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재판 확정 때까지 치료 받으며 사면 기대…“조국 이슈, 박근혜 사면에 오히려 불리” 시각도
재판은 일체 거부하면서도, 연이은 형 집행정지 신청으로 구치소를 떠나고자 했던 박 전 대통령에게는 호재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파기 환송심 선고를 받은 뒤 사면까지 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대목이다. 박 전 대통령은 “병원 방문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소란스러운 집회를 말아 달라”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장외 정치전’을 펼치지는 않겠다는 의미라는 평도 나온다.
# 안경과 마스크로 얼굴 가리고…21층 병동 봉쇄
9월 16일 오전 10시 20분쯤. 추석 연휴 직후 박 전 대통령은 서울 구치소를 떠나 서울 반포동에 위치한 서울성모병원에 도착했다. 안경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휠체어 타고 입원수속을 밟은 박 전 대통령. 정확한 병명은 어깨회전근개 파열. 보통 ‘오십견’으로 불리는 증상이다. 박 전 대통령은 어깨 힘줄이 파열돼 왼쪽 팔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9월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서울성모병원에 들어서고 있다. 고성준 기자
박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형 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법무부는 박 전 대통령은 최근 서울 소재 외부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점, 전문의 소견과 박 전 대통령의 의사 등을 감안해 입원을 결정했다. 지난 11일, 검찰이 형 집행정지 신청을 불허한 지 이틀 만이었다.
입원 바로 다음날 이뤄진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입원 첫날 밤늦게까지 수술에 필요한 검사를 받은 박 전 대통령은 3시간 정도에 걸쳐 왼쪽 어깨 수술을 받았고, 병원 측은 수술 후 언론 브리핑을 통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설명했다. 병원 측은 “통증이 심해 치료를 받았지만 약물 주사 요법에도 호전되지 않아 MRI 정밀 검사를 시행했고 어깨 힘줄 5개 중 2개, 이두근이 파열됐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성공적으로 수술이 끝났으며 재활과 회복을 위해 2~3개월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재활 치료 일정 등을 감안할 때 최대 4달가량 병원 신세를 지게 된 박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이 머물 곳은 구치소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곳이다. VIP 병동 병실 중 가장 넓은 57평 1인실(21층)이다. 거실과 주방, 욕실, 가족실 등이 갖춰져 있고, 서울구치소 여성 교도관 2명이 박 전 대통령이 퇴원할 때까지 함께 생활한다. 병실에는 TV가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입원 첫날 TV를 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식사는 일반 환자들과 같이 병원에서 제공한 식사를 하게 된다.
경찰과 병원 측은 박 전 대통령의 병실이 있는 층 복도에 경호 인력을 배치해 일반인 출입을 막기로 했다. 가급적이면 직원들의 업무 외 출입도 제한할 방침이다. 수감자 신분으로 접견 신청도 가능하다. 구치소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사이에 구치소장 허락 하에 30분 내에서 접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제외한 외부인 접견은 한 달에 4회로 제한된다. 이미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와는 16일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접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도 적지 않게 든다. 입원비만 수천만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머무르고 있는 곳은 하루 사용료가 300만 원이 넘는 병실인데,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작은 병실로 옮기더라도 하루 160만 원이 넘는 입원비를 부담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입원비용은 모두 개인 부담이다. 탄핵으로 파면돼 전직 대통령 예우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2~3개월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점을 감안할 때 최소 7000만~8000만 원, 최대 1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 “입원 전 형 집행정지 신청 주목해야”
막대한 비용이지만 박 전 대통령은 비교적 자유로운 여건 속에서 조만간 시작될 파기 환송심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법조계는 박 전 대통령이 올해 두 차례 형 집행정지를 신청한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구치소 밖 생활을 강하게 원한다는 관측이다. 적극적인 파기 환송심 재판 참여보다는, 빠른 선고 후 사면을 희망할 것이라는 얘기다.
구속됐던 다른 주요 사건 피고인들은 이미 대부분 풀려난 상태다. 올해 설 때만 해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김경수 경남지사가 서울구치소에서 명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모두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구속 349일 만인 지난 3월, 보석으로 석방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물론 신분은 다르다. 20대 총선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된 기결수 상태인 박 전 대통령은 보석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은 지난 4월과 9월, 허리 통증 심화 등을 이유로 형 집행정지를 두 차례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를 불허했다. 대신 ‘병원 입원’이라는 방식으로 구치소를 나온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 안에서도 아프다는 얘기를 일절 하지 않지만, 변호사 등이 하는 ‘형 집행정지 신청’ 등에는 동의를 한다고 들었다”며 “주변 측근들의 제안 형식으로 구치소 밖으로 나오는 것을 희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등의 시선을 감안, 박 전 대통령은 한동안 장외 여론전도 펼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측근을 통해서 “병원 방문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소란스러운 집회를 말아 달라”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는데,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는 일부 매체에 “박 전 대통령께서 다른 환자들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 병원에서 집회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전해오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가톨릭대학교서울성모병원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주장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고성준 기자
# 파기 환송심 선고 및 사면까지 노린 수?
치료에 집중하면서 파기 환송심 선고를 받은 뒤 사면까지 노린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정농단 사건 2심에서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8월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 환송해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된 박 전 대통령. 일절 재판에 응하지 않고 있는 점, 이미 대법원이 유무죄 기준을 다 정리한 점을 감안할 때,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증인 요청’을 하지 않을 경우 빠르면 올해 안에 선고가 날 수 있다.
입원이 장기화돼 내년 초까지 병원 신세를 지게 될 경우, 모든 형사 재판 사건의 ‘기결수(형이 확정된 수감자)’가 돼 병원에서 사면을 노릴 수 있다. 구치소 신세를 다시 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형 확정 후 사면을 주장했던 친박계 국회의원들이 아무런 입장을 낼 수 없었지 않느냐”며 “올해 말, 박 전 대통령이 입원해 치료를 받는 상태에서 모든 형사재판의 형이 확정되면 자연스레 ‘건강을 고려해 사면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나오기 좋은 환경이 될 것이고 박 전 대통령도 이를 원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하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 이슈가 불거지면서, 청와대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여론이 조금씩 확산되는 것은 되레 박 전 대통령에게는 불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법조인은 “이번 정권은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면했던 것처럼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그냥 풀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 이유로 구속 주체가 다른 점을 짚었다. “문재인 정부가 처벌한 게 아니라 국민들의 촛불 여론이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처벌한 셈이라서 문재인 정부가 사면할 이유도, 책임도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의 장외 정치 참관이 변수가 될 것으로 봤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자유한국당 대표 출마를 비판하는 등 구치소 안에서도 정치적인 메시지는 분명히 냈다”며 “조국 관련 의혹들이 하나둘 검찰 수사로 사실로 드러나면서 분노가 커지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 입에서 ‘나는 억울해도 그냥 참고 당했다’는 말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타격은 훨씬 커질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더더욱 사면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