남자를 찾습니다. 당시 이곳 카타의 영국인 클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양국 사람들의 갈등, 음모, 탐욕, 사랑, 절망 등. 작가는 카타의 모습을 작품 속에 그대로 섬세하게 그렸는데 아직 그대로 남은 것이 많았습니다. 영국인 클럽도 낡은 채 그대로이고, 두 남녀 주인공이 살던 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벌목회사들, 경찰관사, 교회도 그 위치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작가는 지배층 영국이나 지배당하는 버마 사람들에게 희망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나마 영국에서 온 여인을 통해 삶의 희망을 찾고자 했으나 그것도 한 사건을 통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작품 속 주요 무대였던 영국인 클럽. 낡은 채 마을 공무원들이 쓰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조지 오웰이 당시 살던 집입니다. 그가 오기 전에 지은 집이니 130년쯤 되었다고 이 마을에 사는 미얀마 작가 뉴 코 나잉(Nyo Ko Naing)은 설명합니다. 이층 목조집은 숲이 내려다보이고 통풍이 잘 되도록 지었습니다. 그는 1922년 20세 때 영국 리버풀을 떠나 랭군에 도착했습니다. 만달레이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 1926년 카타에 왔습니다. 당시 직급은 부총경입니다. 그는 이듬해 휴가차 영국으로 돌아가 사표를 냈는데, 이 처녀작을 완성한 것은 7년 후입니다.
그가 살던 집 역시 현재 미얀마 경찰 지역책임자가 살고 있습니다. 당시 카타의 주요 장소였던 영국인 사교클럽장은 낡은 그대로 카타 지방 공무원들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작품 속에 그려진 클럽 모습입니다.
미얀마 화가가 그린 조지 오웰의 초상.
카타에는 조지 오웰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이층집 층계를 오릅니다. 삐걱거리는 낡은 나무집. 창가로 그의 소설 속 꽃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이라와디 강변 산책로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며 끈적한 여름이 끝났음을 알립니다. 무덥고 조용하고, 100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은 마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도시. 주인공 플로리는 끝내 권총을 들어 생을 마감하고, 조지 오웰도 자신의 직업을 마감하고 떠나게 됩니다. 저도 누렇게 흐르는 강변을 걸으며 미얀마에서의 지난 5년을 돌아봅니다. 미얀마의 느린 시간 속에서 4년을 써온 편지. 200번째로 이제 끝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취재를 도와준 삔우린, 만달레이, 양곤, 마궤, 낭쉐의 한국어학당 미얀마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답장으로 응원해주신 한국의 독자들과 교민들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부족한 글과 사진을 멋지게 꾸며준 신문사 편집국에 감사드립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