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회장 취임 후 자회사 사업부·지분 대대적 정리…“선제적 대응? 지주사 실탄 확보가 목적일 것”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LG는 자회사들과 함께 시장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시장을 선도하고 영속하는 LG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 3월 열린 ㈜LG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변화 의지를 드러냈다. ‘선제적 대응’이라는 키워드에서 그간 안정을 추구하는 기업문화로 알려져 있던 LG그룹이 변화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구광모 체제 출범 1년을 넘어선 LG그룹이 체질 변화에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사진은 지난 4월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빈소로 들어서고 있는 구광모 LG그룹 회장 모습.연합뉴스.
LG그룹의 변화 움직임은 지난해 6월 구 회장 취임 이후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2월 LG전자는 LG화학, LG CNS와 공동 투자했던 연료전지 자회사 LG퓨얼셀시스템즈를 청산키로 했으며 4월에는 LG디스플레이가 조명용 OLED 사업에서 철수했다. LG화학은 액정표시장치(LCD) 소재 사업과 유리기판 사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매각설이 흘러나온 곳은 LG CNS와 LG전자의 수처리 자회사, LG유플러스의 전자결제 사업부 등이다. 일단 LG유플러스와 LG는 7월 4일과 11일 각각 공시를 통해 “아직까지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으나 시장에서는 2곳의 매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와 관련, 7월 24일 LG전자의 수처리 자회사 매각안이 확정됐다. LG전자는 하이엔텍과 LG히타치워터솔루션 지분 100%를 부방그룹 관계사 테크로스에 매각한다. 매각대금은 2000억 원 중후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두 회사를 매각하면서 수처리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앞서 LG전자는 수처리 담당부서 멤브레인 사업부를 LG화학에 양도한 바 있다.
최근 LG그룹의 바쁜 행보에 대해 재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이 지난 3월 내비친 의지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 ‘선택과 집중’의 일환으로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고 있다는 것. 재계 한 관계자는 “LG그룹의 사업구조 개편은 미래 사업 환경 변화에 따른 경쟁력 강화 및 역량집중 차원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AI와 자동차 전장사업 등을 미래 신성장 사업으로 꼽은 LG그룹은 지난해 오스트리아 전장업체 ZKW를 약 1조 4000억 원에 인수했다.
LG그룹의 사업부·지분 매각은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LG전자의 수처리 자회사 하이엔텍과 LG히타치워터솔루션, LG그룹의 시스템통합(SI) 자회사인 LG CNS는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은 바 있다. LG그룹은 구광모 회장 취임 직후 일감몰아주기 해소를 위해 서브원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부를 분리 매각하고, 물류 계열사 판토스의 지분을 매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지주사 ㈜LG는 거액의 실탄을 확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매각의 목적이 ㈜LG의 실탄 확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LG CNS 지분 85%를 보유하고 있는 ㈜LG는 계획대로 LC CNS 지분 37%가량을 매각할 경우 1조 원에 달하는 실탄을 확보할 수 있다. 앞서 ㈜LG는 지난 2월 서브원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60.1%를 매각하고 6020억 원을 확보한 바 있다.
LG그룹 사정을 잘 아는 한 재계 관계자는 “상황이 닥쳐와도 잘 움직이지 않는 LG그룹의 성향으로 봐서 규제에 선제 대응한다는 해석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미 일감몰아주기로 논란이 됐던 자회사들과 달리 공정거래법 개정이라는 대외명분 또한 멀어진 상황에서 LG CNS 지분 매각 카드를 꺼내 든 주된 목적은 지주사의 실탄 확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구 회장이 취임 1년이 넘어서면서 그간 총수로서 구상했던 그림을 실행하기 위해 발 빠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며 “4세대 젊은 총수이니만큼 비주력 사업 가운데 실익이 크지 않은 부분은 미련 없이 정리하고, 그 실탄으로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재계 한 고위 인사는 “경영권을 승계한 젊은 총수들은 초기에 새 출발이라는 의미 부여도 하고 싶어하고 본인이 잘 아는 사업과 잘 모르는 사업을 구분, 매각과 M&A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며 “지주사에 많은 돈이 쌓인다는 것은 곧 새로운 사업의 M&A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