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가족, 친구 둔 게 벼슬이냐” vs “호응도 높은 예능 트렌드, 어쩔 수 없어”
2000년대 중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바통을 이어 받아 10여 년간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던 ‘관찰 예능’이 흔들리고 있다.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데서 더 나아가 ‘스타들의 가족과 친구’에 포커스가 맞춰지자 염증을 느끼는 대중들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 2일 방송된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의 홍자매. 사진=SBS 캡처
관찰 예능 가운데 최근 대중들의 지적과 비판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미우새)’다. 그 중에서도 홍진영·선영 자매가 타깃이 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쏟아지는 비판과 비례하게 시청률도 급상승한다는 점이다.
‘미우새’에서 홍진영 자매가 고정 출연진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은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연예인 자녀와 그 어머니가 함께 출연하는 ‘미우새’의 특성상 홍진영의 어머니와 홍진영이 출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홍진영과 함께 살고 있는 언니 홍선영의 출연이었다.
방송 초기까지는 흥이 넘치는 ‘홍자매’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이영자가 보여줬던 먹방 캐릭터가 홍선영으로 옮겨지면서 홍진영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홍자매에 대한 방영분은 홍진영이 아닌 홍선영에 초점을 맞춘 지 오래다.
홍선영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대중들의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2일의 일이다. 이날 방영분에서는 홍진영의 무대가 예정돼 있던 경북도민체전에서 홍선영이 무대에 오르는 장면이 방송됐다. 이 장면은 분당 최고 시청률 25.4%를 찍으면서 전체 시청률에서도 동시간대 1위, 일요 예능 1위, 주간 예능 1위의 3관왕을 기록했다.
‘미운 우리 새끼’. 사진=SBS 캡처
그러나 시청률만큼 대중들의 날선 비판도 이날 최고치를 찍었다. “미우새가 연예인 친언니 데뷔시키기 프로젝트냐” “오랜 무명시간을 보내 온 누군가에겐 꿈만 같을 무대를 너무 쉽게 가져가는 것에 박탈감마저 느꼈다”라는 것이 대중들의 주된 지적이었다.
대중들의 불만은 앞서 축적됐던 ‘홍선영 포커스’에서 기인한 것이다. 애초에 ‘미우새’의 기획 의도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에서 일반인은 ‘연예인의 어머니’로 한정돼야 했다. 일반인 어머니가 바라보는 연예인 자녀의 일상이라는 발상이 신선했기에 ‘미우새’는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가운데 최초의 여성 출연자 홍진영이 아닌 그의 일반인 언니 홍선영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당초의 기획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일반인 어머니가 바라보는 일반인 자녀의 일상’이 주말 공중파 예능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홍선영이 메인이 되고 홍진영이 옵션이 돼 버린 판에 연예인 가족의 연예계 데뷔 과정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된 대중들의 분노가 폭발한 셈이다.
SBS 예능 ‘아빠를 부탁해’는 연예인 자녀의 ‘세습’ 문제로 논란을 낳았다. 사진=일요신문DB
연예인의 가족 또는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연예계 프리 패스’가 주어진다는 비판은 ‘미우새’ 전부터 있어왔다. 앞서 연예인들의 성년 자녀를 다뤘던 SBS 예능 ‘아빠를 부탁해’는 방송 전후로 “연예계 금수저 세습을 부추기는 예능”이라는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이 방송에 출연할 당시 일반인 신분이었던 이경규의 딸 이예림은 배우로 데뷔했고, 무명 배우에 그쳤던 조재현의 딸 조혜정은 케이블 드라마의 주연으로 발탁됐다는 논란에 부딪쳐야 했다. 이에 대해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오디션 역할을 대신 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KBS 가족 예능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서 ‘국민가족’으로 사랑을 받은 배우 김승현의 가족들 역시 일반인임에도 불구하고 방송 출연을 바탕으로 CF 출연까지 성사됐다. 최근에는 방송 본편조차도 김승현 보다 그의 가족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대체 어느 쪽이 연예인이냐”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KBS 2TV 예능 ‘살림하는 남자들2’에서는 배우 김승현의 가족들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사진=‘살림하는 남자들’ 캡처
방송가에서는 이런 지적을 놓고 “일리있다”면서도 “방송 트렌드를 바꾸기 쉽지 않다”는 데에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능 프로그램 관계자는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반응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데, 연예인 주변의 가족 등 일반인이 최근 예능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건 시청자들의 반응이 그만큼 뜨겁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미우새도 홍선영이 등장할 때 부정이든 긍정이든 가장 많은 반응이 나오지 않나”라며 “화제성과 시청률만 담보하고 있다면 제작진으로선 놓치기 싫은 대어일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 PD도 “제작진이 무분별하게 일반인을 메인으로 내세운 게 아니라, 시청자들의 호응도를 바탕으로 비중을 높인 것이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며 “연예인이라는 특정 직업의 세습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일리있지만, 예능 트렌드가 바뀌지 않는 이상은 당분간 같은 논란이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