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투스 계랑 시스템 그린스케일 2015년 ‘임시허가’ 받았지만 만료 뒤엔 ‘규제 없음’
2015년 ‘규제특례 임시허가 1호’로 선정됐던 그린스케일의 블루투스 통신기반 네트워크 계량 시스템(블루투스 계량 시스템)도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설완석 대표는 “지난 10년간 중소벤처기업이 혼자 3개 정부부처를 상대했다. 나는 비록 사업을 포기했지만, 처지가 비슷한 다른 기업들은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강조했다.
2015년 5월 6일 박근혜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3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설완석 그린스케일 대표다. 사진=연합뉴스
그린스케일의 블루투스 계량 시스템은 전자저울을 활용해 농산물의 무게는 물론 생산자와 생산지, 출하시기 등 이력 정보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계량기인 저울을 바탕으로 농산물이력추적시스템과 실시간 연계해야 하는 IT 통신서비스라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근혜 정부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등 여러 부처의 협조가 필요했다.
이 사업은 ‘정보통신진흥 및 융합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15년 3월 신속처리 1호, 같은 해 10월 임시허가 1호로 선정됐다. 세 부처는 협업을 통해 공동으로 임시허가를 부여했고, 당시 국무조정실과 미래창조과학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그린스케일의 사례를 성과 및 실적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각 부처가 ‘공동성과’라 자부한 만큼 적극적인 지원이 기대됐다. 그러나 2년 뒤인 2017년 10월, 블루투스 계량 시스템은 정식허가를 받지 못한 채 임시허가 유효기간이 만료됐다.
블루투스 계량 시스템이 정식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의 법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했다. 옛 미래부가 유권해석을 받아보도록 안내했던 한국전기전자시험연구원에서 2013년 그린스케일의 블루투스 계량 시스템에 대해 “데이터의 신뢰성과 조작 가능성이 있어 상업용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답을 내놨기 때문이다. 또 서비스의 핵심인 농산물 정보 확인을 위해서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데이터 연계 협조도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임시허가 기간 2년 동안 이들 부처가 업무 소관을 부정하고 소극 행정을 했다는 것이 설 대표의 주장이다. 설 대표는 “임시허가가 정식허가로 전환되지 않아 사업 중단의 문제가 있는 데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데이터 연계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의 관련 규제 신설 없이는 정보의 공신력과 서비스 실효성을 보증할 수 없어 시장 진입을 위한 성능이 확보되지 못했다”며 “불완전한 시장 진입만 허용해 시간과 비용만 낭비하게 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임시허가 기간이 만료된 이후 설 대표는 관련 부처의 소극 행정을 고발하고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민원활동에 나섰다. 그 결과 2017년 국정감사에서는 박완주 의원에 의해 농산물이력추적시스템 연계기능 활성화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18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구축한 농산물이력추적관리시스템 ‘팜투테이블’의 이용실적이 매우 저조한 것에 대한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규제 미비에 대한 설 대표의 질문에 2018년 5월 2일 “귀사의 요청에 따라 소프트웨어 평가를 통해 계량데이터 보호 검증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해관계자 회의를 통해 지속 논의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법정계량이 국가 소관인 만큼 관련 규제가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규정은 여전히 미비한 상태로 남았다.
결국 설 대표는 지난 1월 새롭게 시행된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에 임시허가와 실증특례를 신청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는 박근혜 정부 시절 미래창조과학부의 규제특례와 유사한 제도다. 이후 3개월 만에 받아본 결과는 ‘규제 없음’이었다. 관련 규제가 없으니 자유롭게 시장에 출시하라는 뜻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신청 기업은 전 미래부의 임시허가 이후 현재 정식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사업자라 판단해 산업부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으나, 심의위는 시장 출시의 걸림돌이 되는 규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데이터 무결성 확보 등을 위한 기준 신설이 관련 업계에 부담을 주는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데이터팜 정보 연계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공식 답변이 나왔다. “농산물이력추적관리는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등록할 수 있고, 이력관리 데이터도 오픈 API를 통해 개방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07년 이미 농산물이력시스템을 구축했으나, 그린스케일과의 데이터 연계에 대해 지원하지 않았던 셈이다.
미래부표 규제 샌드박스의 임시허가 이후 신제품 출시만을 바라보고 4년간 정부 부처의 지원을 기다렸던 설 대표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그 사이 파트너사도 잃고, 투자자도 등을 돌렸다. 그린스케일은 경영난 끝에 폐업했다. 설 대표는 “정부가 법정계량 규제의 필요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음에도 관련해 규제나 권고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저울작업반을 신설해 지원하겠다고도 했지만 이후 계속 말을 바꿔가며 해명했다. 소극 행정보다 공무원의 거짓말이 더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계량법에서 측정값 오차관리는 우리 소관이 맞지만, 저울로 측정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에 대한 규제는 없다. 그린스케일의 블루투스 계량 시스템 건의 경우 수요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데이터 신뢰성을 관리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반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2015년 규제특례 임시허가 당시에는 담당자가 아니라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그린스케일의 서비스는 저울과 관련한 것인 만큼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 규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번 규제 샌드박스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답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