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vs 비문 주도권 다툼 탓 ‘조기등판’ 미지수…총선 간판 자처 이해찬 대표도 넘어야
청와대가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부처 장관의 총선 투입을 시사했다. 10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이낙연 총리. 사진=박은숙 기자
여권 내 ‘이낙연 역할론’을 둘러싼 기류는 여러 갈래다. 청와대는 이 총리 교체를 기정사실로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임을 위한 ‘원 포인트’ 인선을 기점으로 연말 후속 개각의 속도도 한층 빨라지는 모양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인사는) 끝까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했지만, 노 실장 발언 이후 여권 내부에선 인적 쇄신론이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했다. 가장 유력한 것은 ‘법무부 장관 원 포인트 개각→이 총리 포함 원년 멤버 개각→청와대 참모진 개편’ 3단계 시나리오다.
임기 후반기를 맞은 문 대통령이 연일 소통·협치 행보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탕평 인적 쇄신을 통해 국정동력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후임 총리로 기존에 거론되던 정세균(6선) 원혜영(5선) 김진표(4선) 의원 이외에 진영(4선) 행정안전부 장관이 부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근혜 정부 때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진영 장관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기초연금’을 둘러싸고 충돌, 결국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뒤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오르면서 문재인 정부의 탕평 인사의 상징이 됐다. 당 외곽 인사로는 박지원(4선) 대안신당 의원 이름도 오르내린다. 이에 박 의원은 “김칫국을 마실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이낙연 복귀의 화살은 당겨졌지만 청와대가 표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키는 여당으로 넘어갔다. 더불어민주당 기류는 극과 극이다. 한쪽에선 이낙연 역할론의 ‘애드벌룬’을 띄운다. 내년 4·15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비문재인계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 의원은 11월 12일 한 라디오에 출연, “이 총리가 당에 머물면서 총선을 치르는 게 좋다”며 “이 총리 본인도 차기 대선에 나갈 뜻이 분명하다고 알고 있다. 총선을 통해 한번 검증을 받는 게 좋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조 전 장관 사퇴 직후 ‘이해찬 책임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인사다. 그는 당시 “민주당이 무기력해진 책임의 상당 부분이 이 대표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당 지도부 분위기는 미묘했다. 이낙연 역할론을 부정하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조기 등판론에는 선을 긋고 있다. 윤호중 사무총장과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11월 1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총리의 총선 차출설에 대해 “아직 당이 요청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대통령이 인사 고민을 시작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총리직에서 나오는 게 문재인 정부와 당에 좋은 것인지 한번 판단해야 한다”라고 각각 밝혔다. BH(청와대)가 쏘아 올린 이낙연 역할론을 당 지도부가 블로킹한 셈이다.
‘청와대의 개각 시사→당 지도부의 이낙연 등판 시기상조론→비문계의 이낙연 간판론 피력’ 등이 하루 시차를 두고 발생하자, 당내 총선 주도권 다툼이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총선 주도권 다툼은 ‘친문 vs 비문’ 대결로 단순화하지 않았다. 이낙연 조기 등판론을 둘러싼 셈법은 여러 갈래로 퍼져 있다. 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이낙연 경계론’을 펴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에 윤호중 사무총장 등 친문계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해찬호에 한배를 탔다는 운명 공동체론이 ‘이낙연 경계론’을 띄우는 데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 지도부를 비토하는 친문계 일부는 이낙연 조기 등판론에 긍정적이다. 비문계, 그중에서도 중진급 의원들은 이 총리의 조속한 당 복귀를 원하고 있다. 이 총리를 둘러싼 당내 기류를 단순화하면, ‘이해찬 간판이냐, 아니냐’로 좁혀진다.
이해찬 대표*왼쪽)와 이낙연 총리. 사진=박은숙 기자
이는 친노·친문의 분화와 무관치 않다. 앞서 지난해 민주당 8·25 전당대회 당시 친노·친문 중진그룹은 이해찬 대표를 지지했지만, 전해철 의원 등 일부 친문은 김진표 의원으로 기울었다. 이듬해 5·9 원내대표 경선 때도 이 대표는 김태년 의원을, 전해철 의원과 정세균계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등은 이인영 원내대표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또한 ‘이해찬 지지냐, 이해찬 비토냐’로 갈린 셈이다.
관전 포인트는 이 총리의 교체 시점과 등판 시점이다. 21대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공직자 사퇴 시한은 내년 1월 16일이다. 둘 중 하나다. 이르면 연말, 늦어도 연초 개각은 막을 수 없는 둑이다. 이 총리가 교체 후 어느 정도나 ‘몸 풀기’를 할지도 관심사다. 연말 개각의 유력한 시점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 후다. 예정대로라면, 민주당은 일주일 뒤인 12월 10일 선거대책위원회를 발족한다. 이 총리의 화려한 복귀를 위한 레드 카펫은 깔렸다.
다만 이 총리가 교체 직후 총선 역할론을 수행할 가능성은 낮다. 최근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조국 정국’ 이전으로 회복했다. 극적인 ‘컨벤션 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도가 올라가는 현상)’가 없는 상황에서 이 총리가 총선 역할론을 받아들일 실익이 없다. 당도 이 총리도 남는 장사는 아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선대위원장이든 총선 출마든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낙연 등판론은 △문 대통령 지지율 반전 △공천 후유증 상쇄 △컨벤션 효과 극대화 등 일석삼조를 꾀할 수 있는 카드다. 이낙연 카드는 총선 승리가 지상목표인 친문계와 비문계의 일종의 ‘비밀병기’다.
그러나 이 총리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 중심에는 이 대표가 있다. ‘총선 간판’을 둘러싼 당내 온도 차는 극명하다. 이 대표 측은 공천 작업을 비롯해 인재 영입, 정책 수립 등을 총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사석에서 “나는 선거 기획 전문가”라는 말을 자주한다. 이해찬 간판으로 21대 총선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다. 여기에는 김대중(DJ)·노무현 정부 출범의 개국공신이라는 자부심이 깔렸다.
이 총리가 당 복귀 후 ‘선대위원장만 하느냐, 총선에도 출마하느냐’도 관건이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애초 이 총리는 지난 추석 전 당 복귀를 희망했지만, 총선 출마 지역과 선대위원장직 역할론 등을 정리하지 못하면서 8·9 개각에서 빠졌다. 이후 조국 사태가 일어나면서 당 복귀 시점을 미뤘다.
이 총리의 당 컴백은 친문 후계 구도와도 맞물려 있다. 현재 차기 국무총리로 거론되는 인사는 대다수 현역 국회의원이다. 이 총리가 총선 대신 대선 직행을 선언한다면, 차기 국무총리 지역구에 친문 후계 구도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가 대표적이다. 만에 하나 정세균 의원이 차기 총리로 발탁되고 그 자리에 신친문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공천된다면 이 총리와 이해찬을 비토하는 친문계가 일시적으로 연대 전선을 형성할 수도 있다. 이 대표 측이 견제에 들어가더라도 강력한 방패막이를 만들 수 있다. 이 총리 승부처가 친문 후계 구도와의 함수관계에 달렸다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 과정이 삐걱대면 이 총리는 등판은커녕 총선 때까지 발이 묶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에 하나 이 총리가 종로에 직접 출격하거나, 친문계와 권력다툼을 벌인다면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현역 불패’ 기조는 깨지지 않았지만, 총선을 코앞에 둔 야권이 반문(반문재인) 연대를 통해 교란 작전을 펼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은 장관 등의 국무위원과는 달리, ‘재적 의원 과반 출석·출석 의원 과반 찬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2000년 국회 인사청문제도 도입 이래 6명의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했다. DJ 정부 2명(장상·장대환), 이명박(MB) 정부 1명(김태호), 박근혜 정부 3명(김용준·안대희·문창극)이었다. 국무총리 임명부터 국회 인사청문회, 국회 인준 등의 일정은 통상적으로 약 한 달 정도 소요된다. 차기 국무총리가 역대 7번째 낙마자 오명을 쓸 경우 이낙연 차출론 동력은 급속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함수 관계를 해법 찾기가 ‘뼛속까지 정치인’인 이 총리의 차기 대선 가도의 1차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지상 언론인