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관련 일본의 이의제기 받아들인 IOC, 욱일기 논란에는 미지근…적극성·후원 때문 분석도
지난 8월 15일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휘날린 욱일기.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2020 도쿄올림픽이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그 가운데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도쿄 조직위)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이라 불리는 욱일기 경기장 반입을 허용한 것과 관련해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거세다. 욱일기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했던 군기다. 일장기에 방사형으로 16개 햇살이 뻗치는 모양이 형상화된 깃발이다. 욱일기는 1870년대부터 일본제국 육군의 공식 깃발로 선을 보였다. 해군 군함에도 욱일기가 게양됐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자위대를 창설하는 과정에서 욱일기는 약간 변형된 디자인으로 다시 군기로 등장했다. 일본의 식민지배나 침략을 당한 국가 입장에선 욱일기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이웃나라 한국과 중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2020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를 경기장에 반입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도쿄 조직위의 공식 입장은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미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IOC는 “만약 욱일기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벌어졌을 땐 상황에 따라 대처할 것”이란 판에 박힌 입장을 내놨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12일 일본 신임 올림픽상 하시모토 세이코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욱일기는 정치적 선전물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하면서, 욱일기를 둘러싼 논란은 점점 뜨거워지는 중이다.
#독도 관련 IOC의 강경조치 사례는?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3-4위전에서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확정 지은 한국 대표팀의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 땅’ 피켓을 머리 위로 든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2 런던올림픽 당시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확정 지은 올림픽 축구 대표팀 미드필더 박종우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피켓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박종우의 세리머니는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IOC는 박종우의 세리머니를 ‘정치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결국 박종우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동메달을 목에 거는 환희의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IOC가 박종우가 시상대에 서는 것을 제재한 까닭이었다.
이후 IOC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박종우 징계 건을 위임했다. FIFA는 박종우에 ‘A매치 2경기 출전정지와 3500스위스프랑(약 420만 원) 벌금’ 징계를 내렸다.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개회식 행사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공동 입장이 예정된 상황. 일본은 IOC에 “한반도기에 그려진 독도는 정치적 행위”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IOC는 일본의 이의를 받아들였다.
IOC는 “독도가 표기된 한반도기는 정치적 행위”라는 입장과 함께 한국과 북한 측에 독도가 그려지지 않은 한반도기를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독도가 그려지지 않은 한반도기를 펄럭이며 공동입장한 남·북 선수단. 사진=연합뉴스
IOC 이중잣대 논란과 관련 한 체육계 관계자는 “한국은 IOC에 상당히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반면 일본은 적극적인 입장 표현으로 자신들이 얻고 싶은 것을 얻어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은 2012 런던올림픽 당시 독도 세리머니를 펼쳤던 박종우의 징계 처분이 나왔을 때도 적극적인 입장을 표현하지 않았다. IOC가 ‘한반도기에서 독도를 빼라’는 권고를 했을 때도 두말 않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일본은 IOC에 말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다 말한다. 그 결과는 지금 상황 그대로다. 일본은 경기장 내 욱일기 반입 허용과 관련해 IOC의 암묵적인 승인을 받았고, 한국은 엄연한 자국 영토인 독도를 한반도기에 집어넣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IOC가 일본 측에 우호적인 결정을 거듭하는 것을 ‘밀월 관계’로 인식하는 이들도 있다. “올림픽 및 패럴림픽 공식 후원사 중 3개 기업이 일본 기업(도요타, 파나소닉, 브리지스톤)이다. 한편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하나다. 이런 점이 IOC의 최근 행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하켄크로이츠.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인 독일을 상징하던 깃발이다. 대부분 서구권 나라에선 하켄크로이츠를 내거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권에서 욱일기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욱일기 논란과 관련해 일각에선 “하켄크로이츠는 나치라는 정당의 깃발이었으며, 욱일기는 일본제국의 군기였다. 두 깃발이 상징하는 바는 다를 수 있다. 한국에서 자주 쓰이는 ‘전범기’란 표현 역시 국제적으론 잘 쓰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도 관련 사안을 ‘정치적 행위’로 규정한 IOC가 욱일기에 대한 암묵적 승인 신호를 지속해서 보내는 건 형평성이 맞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학계와 체육계에서 “욱일기라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국제 스포츠계 한·일 역학관계’, ‘IOC의 형평성 논란’ 등 거시적인 관점으로 이번 논란을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