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탬파베이가 첫 시도, 국내에선 롯데가 스타트...찬반 놓고 여전히 엇갈린 시선
국내에선 롯데가 오프너 전략을 유입시켰다. 외국인 투수 다익손도 오프너로 나선 인물 중 하나다. 사진은 다익손의 SK시절. 사진=SK 와이번스
[일요신문] ‘오프너(Opener)’. 올 시즌 KBO 리그에서 부쩍 자주 들리는 단어다. 경기에 가장 먼저 등판하는 투수를 뜻한다. 마무리 투수가 ‘클로저(Closer)’로 불리는 점에서 착안해 반대를 의미하는 이름이 붙었다. 똑같이 1회부터 공을 던지지만, 선발 투수와는 역할이 조금 다르다. 선발 투수는 최대한 많은 이닝을 버티는 게 미덕으로 여겨진다면, 오프너는 첫 1~2이닝만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것으로 역할이 한정돼 있다.
오프너 기용은 현대 야구에서 수십 년 간 굳어진 투수 운용법을 살짝 비튼 방식이다. 일반적으로는 선발 투수가 5회 이상을 책임진 뒤 불펜 투수들이 8회까지 남은 이닝을 나눠 맡고 9회 마무리 투수가 등판하는 순서를 따른다. 하지만 오프너 카드를 사용하게 되면, 선발 투수는 말 그대로 ‘첫 번째 투수’ 역할만 하게 된다. 오프너가 1~2회를 막아낸 뒤 기존에 선발 역할을 하던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와 긴 이닝을 소화하고, 이후 마무리 투수나 다른 불펜 투수가 경기를 끝내는 식이다.
#탬파베이가 주도한 오프너
오프너라는 생소한 개념을 처음으로 프로야구에 도입한 팀은 메이저리그 구단 탬파베이다. 오래 되지 않았다. 지난 시즌 처음으로 시도했다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유행이 됐다.
탬파베이는 대표적인 ‘스몰 마켓’ 팀 가운데 하나다. 부자 구단이자 전통적 강팀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함께 소속돼 더 비교될 때가 많다. 지난해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2017시즌이 끝난 뒤 주축 선수들을 대거 다른 팀으로 보내고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리는 데 집중한 까닭이다. 심지어 5인 선발 로테이션을 유지하기도 버거웠다. 5일 가운데 하루는 불펜 투수 여러 명이 적은 이닝을 쪼개서 소화하는 ‘불펜데이’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선발 투수들도 그다지 대단한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라 불펜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꼴이 됐다.
결국 탬파베이 케빈 캐시 감독은 지난 시즌 5월 중순부터 “불펜 투수 서지오 로모를 이틀 연속 선발 투수로 등판시켜 1~2이닝을 맡기겠다”고 예고했다. 또 “잠시 구멍 난 로테이션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시즌 끝까지 이런 기용 방식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파격적인 선언에 메이저리그가 술렁였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보다 갸웃하는 이가 더 많았다. 탬파베이의 성적에 관심의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지사다.
결과는 기대를 뛰어 넘는 대성공. 탬파베이는 같은 지구 강팀들의 공세와 약한 전력을 딛고 시즌 90승을 거뒀다. 특히 오프너 전략을 시작한 이후 팀 평균자책점이 메이저리그 전체 3위(3.50)에 올랐을 정도로 환골탈태했다. 처음 가장 걱정을 샀던 불펜 과부하 논란도 금세 사그라졌다. 한 시즌 동안 마운드에 오른 투수가 총 27명인데, 그 가운데 20이닝 이상 던진 투수가 22명이나 됐다. 모든 투수들이 적절하게 이닝을 안배해가며 던졌다는 증거다.
동시에 메이저리그 다른 구단들도 탬파베이가 만들어 낸 오프너 전략을 곧바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양키스나 텍사스처럼 자금력이 뛰어난 구단부터 미네소타나 밀워키 같은 스몰마켓 구단까지 앞다퉈 마운드 운용에 오프너 전략을 반영했고, 올 시즌에는 LA 에인절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가장 적극적으로 이 전략을 쓰고 있는 오클랜드는 최초로 포스트시즌 경기에도 오프너를 기용하는 파격으로 주목을 받았다.
#KBO로 빠르게 유입된 오프너, 롯데가 스타트
메이저리그 경기가 매일 TV로 중계되는 KBO 리그에도 ‘오프너’라는 신문물(?)은 빠르게 유입됐다. 가장 먼저 비슷한 시도를 한 구단은 롯데. 전반기를 마치고 중도 사퇴한 양상문 전 감독은 시즌 개막 전부터 넌지시 오프너 전략에 대한 관심을 내비쳤다. 이어 시즌 도중 실제로 오프너 개념을 응용한 ‘1+1 선발’ 작전을 구사했다. 4인 선발 로테이션을 확정한 상황에서 마지막 5선발 후보 네 명을 둘씩 묶어 한 경기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포스트시즌처럼 중요한 경기나 시즌 막바지 순위 싸움이 치열한 시기에는 가끔 볼 수 있던 작전이지만, 정규시즌에 정기적으로 사용한 팀은 롯데가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격한 원칙 속에 운영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4월 4일 인천 SK전에 선발 등판한 박시영은 김건국과 한 조로 묶여 오프너 역할을 하기로 예정된 투수였다. 하지만 막상 마운드에 오른 박시영이 SK 타선을 상대로 호투하자 조기 교체하지 않고 5⅔이닝을 맡겼다. 양 감독은 그 경기 후 “생각보다 너무 잘 던져줘 그대로 놔뒀다”고 평가하면서 5일 뒤 박시영을 ‘오프너’가 아닌 ‘선발 투수’로 내보냈다. 애초에 선발진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비책이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롯데의 오프너 작전은 의기소침한 외국인 투수에게 첫 승을 만들어주는 도구로 더 유용하게 쓰였다. 시즌을 SK에서 출발한 브록 다익손은 지난 6월 웨이버 공시된 뒤 롯데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지만, 이적 후 첫 7경기에서 승리를 추가하지 못해 아쉬움을 샀다. 다익손의 ‘무승’ 기간이 81일까지 늘어나자 롯데는 다시 불펜으로 돌아간 박시영을 8월 1일 대구 삼성전에 오프너로 투입하는 작전을 썼다. 박시영은 2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오프너 임무를 완수했고, 뒤이어 마운드에 오른 다익손은 남은 7이닝을 4실점으로 버텨 마침내 승리 투수가 됐다. 3점 이하로 막지는 못했지만, 타선이 9점을 지원해줘 어렵게 않게 리드를 지켰다.
다만 다익손은 팀의 고육지책으로 어렵게 1승을 추가한 뒤에도 5회를 전후로 급격히 흔들리는 단점을 고치지 못했다. 공필성 롯데 감독대행은 결국 8월 13일 부산 KT전에 앞서 “다익손에게 오프너 역할을 맡기겠다”고 선언했다. 경기 초반 2~3회는 완벽하게 막아내지만 긴 이닝을 소화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 다익손의 특징을 고려해서다. 원투펀치 역할을 해야 할 ‘외국인 투수’가 사실상 불펜이나 다름 없는 오프너 역할을 맡게 된 것만으로도 올 시즌 롯데의 현실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모든 게 다익손을 최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조치였고, 다익손은 8월 13일 부산 KT전에 처음 오프너로 등판했다. 하지만 2이닝 동안 2점을 내줘 팀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했다.
베테랑 투수 전유수도 KT의 ‘오프너’로 나선 바 있다. 연합뉴스
일시적인 오프너 전략을 시도한 팀들도 있다. 대부분 기존 선발 투수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로테이션에 구멍이 나거나 에이스의 컨디션 조절이 필요할 때 임시방편으로 사용했다.
KT는 6월 18일 고척 키움전에 베테랑 불펜 투수 전유수를 오프너로 올렸다. 30구를 던지기로 하고 선발 등판한 전유수는 3이닝 동안 공 36개를 던지면서 안타와 볼넷 없이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후 선발 요원인 김민수가 마운드를 이어 받아 3⅔이닝을 소화했다. 일단 오프너 작전은 대성공. 다만 팀이 패해 그 효과가 무위로 돌아간 게 아쉬움이었다.
이강철 KT 감독은 경기 후 “당초 2이닝 정도를 맡길 계획이었는데 2회까지 투구 수가 적어 3회까지 던지게 했다”며 “앞으로도 오프너 전략을 상황에 따라 다시 사용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이어 실제로 8월 11일 수원 한화전에 다시 2017년 신인 2차 1라운드에 지명한 불펜 이정현을 첫 번째 투수로 내보냈다. 이정현은 3이닝 3실점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오프너 작전은 실패하지 않았지만, 그 경기 역시 KT는 이기지 못했다.
NC도 마찬가지다. 6월 23일 수원 KT전에 2016년 2차 2라운드 지명 신인인 왼손 불펜 최성영을 오프너로 기용했다. 최성영은 2⅔이닝 동안 공 46개를 던지면서 1실점한 뒤 장현식으로 교체됐다. 오프너로서 충분히 제몫을 한 셈이다. 다만 이번에도 NC가 패했다는 점이 얄궂다. 다음 투수 장현식이 1⅓이닝 3실점으로 흔들려 역전을 허용한 탓이다.
키움은 7월 7일 고척 롯데전에 사이드암 투수 양현을 오프너로 내보냈다. 양현의 뒤로 불펜 투수들이 줄줄이 나오는 사실상의 ‘불펜데이’였다. 원래 이날 등판 예정이던 선발 이승호가 부상으로 갑작스럽게 이탈하면서 급하게 대비책을 마련했다. 양현은 첫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고, 키움은 낙승을 거뒀다. 장정석 키움 감독은 다음날 양현을 칭찬하면서도 “경기 내내 불펜 운용에 집중하느라 머리가 아팠다”며 “역설적으로 한 경기에 6이닝을 책임져 주는 선발 투수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오프너를 놓고 엇갈리는 찬반 시선
오프너 기용은 확실한 선발 투수가 많지 않은 대신 불펜 자원이 넘쳐 나는 팀에게 유용한 전략이다. 특히 1~2회는 선발 투수들이 채 몸이 다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 팀의 가장 강한 타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이닝이기도 하다. 실제로 2010년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득점이 많이 나온 이닝은 1회라는 통계도 있다. 따라서 짧은 이닝을 전력 투구하는데 익숙한 불펜 투수들에게 첫 2이닝을 맡기면 경기 초반 흐름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부분 마무리 투수와 필승조 바로 다음 순번의 기량을 가진 불펜 투수들이 오프너로 낙점된다. 불펜 에이스까지는 아니지만, 추격조나 패전조로 내보내기엔 아까운 기량을 가진 선수들을 폭넓게 활용할 수 있어서다. 그 과정에서 이 투수들이 성장해 진짜 선발급으로 한 단계 도약한다면, 구단으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된다.
다만 반대하는 시선도 많다. 특히 모든 팀이 투수난에 시달리는 KBO 리그에서는 더 위험 요소가 많은 전략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선발 투수라는 보직에 자부심이 큰 기존 스타급 투수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휴스턴 오른손 투수 게릿 콜은 올 시즌을 앞두고 더 많은 팀에서 ‘오프너’ 전략을 쓸 것이라는 소식을 듣자 “나는 ‘수학 방정식’과 같은 투수 기용을 보려고 야구장 입장권을 사진 않겠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샌프란시스코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도 브루스 보치 감독에게 “내 경기에 오프너를 쓴다면 난 바로 경기장 밖으로 나갈 것”이라고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휴스턴 에이스 잭 그레인키는 “이렇게 되면 앞으로 긴 이닝을 던질 투수가 사라지게 된다”며 “구단들은 더 이상 선발투수에게 돈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스캑스 추모경기서 ‘노히트’로 빛났던 오프너 전략 LA 에인절스의 ‘오프너’ 작전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한 동료를 추모하던 날 더욱 빛을 발했다. 지난 7월 2일(한국시간) AFP통신과 CNN을 비롯한 여러 외신은 “에인절스 왼손 투수 타일러 스캑스가 텍사스와의 원정경기를 위해 머무르던 현지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텍사스주 경찰 당국은 “스캑스가 (현지시간으로) 오후 2시18분쯤 호텔 방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며 “신고받고 출동했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라 현장에서 바로 사망 선고를 내렸다. 타살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스캑스는 2012년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투수다. 2013년 7월 11일 체이스필드에서 LA 다저스 류현진과 선발 맞대결을 한 적도 있다. 2014년부터 계속 에인절스에서 뛰었다. 빅리그 통산 성적은 96경기 28승 38패 평균자책점 4.41. 올 시즌에는 15경기에 나서 7승 7패 평균자책점 4.29를 기록했다. 6월 30일 오클랜드와의 홈경기가 생전 마지막 등판으로 남았다. 스캑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결혼식을 올린 데다 28세 생일을 불과 12일을 남겨 놓은 상황이었다. 유망한 젊은 투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메이저리그 전체가 추모 물결로 뒤덮였다. 일단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날 글로브라이프파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에인절스와 텍사스 경기를 다음 달로 연기했고, 롭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공식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에인절스 구단은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스캑스는 늘 그리고 언제까지나 에인절스의 중요한 일원이다.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그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와 텍사스 구단도 애도를 표했다. 팀 동료들 역시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스캑스의 팀 동료이자 에인절스 간판타자인 마이크 트라웃은 자신의 SNS 계정에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고 있다”며 “스캑스는 훌륭한 팀 동료이자 친구,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썼다. 또 스캑스의 등번호인 ‘45’를 적고 “사랑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스캑스를 기리는 행사는 그의 생일인 7월 13일 시애틀과의 홈 경기에서 마련됐다. 에인절스의 후반기 첫 경기였다. 선수들은 스캑스의 이름과 등번호 45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고, 경기 전 45초 동안 그를 위해 묵념했다. 스캑스의 어머니 데비 헤트먼은 시구자로 나서 포수 미트에 바로 꽂히는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아내를 비롯한 유가족도 마운드에 올라 추모를 함께했다. 남다른 아픔을 표현했던 트라웃은 1회 첫 타석에서 한가운데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38m짜리 대형 홈런으로 스캑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감회가 남다른 듯 평소보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베이스를 돌았다. 트라웃 뿐만 아니라 타선 전체가 함께 폭발했다. 총 13개의 안타로 13득점을 올리는 총공세를 펼쳤다. 1회에만 7점을 뽑았다. 무엇보다 마운드에선 오프너 선발 테일러 콜과 ‘두 번째 선발’ 펠릭스 페냐가 팀 노히터를 합작했다. 콜이 2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물러나자 마운드를 이어 받은 페냐가 7이닝을 무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틀어 막았다. 9년 만에 달성한 에인절스의 노히터 게임이 모두가 스캑스를 추모하던 바로 그 경기에서 나왔다. 영화를 방불케 하는 스토리였다. 경기가 끝난 뒤 에인절스 선수들은 일제히 스캑스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벗어 마운드 위에 쌓아 올렸다. 브래드 어스머스 에인절스 감독은 “이 노히터는 스캑스가 함께 했다”고 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