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선 준우승 덤덤, 이어진 국내 행사에 실감”…강원 무패에 “내가 승리 요정”
지난 16일 강원 FC 클럽하우스 ‘오렌지하우스’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이광연. 사진=최진영 프리랜서
[일요신문] 대한민국 축구의 새 역사를 쓴 2019 폴란드 U-20 월드컵이 끝난 지 한 달. 대회를 통해 새로운 축구 스타로 떠오른 이광연은 여전히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도 환영행사가 이어졌고, 소속팀 강원 FC에 돌아온 16일에도 2개의 언론 인터뷰가 잡혀 있었다. “꿈같은 한 달(월드컵)을 보내고 돌아오니 그 뒤 한 달은 더 정신이 없는 것 같다”는 이광연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지난 16일 강원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광연은 계속되는 환영 행사 및 방송 출연, 인터뷰 등으로 지쳐 보였다. 12일 저녁 K리그 경기를 치르고 받은 휴가 때는 약 6개월 만에 고향 충북 예산을 찾았지만 그곳에서도 군수와 식사 자리를 가져야 했다. 그는 “이제는 갓 돌아왔을 때보다 그런 행사들이 줄었다”면서 “힘들었는지 몸살이 났다. 오후 일정이 비어 있어 병원에 다녀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쉬지않고 이어지는 일정에 U-20 월드컵 준우승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 그는 “폴란드에선 우리가 무슨 일을 한 것인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오니 정말 유명한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면서 ‘내가 또 언제 이런 걸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들었다. 그러면서 친구들과 ‘우리가 뭔가 큰 일을 하기는 했다’고 얘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그렇게 수 많은 각종 행사 중에서도 그는 전 팀원들이 함께 참석했던 공식 환영 행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폴란드에서 대회를 치르고 입국 직후인 17일 대표팀은 서울시청광장에서 환영 행사를 가졌다. 대회 성과를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그는 오랜 기간 함께해 온 친구들과 작별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숱한 기념 행사 중 대표팀 공식 환영행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골키퍼 3인방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광연(가운데). 사진=임준선 기자
그는 대한민국 최초 FIFA 주최 남자대회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낸 데에는 ‘자극’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가기 전에는 우리에 대해 못 믿으시는 반응들도 있었다. 특출한 선수가 없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런 평가들 때문에 자극을 많이 받았다”면서 “가기 전부터 성적보다 우리끼리 좋은 추억을 쌓겠다는 마음가짐도 한편에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선수들끼리 잘 맞춰 가다보니 좋은 성적까지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회 이전엔 이들에 대해 2년 전 대회에 나섰던 이승우, 백승호와 같은 스타 선수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었다.
이처럼 대회전엔 ‘서운한 이야기’도 들었지만 돌아오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거리를 다녀도 많은 팬들이 그를 알아보고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할 정도다. 이광연은 “전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걸어 다니면 그냥 지나치는데 가만히 멈춰 있으면 많은 분들이 알아보고 다가오신다”고 설명했다.
최근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소속팀 동료 조재완은 언론 인터뷰에서 인기와 관련해 ‘이광연보다 이재익(U-20 대표 동료이자 강원 FC 동료)이 인기가 더 많다. 역시 잘생긴 얼굴이 중요하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에 이광연은 “재익이는 여성팬이 많고 나는 남성팬이 더 많다. 나도 여성팬이 있기는 하다”라고 항변했다. “재완형은 팬이 없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조재완에 대해 “운 좋은 선수”라며 “최근 시원한 골도 있었지만 공이 빗맞았는데도 운 좋게 들어간 골도 있다”고 뼈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광연은 좀처럼 긴장하는 법이 없다. 어느 순간이든 여유가 넘친다. U-20 월드컵 8강전 세네갈과의 승부차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미소를 지어보였던 이광연이다. 대회 이후 이어지는 인터뷰, TV 예능 프로그램 촬영 등에서도 생글생글 웃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어냈다.
하지만 청와대 만찬만큼은 약간의 긴장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한 쪽 구석에 앉았으면 안 그랬을 것 같은데 내 자리가 대통령님과 같은 테이블이더라. ‘빛광연’이라고 부르시면서 편하게 대해주시는데도 아무래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음식이 퀄리티는 높은데 양이 좀 적더라(웃음). 그래서 나와서 친구들이랑 치킨 사먹었다. 요즘 인기 있는 가루가 ‘뿌려진 치킨’ 있지 않나”라며 청와대 만찬 후 ‘2차’로 향했던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U-20 월드컵 이후 치른 프로 데뷔전에서는 4골을 실점하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기도 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그의 데뷔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언젠가 경험할 일이었지만 팀 합류 직후였기에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엔트리 합류를 예상 못했기에 경기 전 팬 사인회가 예정돼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출격 명령’을 받았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긴장하기보다는 설렜다(웃음). 월드컵 다녀와서 자신감이 차 있는 상황에서 ‘잘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들어가 보니 자신감보다도 확실한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경기 내용에 대해서는 “4골을 실점하고 나서는 뒤에서 응원만 했다. 내가 데뷔전이라 형들이 더 신경을 써준 것 같다. 나를 위해 두발, 세 발 더 뛰어줬고 결국 역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이후 강원은 분위기를 탔다. 이후 3승 1무로 신바람을 내고 있다. K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는 “내가 합류하고 지금 4승 1무로 ‘무패행진’이다. 형들이 나를 ‘승리 요정’으로 부르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지만 최근 팀이 좋은 분위기에 있기에 그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타 팀 선수들 사이에서도 ‘배워보고 싶은 감독’으로 꼽히는 김병수 감독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골키퍼들은 보통 골키퍼 코치들과만 훈련을 하지만 감독님은 공을 가지고 하는 훈련 때 골키퍼도 참여 시키신다. 물론 골키퍼 기술은 코치님께 배우지만 감독님께는 축구 자체를 배우는 느낌이다. 감독님이 나에게 특별히 ‘축구는 어려운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너만 어려워하는 게 아니다’라는 위로와 함께 ‘더 노력하라’는 격려의 뜻이 다 담긴 것 같다.”
데뷔전도 치렀고 소속팀이 좋은 흐름에 있지만 이에 만족할 수만은 없다. 그는 아직 프로 운동장에서 1경기만을 뛰었을 뿐이다. 그는 “당연히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는 것이 목표”라면서 “올해 5경기, 내년 10경기 등 매년 기회를 늘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축구 잘하는 막내 형’으로 불린 이강인의 말을 되새긴다고도 밝혔다. 그는 “강인이가 대표팀에서 항상 했던 말이 있다. ‘여기서 잘하면 팀에 가서 위치가 달라진다. 팀에 가서 잘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얘기를 많이 했었다”면서 “내가 강원에서 데뷔전 치르기 전에도 연락이 왔다. ‘월드컵에서 잘 했으니까 거기서도 잘해라. 이번 기회 잘 잡아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고맙긴 한데 뭔가 강인이 응원이 부정을 타서 4골 먹고 힘들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데뷔전 이후 인천 원정경기에선 고향에서 행사를 치르는 이강인과 재회하기도 했다. 당시 대기 명단에 이광연과 이재익은 이강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는 “강인이가 왜 안 뛰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우리는 ‘둘이 동시에 아니면 안 뛴다’고 응수했다”라면서 “그런데 강인이가 그날 아저씨 같은 신발을 신고 왔다. 이상한 등산화 같이 생겼더라(웃음). 그래서 우리가 벗으라고 하면서 놀렸다”고 말했다.
월드컵 이후 ‘꿈 같은 1개월‘을 보낸 그는 ‘소속팀에서 잘 하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사진=최진영 프리랜서
1년 뒤에는 2020 도쿄 올림픽이 예정돼 있다. 이광연 또한 출전이 가능한 연령이다. 아쉽게 헤어졌던 친구들 중 일부를 대표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광연은 “올림픽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U-20 대표는 좀 다를 수 있지만 올림픽은 정말 소속팀에서 잘해야 나갈 수 있는 대회다. 지금은 그것(소속팀 활약)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